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N GI JUN

Alfred Dunhill의 ‘2010 S/S 컬렉션’ 룩이다. 베이지 컬러 하프 점퍼와 조금 더 짙은 베이지 컬러 팬츠로 마무리 했다. 시계는 Jaeger-LeCoultre 제품.
Alfred Dunhill의 ‘2010 S/S 컬렉션’ 룩이다. 베이지 컬러 하프 점퍼와 조금 더 짙은 베이지 컬러 팬츠로 마무리 했다. 시계는 Jaeger-LeCoultre 제품.
1988년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 ‘레인 맨’. 2008년 런던 아폴로 극장에서 연극으로 개작된 이 작품이 지난 19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다. 극중 ‘찰리’역을 맡아 하루 12시간을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연기자 원기준을 만났다. 그와 나눈 일곱가지 키워드 인터뷰.
Brioni의 옅은 레드 스트라이프 셔츠와 함께 짙은 네이비 컬러 스트라이프 팬츠로 매치했다. 슈즈는 레드와 화이트 포인트 운동화.
Brioni의 옅은 레드 스트라이프 셔츠와 함께 짙은 네이비 컬러 스트라이프 팬츠로 매치했다. 슈즈는 레드와 화이트 포인트 운동화.
슬럼프 “하필 처음 뽑은 질문이 ‘슬럼프’라니, 키워드가 너무 어려운 것 아니에요?” 드라마에서 연극, 뮤지컬에까지 연기자 원기준은 어디서든 돋보이는 배우다.

첫 번째로 뽑힌 키워드 ‘슬럼프’에 농도 약한 불평이 시작되는가 했더니 작정하고 풀어놓는 이야기다.

“1994년 SBS 공채 4기로 데뷔한 이후 매 순간 슬럼프에 빠진 것 같아요. 드라마나 영화 등 일이 많아도 슬럼프, 일이 없어도 슬럼프를 겪었죠. 제 스스로에게 이 일이 정말 맞는지 되묻기를 수백 번도 넘게 한 것 같네요.

기계적으로 닥친 현실에만 급급하며 대사를 주고받고, 집에 오면 쉬고를 반복했던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봤어요.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나 하고 말이죠. 그럴 때면 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요. ‘나 자신만의 슬럼프 탈출법’은 바로 ‘여행’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일탈해 삶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즐기죠.”
Faconnable에서 준비한 캐주얼 룩이다. 핑크와 그레이 체크 셔츠와 짙은 컬러의 진, 운동화는 레드와 화이트 컬러로 활동성을 강조했다. 의자에 걸친 재킷은 네이비 컬러로 레드 컬러 안감으로 조화를 이뤘다. 시계는 Jaeger-LeCoultre 제품.
Faconnable에서 준비한 캐주얼 룩이다. 핑크와 그레이 체크 셔츠와 짙은 컬러의 진, 운동화는 레드와 화이트 컬러로 활동성을 강조했다. 의자에 걸친 재킷은 네이비 컬러로 레드 컬러 안감으로 조화를 이뤘다. 시계는 Jaeger-LeCoultre 제품.
남자의 오기 “연기를 하면서 가장 큰 슬럼프를 겪었던 시기는 1999년에서 2000년 사이였어요. 일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대리운전에서 트럭, 공사판에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죠. 데뷔한 이후 첫 2년간은 승승장구했었거든요.

SBS 공채 4기 중에서 김남주 씨랑 저는 모든 간판 프로그램에 출연할 정도였죠. 그러던 차에 군대를 가게 됐고, 제대 후에도 곧바로 드라마 주인공에 캐스팅 됐어요.

하지만 그 드라마가 조기 종영하게 된 후 첫 좌절을 맛보게 됐죠.”

그렇게 한동안 연기에 손을 놔 버리면서 ‘감’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럴수록 천착하게 되는 것은 ‘연기가 과연 내 길일까’하는 고민이었다.

“그 때 서울예술전문학교 재학 시절 한 교수님이 전해주신 시인이자 극작가인 故 유치진 선생님께서 남기셨단 말씀이 떠올랐어요.

‘너희들이 10년 동안 노력하지 않고는 그 길이 너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버려라.’ 그래서 다시 연기와 함께 하기로 했죠. 10년은 노력해 본 후에 결정하기로요.

1994년 데뷔했지만, 군대를 다녀왔으니 실제로 연기와 함께 한 것은 2006년이 10년이 되는 ‘마지노선’이었어요. 그런데 2005년 말 ‘주몽’에 출연하게 되면서 배우인생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참 신기하게도 ‘주몽’ 출연 후 ‘연기 대상 신인상’을 받았어요. 데뷔 10년이 지난 배우가 받은 신인상, 아이러니컬하지 않나요? 하지만 저는 의미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지금까지가 준비하는 10년이었다면, 앞으로는 도약하는 10년이 될 것이니까요.”
Canali의 옅은 네이비 스트라이프 재킷과 그레이 팬츠, 화이트 셔츠로 기본 룩을 표현했다.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는 룩의 포인트는 바로 그레이 컬러 스카프다. 블랙 슈즈는 Bally 제품.
Canali의 옅은 네이비 스트라이프 재킷과 그레이 팬츠, 화이트 셔츠로 기본 룩을 표현했다.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는 룩의 포인트는 바로 그레이 컬러 스카프다. 블랙 슈즈는 Bally 제품.
돈과 명예 “이번 키워드도 너무 어렵네요(웃음). 전 돈이야말로 사람이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돈은 혼자서 움직일 수 없잖아요. 어려서부터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함을 깨달았고, 그들을 소중히 여겼더니 저한테 돈을 가져다주더군요. 돈만 쫓으면서 돈을 벌기 위해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을거예요.”

어려서부터 여행을 좋아한 그의 ‘무작정’ 여행 가운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 “고 1 여름에 떠났던 시골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돈이 한 푼도 없어서 어느 노부부의 집에 무작정 찾아가 하룻밤 재워달라고 부탁을 드렸어요. 다음 날 아침 머슴밥 같이 수북하게 퍼주신 밥을 맛있게 먹고 일어서는데, ‘밥 값 해야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밭일을 했어요. 3일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할머니께서 허리춤에서 꼬깃꼬깃한 돈 3만 원을 꺼내 손에 쥐어주시더군요. 집에 돌아가 다리미로 잘 펴서 앨범에 넣어뒀는데 지금까지도 앨범 속에 그대로 있어요.

요즘 누가 재워달라고 서슴없이 문을 열어 주겠어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갑게 받아주시던 노부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돈과 명예야말로 남이 대신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잖아요. 직함이나 지휘도 상관없어요.

내 스스로가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하고, 인간 원기준으로서 자연스럽게 제 길을 걷다보면 사람들이 훗날 평가하겠죠. 하지만 그 순간, ‘진심이 우러러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Nina Ricci의 매력적인 체크 블레이저와 그레이 컬러 팬츠다. 브이넥으로 목선을 강조한 스타일링에 퍼플의 조화가 멋스럽다. 슈즈는 술 달린 로퍼로 Bally 제품.
Nina Ricci의 매력적인 체크 블레이저와 그레이 컬러 팬츠다. 브이넥으로 목선을 강조한 스타일링에 퍼플의 조화가 멋스럽다. 슈즈는 술 달린 로퍼로 Bally 제품.
사랑 모든 인터뷰에서 항상 아내 자랑을 빼놓지 않았던 그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키워드도 빠질 수 없을 터.

“2006년 12월 21일 결혼했으니까, 햇수로 이제 4년이네요. 아내와 처음 만난 건 정말 예고된 건 아니었어요. 처음 만났을 땐 다른 사람과 엮어주려고까지 했었거든요(웃음).

두 번째 만나던 날도 당시 제게 골프를 가르쳐 주던 캐나다 골프 선수와 셋이서 연극을 보러 갔어요. 연극을 보던 중에 무심코 옆모습을 바라보는데 아내 얼굴에서 빛이 나더라고요. 갑자기 너무 사랑스러워 보이는 거예요.

내 여자라는 느낌, 정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사랑’은 믿음을 밑바탕에 두고 있을 때 가능한 것 같아요.

아내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당연한 생각인 것 같아요. 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다 줄 수 있어요.

생각을 하다 보니, 저는 정말 복 받은 사람 같아요. 주변에 조력자들이 많고, 항상 사랑 받아 왔거든요.”
Pal Zileri의 핑크 톤 블레이저와 팬츠다. 눅눅했던 겨울을 벗고 산뜻한 봄에 어울리는 룩이 아닐 수 없다. 화이트 컬러 셔츠와 브이넥 니트로 함께 코디했다. 시계는 Jaeger-LeCoultre 제품.
Pal Zileri의 핑크 톤 블레이저와 팬츠다. 눅눅했던 겨울을 벗고 산뜻한 봄에 어울리는 룩이 아닐 수 없다. 화이트 컬러 셔츠와 브이넥 니트로 함께 코디했다. 시계는 Jaeger-LeCoultre 제품.
Dreams Come True “가장 큰 꿈은 제 아이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우리 아빠 최고’라고 말해주는 것이에요(웃음). 그런데 솔직히 현실적으로는, 이미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 왔고,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이뤘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꿈은 꾸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운 일이에요. ‘앞으로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 오늘 집에 가서 즐거운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와 같이 하루에 1분, 10분씩 잠깐 잠깐 미래를 그려보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고, 이루지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바로 행복으로 다가오니까요.”
Galaxy의 네이비 체크 재킷과 핑크 컬러 팬츠로 산뜻한 룩을 표현했다. 브라운 컬러 벨트와 함께 매치한 슈즈도 역시 브라운 컬러 Bally 제품이다. 시계는 Jaeger-LeCoultre 제품.
Galaxy의 네이비 체크 재킷과 핑크 컬러 팬츠로 산뜻한 룩을 표현했다. 브라운 컬러 벨트와 함께 매치한 슈즈도 역시 브라운 컬러 Bally 제품이다. 시계는 Jaeger-LeCoultre 제품.
연극 ‘레인맨’ “자신의 야망과 꿈을 펼치기 위해 애쓰지만, 가족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채 살아온 동생 ‘찰리’ 역을 맡았어요. 세상과 단절된 인물인 찰리가 자폐증에 걸린 형 레이먼드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보이지 않는 자폐증을 치료하는 이야기입니다.

연극은 전반적으로 찰리의 눈을 통해 자폐증을 보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자폐증 환자에 대한 지식 없이 형을 바라보게 되요. ‘똑같은 사람이지만, 단지 표현 방법이 다른 사람’이 바로 형 레이먼드에요. 형과 함께 하면서 그와의 교감을 통해 따뜻한 형제애를 느끼게 되죠.”

총 1시간 40분 중에서 1시간 37분이나 등장하는 찰리는 쉴 새 없이 말을 해야 하고, 사건은 계속해서 일어난다. ‘레인맨’은 마치 로드무비 같은 연극. 시니컬하면서 다혈질인 성격의 찰리는 배우에게 적지 않는 고민을 안겨줬다.

“바보 같은 실수를 했더라고요. 나는 이미 찰리인데, 저보다 찰리를 더 잘 보여줄 사람은 없는데, 왜 내가 찰리가 되고자 고민을 했을까 싶었죠. 이후로는 그저 편하게 내 안의 찰리를 끄집어내어 보여주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내 안의 찰리가 반응하고, 생각하는 과정이 사실은 아직도 어려워요. 제 롤 모델인 ‘남경주’ 선배와 같은 역으로 더블 캐스팅 된 것이라 잘해야 되겠다는 부담감도 있고요. 예술의전당에서 2월 19일부터 3월 28일까지 50회 공연이 시작돼요.

원기준의 ‘찰리’, 꼭 보러 오세요. ‘형 레이먼드와 놀고, 연인 수잔나와 놀고, 그 안에서 관객과도 함께 노는’ 여유 있고 공감 있는 무대가 될 거에요.”

나이 든다는 것 “솔직히 나이 먹는 걸 못 느끼겠어요(웃음). 1974년 2월 태어났으니 서른일곱 살이 됐네요. 10년 전만 해도 열정적으로 일을 즐기긴 했지만 솔직히 그땐 연기보단 외모에 더 신경을 썼어요.

‘무슨 옷을 입을까. 표정은 어떻게 할까. 제스처는 어떻게 할까’ 등 외적인 것에 집중할 땐 모니터를 통해 보는 제 모습은 어딘가 부족해 보이더라고요. 나이가 들면서 공연이나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감정에 집중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제 감정의 흐름에 대한 상대방의 감정에 대응하는 법을 알게 됐죠.” 하지만 서른일곱의 원기준은 ‘연기에 발전이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세월이 흘러 중년배우가 됐을 때 ‘멋있는 배우’로 불려지기를 바랄 뿐이다.

“주름이야말로 얼굴 표정에 따라 얼굴에 골이 생기는 거잖아요. 어떤 표정을 짓는가에 따라 다른 주름이 생기게 될테니, 제가 항상 행복하고 즐거우면 얼굴 주름도 그렇게 생기게 되겠지요.”

‘배우 원기준’. 도약의 10년이 흐른 후 다시 이 의자에 앉아 있을 그는 왠지 농도 짙은 중후함으로 주름마저도 빛나게 할 것 같다.
내 삶에 관한 일곱가지 ‘소회’
Editor 김가희 Assistant Editor 정인영 Photographer 김유철(피에스타 스튜디오) Stylist 엄정민, 김정애(위버) Hair&Makeup 김영순
Cooperation Alfred Dunhill(02-542-0385), Bally(02-511-1522), Brioni(02-516-9686), Canali(02-3445-6635), Faconnable(02-2109-4476),
Galaxy(02-2076-6433), Jaeger-LeCoultre(02-3440-5522), Nina Ricci(02-2076-7277), Pal Zileri(02-3447-7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