그리스의 재정적자 우려와 남부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야기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다소 진정되고 있다.

그리스 정부의 긴축조치 발표와 유럽연합(EU) 재무장관회의를 통한 지원 기대감으로 그리스 정부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빠르게 안정되고 독일의 국채 대비 2배 이상 수준에서 거래되던 국채 수익률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재정수지 악화는 이번에 부각된 소위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수지 적자의 비율이 12.7%로 추정되는데 미국과 영국의 비율도 각각 12.5%, 11.6%로 추정된다.

또한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의 경우는 국가부채가 경제규모의 두배가 넘으며 이탈리아는 116% 수준이다. 일부를 제외하고 전 세계가 ‘부채의 늪’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재정의 건전성 확보는 단기간에 해결될 상황이 아니고 다른 국가들도 재정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국가신용 리스크(sovereign risk)는 상당 기간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지출은 확대되고 경기침체로 세수 회복은 더뎌서 재정 부실은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부채규모가 확대됐고 고령화 등 재정여건 악화로 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GDP 대비 재정수지 적자는 2% 수준이지만 국가부채는 2008년 30.1%에서 금년에 36.1%로 예상돼 부채의 증가 속도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이 사실이다. 경제 주체별로 볼 때 극명한 차이는 가계와 기업이다.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지난해 말에 264조 원으로 3년 사이에 21.7%나 증가해 이자 부담이 사교육비와 함께 가계소비를 제약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에 상장기업은 외환위기 이후 ‘부채의 늪’에서 성공적으로 빠져 나온 케이스다.

제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2000년 186%에서 2008년 말에 99.5%로 급속히 떨어졌고 보유 현금은 급증했다. 자산 가격 버블이 터진 후 일본에서 나타났던 기업의 ‘부채거부 증후군(debt rejection syndrome)’이 그대로 국내에서도 재현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 국가의 재정 건전성 문제가 금융시장 참여자들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첫째, 재정 적자 심화는 각국의 경기조절 능력을 약화시키며 성장을 둔화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미 하버드대 로고프 교수는 국가부채가 GDP의 90% 이상일 경우 성장률이 급격히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둘째, 투자 전략 수립에서 거시경제지표의 해석과 그에 따른 대응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은행발 금융위기가 채무국의 위기로 연결됐기 때문에 거시경제지표의 분석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생각된다. 단기적으로 한 나라의 거시경제적 상황이 시장에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셋째, 중국·한국을 비롯한 신흥 국가의 성장 모델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즉,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여건이 양호한 신흥 국가들이 선진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내수 경기의 기반을 강화하고 확대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소비 시장으로서의 중국의 위상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재무구조가 현저하게 개선되고 글로벌 동종 업체에 비해 경쟁력을 확보한 국내 블루칩 기업들의 주가는 다시 한 번 재평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부채의 늪’에 빠진 세계경제
김석중 피닉스자산운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