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배우러 다니다 도자기에 빠지고 말았죠”
한동숙 씨는 도자기와 시계 컬렉터이다. 특히 도자기는 초기 마이센 제품에서 프랑스 세브르, 덴마크 로얄 코펜하겐까지 귀한 제품이 많다. 도자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한 씨의 컬렉션 세계로 인도한다.

주부라면 누구나 도자기에 대한 환상이 있다. 품격이 느껴지는 접시에 정성이 깃든 음식을 담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욕망은 많은 주부들의 로망이다. 도자기 컬렉터 한동숙 씨는 이 같은 로망을 현실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전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어요. 지금은 다양한 요리 학원도 생기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요리를 배울 수 있지만 저희 때만 해도 요리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배웠어요. 그때는 손님 접대도 집에서 많이 했어요. 자연히 테이블 세팅에 관심을 갖게 된 거죠.”

중후함과 깊은 색감이 매력적인 마이센

오랫동안 그녀는 요리 선생들을 따라다니며 요리와 테이블 세팅을 배웠다. 그러다 보다 체계적으로 테이블 세팅을 배우기 위해 경기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식공간 연출을 공부했다.
“요리 배우러 다니다 도자기에 빠지고 말았죠”
그녀는 테이블 세팅은 종합 예술에 가깝다고 말했다. 요리와 도자기, 식탁 코디네이트 등이 한데 어우러진 것이 테이블 세팅이기 때문이다.

테이블을 세팅하면서 음식마다 어울리는 도자기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식, 중식, 양식에 따라 어울리는 도자기가 따로 있다. 도자기 컬렉션은 테이블 세팅을 공부한 그녀에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던 셈이다.

컬렉션 초기에는 그녀도 적잖은 수업료를 지불했다. 안목이 부족했던 초기에 샀던 제품은 선물로 주기도 했고, 흠이 있는 것을 모르고 샀다 낭패를 본 적도 있다. 지금의 그녀가 있기까지 적잖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녀의 컬렉션은 주로 유럽 자기들이다. 세계적으로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는 유럽 자기는 독일의 마이센과 금채장식이 화려한 프랑스의 세브르, 왕실의 기품이 스며든 영국의 로열우스터, 헝가리의 헤렌드, 덴마크의 로얄 코펜하겐 등이다. 이 중 그녀는 유럽 최고로 백색 자기를 만든 독일의 마이센을 가장 좋아한다.

마이센은 유럽에서 최초로 자기를 구워낸 요업장이다. 18세기 초 작센 후작의 원조로 자기를 연구해오던 J.F. 뵈트거가 1709년 적갈색의 석질기 제작에 성공하고 다시 백자 제조에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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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왕은 1710년에 수도 드레스덴에 궁정공방을 설립, 같은 해 6월 마이센에 새롭게 궁정공방을 창립하여 이전하게 하였다.

마이센 자기를 세계적인 것으로 만든 사람은 1720년에 총감독으로 초빙된 J.G.해롤드와 1731년에 조각가 겸 조형작가로서 초빙된 J.J.캔들러인데, 전자에 의해 색채 등 회화적 요소가, 후자에 의해 형태와 조각적인 발전이 촉진되어 18세기 중반까지 최성기를 이루었다.

“마이센의 매력은 중후함과 깊은 색감에서 찾을 수 있어요. 제품을 놓고 보면 나무랄 데 없지만, 테이블 세팅을 할 때는 주의를 해야 해요. 마이센 제품 중에는 화려한 것들이 적지 않은데, 자기의 화려함이 음식을 죽이는 역효과를 낼 때가 있어요. 자기가 너무 컬러풀하고 화려하면 하얀 천을 이용해 테이블을 세팅하면 돼요.”

한식, 양식, 중식 모든 음식과 잘 어울리는 로얄 코펜하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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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켈렉션에는 프랑스 세브르 제품도 적지 않다. 세브르는 독일과 일본식 도자기를 만들라는 루이 15세의 주문에 만들어졌다. 이때 표본으로 삼은 것이 독일 드라이덴의 마이센이었다. 루이 15세의 주문 60년 뒤인 1768년, 드디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기 세브르가 탄생했다.
황실의 지원을 받은 제작소는 일급 재료에 고급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궁정 화가, 대장장이, 유명 건축가가 공장장으로 오면서 기술과 장식무늬 등 모든 분야에서 혁신을 이루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자기들은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황실과 국가기관 등에 납품되어 황실 또는 외국사절 선물용으로 쓰였다. 시라크 대통령 재직 때 새천년 잔치용으로 쓰일 300명분의 자기세트를 주문한 지 3년 만에 납품받은 일화는 수작업의 꼼꼼함과 제품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유명한 자기들이 많지만 생활자기로는 고가이긴 하지만 덴마크 로얄 코펜하겐이 최고인 거 같아요. 로얄 코펜하겐의 가장 큰 장점은 한식, 중식, 양식 어떤 요리에도 잘 어울린다는 점이죠. 워낙 아껴서 어떤 제품은 부러진 손잡이를 붙여서 쓰기도 해요.”

로얄 코펜하켄은 덴마크의 약재상 헨릭 뮬러의 광기에 가까운 열정이 빚어낸 예술품이다. 원래 광물학자였던 뮬러는 1770년대 초기부터 도자기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후 줄리앙 마리 황태자와 그의 아들 프레드릭 왕자가 주식을 매입하여 약 100년간 로얄 코펜하겐은 황실에서 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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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로얄 코펜하겐은 민간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그 후로도 왕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1882년 로얄 코펜하겐은 화가 겸 건축가인 아놀드 크로우를 아트 디렉터로 영입하며 도자기에 풍경화와 자연을 표현하는 기법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로얄 코펜하겐은 2세기 이상 유럽을 대표하는 자기로 명성을 이어왔다. 최고급 자기인 로얄 코펜하겐의 제품 중에서도 많은 컬렉터들이 애정을 쏟는 것이 매년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이어 플레이트(Year Plate)이다.

자연과 사람, 건물 등이 빗어낸 따뜻한 풍경이 인상적인 이어 플레이트는 그 해를 기념하는 대표적 작품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어 플레이트는 한 해 동안만 제조하고 해가 지나가면 형틀을 깨버린다.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보니 그만큼 희귀하다.

그녀는 이어 플레이트를 비롯해 로얄 코펜하겐의 희귀작품도 적잖이 보유하고 있다. 이어 플레이트가 첫선을 보인 1908년 제품부터 1910년대, 1920년대 희귀 작품을 다수 갖고 있다. 1950년대 이후 작품은 거의 모든 제품을 컬렉션했다.

한밤중에 혼자 깨어 확대경으로 컬렉션을 보는 재미
“요리 배우러 다니다 도자기에 빠지고 말았죠”
그녀의 컬렉션 리스트에는 시계도 포함된다. 모양이 예뻐 모으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적잖은 제품이 모였다. 그녀는 특히 아르데코 시대 시계를 좋아한다. 아르데코 스타일답게 심플하면서도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컬렉션의 매력이요? 밤에 잠이 안 올 때 있잖아요. 그럴 때 책도 읽지만 가끔은 확대경을 끼고 컬렉션한 제품을 하나하나 감상해요. 깊은 색감과 세밀한 그림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와요. 컬렉터들이 아니면 모르는 희열이 있어요. 또 예쁜 자기에 맛있는 음식을 담아 파티를 할 때도 보람을 느껴요.”

그녀는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지금은 믿을만한 브로커를 통해 사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게 거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컬렉션을 할 때 원칙이 있다. 다른 컬렉터가 먼저 관심을 보인 제품은 손을 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기한테 오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면 그것으로 흡족하다고 말했다.

“성격이 지나간 것에 별로 애끓이지 않는 편이 아니라서요. 어찌 보면 앤티크 제품들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 갈 거잖아요. 가끔은 제가 앤티크 제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앤티크 제품이 저를 소유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항상 저한테 있을 것도 아니고요. 자기를 좋아하는 며느리가 들어오면 좋겠지만, 꼭 그러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자식이라도 좋아하지 않으면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에요. 앤티크는 사랑받는 게 중요하니까요.”

도자기 제품은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물을 보는 것이 다르다. 국내 자기는 박물관 등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유럽의 자기는 실물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 그녀는 그런 현실이 안타깝다.

기회가 된다면 미술사나 자기를 공부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컬렉션을 함께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컬렉터로서 그 정도의 사회적인 책임은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 신규섭·사진 서범세 기자 wawoo@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