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세계에서 분산투자(diversification)라는 용어처럼 애용되고, 그만큼 또 널리 알려진 용어도 드물 것이다. 금세기 들어 이 분산투자라는 용어는 바이 앤 홀드(Buy & Hold)로 대표되는 전통적 장기 투자전략과 거의 동의어처럼 되어 버렸다. 월가의 대형 펀드나 금융기관들이 ‘투자에 성공하려면 분산투자를 해야 한다’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오면서 ‘성공적인 투자=장기투자=분산투자’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이다.

대부분의 재정설계 어드바이저들 역시 이 룰을 금쪽같이 여기고 있고,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금융당국 역시 투자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업계로 하여금 분산투자에 대한 각종 내부지침을 만들고 이를 까다롭게 적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분산투자가 성공적인 장기 투자와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된 이 상황은 다양한 투자종목에 자금을 분산시키는 것이 리스크를 줄여준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필자도 은퇴설계를 하거나 다른 용도의 장기투자 계획을 세울 때 그러한 이유를 들어 다양한 종목들로 포트폴리오를 분산할 것을 조언한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이러한 분산투자가 관행처럼 될 때는 최선책이라기보다는 차선책에 가까울 소지가 많다. 물론, 차선책이라 해서 무작정 매도해버릴 수는 없다. 다만 투자자들 스스로 각자의 포트폴리오 분산 내역을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성은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부분이 따르고 있는 분산투자의 원칙이 왜 최선책이기보다는 차선책일 수 있다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내 포트폴리오의 분산 내역이 그저 분산을 위한 분산으로 구성되었다면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여기에 실은 중간지점이란 있을 순 없다.

정확한 시장분석에 따라 미국 증시는 사자로, 채권은 팔자로, 일본 증시도 팔자 등으로 투자전략을 세우고, 그에 근거해 ‘결과적으로’ 분산될 수밖에 없는 내 포트폴리오의 구성이라면 이는 말 그대로 리스크를 통제하면서도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좋은 분산투자의 실례가 되겠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거나 생각해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원칙 적용을 위한, 즉 분산을 위한 분산으로 이뤄진 분산 포트폴리오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분산투자는 투자를 위한 것이지 분산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전략에 대한 충분한 상고 없이 투자 아닌 분산을 위해 이뤄지는 포트폴리오 구성이 얼마나 많은지 모를 일이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분산 자체가 목적이라면 사실 정부채권이나 저축계좌가 적절한 것이지 증시 등 다른 데 투자할 이유가 없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분산투자가 성공적 장기투자와 같은 의미로, 내지는 그 열쇠로 받아들여지는 요즘의 투자대중 인식은 큰 오해다.

투자의 성공은 그것이 장기이든 단기이든 분산 자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성공할 수 있는 투자대상을 예상하고, 시장의 흐름을 파악해내는 기술과 방법, 분석 능력에 근거한 것이다. 이에 따라 때로는 여러 종류의 투자대상에 걸쳐 자금이 분산될 필요가 있을 수 있고, 때로는 소수로 집중될 필요도 있는 것이다.

투자대상을 포착하고 분석 판단하는 노하우가 전제되지 않은 맹목적 분산은 절대로 리스크를 줄여주지도 성공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지금 내 포트폴리오의 분산은 전략적 분산인가, 맹목적 분산인가를 점검해보자.
분산투자의 허와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