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가 홍지윤

픔도 괴로움도 7분만 씹고 버려, 이 썩고 속 썩으니 7분만 앓고 버려.’ 최근에 읽은 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신현림 시인의 싯구이다. 가속 장치라도 부착해 놓은 듯 재빨리 바뀌고 순식간에 변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려면 감정의 속도도 그에 맞게 빠르게 변환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동양화라고 예외일 수 없다. 먹의 농담을 살려 그린 모노톤, 여백의 미, 정중동 동중정(靜中動 動中靜)의 이미지는 수묵화의 미덕이긴 하지만 현대인의 성정에 어필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뭔가 새로운 자극과 참신한 감각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동양화는 그저 우리나라의 옛 그림 양식으로서 늘 그 자리에 머물게 될 것이다.점잖음 대신 발랄함을 택한 홍지윤, 그녀는 동양화를 근간으로 흥미진진한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다. 우선, 정신이 번쩍 들게 할 만큼 화려한 색채가 시선을 끈다. ‘인생은 아름다워’ 연작은 그야말로 형광 컬러 꽃들의 향연. 먹으로 오리, 새, 매화 그리고 작가를 형상화 한 듯한 볼륨감 있는 몸매의 여인 등을 그린 검정색 바탕 위에 피어난 형광 꽃들은 리드미컬하게 화면을 채운다. 잔물결이 이는 물 위에 꽃 무리가 소용돌이치기도 하고, 커다란 한 송이 꽃 안에 여러 송이가 피어나고, 비눗물을 묻혀 ‘후’ 불면 비눗방울이 몽글몽글 생기듯 화면 여기저기에 형광 꽃들이 동동 떠다니며 황홀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이런 색채 때문일까? 그녀의 그림을 보노라면 은근함, 느림, 관조 등의 단어가 어울리는 기존의 동양화와는 달리 활기, 젊음, 환희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은연중에 간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조선시대 선비 같은 옛 그림과 달리 홍지윤의 작품은 똑 부러지게 의사표시를 하는 요즘의 20대 젊은이를 닮았다.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현재 동양화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력을 고려한다면 그녀의 이름 앞에 ‘동양화가’ 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는 작가는 특정 분야의 화가라기보다 전방위적인 예술가에 가깝다. 그녀의 붓끝에서 탄생하는 현대적인 감각의 동양화는 한지에 머물지 않는다. 영상, 그래픽, 사진, 설치 등 다양한 매체와 결합하면서 다양한 변주를 보여준다.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이런 그녀의 작품은 이른바 ‘퓨전 동양화’로 불린다.특히 수묵 그림과 자작시를 담아 만든 수묵영상은 그녀의 예술적 감성을 새롭게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다. ‘백만 송이 장미’(2004)는 샹송 ‘백만 송이 장미’(우리나라에서는 가수 심수봉이 번안해 불렀던 그 곡이다)를 배경 음악으로 꽃과 글이 움직이는데, 이미지의 움직임이 재미나면서도 애틋한 감정을 자극한다. ‘사계四季’(2005)는 계절에 따라 떠오르는 단편적 단상과 수묵화가 어우러지는 작품으로 겨울, 가울, 여름, 봄의 역순으로 계절의 흐름을 구성한 것이 인상적이다(작가의 홈페이지www.hongjiyoon.com에 가면 작품 감상이 가능하다).“2003년 ‘화선지 위의 시간’이라는 책을 만들었어요. 1997년 즈음부터 써온 편지, 일기, 시 와 간간히 그려온 수묵드로잉을 함께 엮어 만든 것인데, 책 제목을 지으려고 그 안에 담긴 시의 제목들을 죽 늘어놓고 보니 결국 지나가는 시간 위에서 일어났던 또는 겪었던 감정들을 적어 놓았던 거더라고요. 이를 계기로 시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기회가 많아졌고 이를 수묵그림과 시로 영상에 담아봐야겠다 싶어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 ‘가을날 저녁에’(2003)라는 작품이에요. 이후 영상작업을 하면서 수묵의 특성과 그것을 닮은 제 감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면 화면 진행 속도가 느리게 전개되는 쪽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런 과정 속에서 ‘느림’으로 대체되는 동양적 사고를 재발견하게 되었고 이것을 ‘시간 흐름의 동양적 시각화’ 라고 표현 해 본 것입니다.”그녀의 영상 작업은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매료시킨 듯하다. 지난해에는 천호동 삼성생명 사옥 외벽의 대형 LED 스크린에 전시했었고, 내년 초에는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그녀의 수묵 영상이 보여질 예정이라고 하니 말이다.홍지윤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인지되는 두드러지는 특징은 앞서 말한 것처럼 화려한 색채와 디지털의 활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게 전부라면 그녀의 작품에 지속적인 호감과 애정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작품이 어떤 형태를 띠든 어떤 식으로 보여지든 작가는 그 기조에 동양화라는 기본적인 개념을 견고히 깔아 놓기 때문에 결코 가볍거나 장난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전통 동양화는 시서화(詩書畵), 지필묵(紙筆墨)에서 출발한다. 그녀의 작업은 시를 짓고, 그 시를 글씨로 옮기는 것에서 시작되며 이런 시와 글씨가 그림으로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내면에 일렁이는 온갖 상념과 감정을 작품 속에 풀어내는 것이다.“저의 최대 화두는 동양화를 통해 어떻게 지금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에요. 그래서 가능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시각으로 동양화를 바라보고자 노력하는 편이죠. 예를 들어 동네에 불이 났다면 강을 건너서 보아야 불이 얼마나 크게 났는지 세태를 살피고 불을 끄는 방법을 찾을 수 있잖아요. 예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틀을 만들어 그 안에 가두기보다는 자신의 분야를 다른 분야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거든요. 다른 작품들의 경향과 작가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경제, 사회 등에 관해 늘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 해요.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이 흐르고 현재에서 미래를 향해 살아가듯 예술가로서 자신이 호기심을 가지는 부분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넓고 깊은 시각을 가져야 하거든요. 그래서 그림으로써의 동양화뿐 아니라 설치나 사진, 그래픽, 영상, 디자인, 인테리어 등 다양한 각도에서 작업을 시도하는 거죠.”한때 퓨전이나 크로스오버 예술은 그 가치가 평가 절하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지만, 현대 미술의 특성과 시대적 흐름상 다른 장르나 매체와의 믹스앤매치는 오히려 필요충분조건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동양화의 본질에 더 가까이 접근하고 싶다고 한다. 지역적 특성이나 재료적 특성의 의미를 강조하는 동양화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 결국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동양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동양화를 전공한 예술가로서 궁극의 지향점이다.몸으로 화선지, 먹, 붓을 다루면서 정신적 요가를 한다는 그녀, 그림은 삶을 사는 방법이라는 그녀, 전시를 준비할 때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 그녀 그리고 개나리색 노란 바지를 즐겨 입을 만큼 탁월한 패션 감각을 지닌 그녀. 당분간 그녀를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연이은 개인전과 작품전을 비롯해 12월에 열리는 디자인페스티벌에 출품할 작품 제작, 국악축제의 포스터와 도록 디자인 등이 이미 그녀를 선점했기 때문이다.글 정지현 미술전문 칼럼니스트·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