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나라 위스키 시장 규모는 맥주나 소주 시장에 비해서는 작다고 할 수 있으나 보통 사람들의 주류 음용 비중에 비추어 보면 그리 작은 수치는 아니다. 짐작하건대 이 중 적지 않은 양이 아마도 폭탄주란 이름만으로도 무시무시한 형태의 술로 소비되었을 것이다.폭탄주란 보통 맥주와 위스키를 섞은 술로, 섞는 비중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알코올 도수는 10도 정도다. 폭탄주의 종류 또한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고 기발한 이름들로 불리고 있다. 마시는 방식에 따라서 중성자주, 태권도주, 타이타닉주, 충성주 등의 다양한 폭탄주가 존재하며, ‘2009학년도 서울대 신입생 수련회 자료’에 에메랄드주(소주와 맥주 이온음료를 같은 비율로 섞은 술), 고진감래주(맥주잔 속에 이온음료와 소주잔을 한 개씩 넣어 만드는 술) 등 4종류의 제조법이 소개되기도 했다.또한 섞어지는 위스키와 맥주 간에도 좋은 궁합이 있다 하여 하이트 맥주와 킹덤 위스키를 섞은 폭탄주를 일명 하이킹으로 불린다. 하이트 맥주를 맥주잔에 60% 따르고 위스키 잔에 킹덤을 조금씩 넣으면 잔이 천천히 맥주잔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섞이는데 덜 자극적이면서 달콤하고 목 넘김이 부드럽다. 맛 또한 마일드하고 다음 날 뒤끝이 없어 폭탄주를 부담스러워 하는 여성들이 마시기에 적당하다.위스키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를 비롯한 서구에서는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나 글라스에 얼음 혹은 물로 희석시켜 마신다. 이러한 음용을 통해 위스키의 색을 확인하고, 향을 맡아 보고, 위스키를 입 안에 넣었을 때, 입 안에서 굴릴 때, 위스키를 삼킬 때, 그리고 그 뒤에 느껴지는 여운까지의 네 가지 맛을 느끼는 것을 올바른 위스키 음용법이라 여긴다. 또한 위스키가 오크통에서 숙성될 때 1년에 약 2%씩 증발되어 사라지는 것을 ‘Angel?s share’라고 표현할 정도로 위스키 한 잔을 소중히 여긴다.이와 비교해 보면 다소 무지한 음용 형태인 폭탄주를 우리는 왜 즐겨하는가? 과거에는 상하관계가 분명한 수직적 관계 속에서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술 문화를 대표하던 것이 폭탄주였다면, 지금은 술자리에 재미를 불어 넣고 서로를 수평적 관계로 묶어 주는 긍정적 의미가 부각되고 있다. 덧붙여서 조화와 융합, 어울림이라는 한국적 정서도 폭탄주 문화에 한 몫을 한 것이리라.이어령 교수가 저서 디지로그에서 지적했듯이, 독립된 개별 음식 맛을 즐기는 서양의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데 섞이고 어울려서 어느 것이 어느 맛인지 모르게 융합 되어진 맛을 즐기는 것이 우리이며, 이를 대표하는 것이 김치이고, 쌈이고, 비빔밥이고 폭탄주일 것이다. 최근 들어 코벌라이제이션(Korea + Globalization)이란 신조어가 회자되고 있다. 1990년대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도입과 적용, 이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 및 글로벌화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였다면, 2000년대는 달라진 우리의 위상 및 경쟁력을 토대로 우리만의 것을 만들어 나가고, 이를 글로벌 시장에 적극적으로 보급해 나가는 것이 코벌라이제이션이다.일각에서 잘못된 음용 습관이라고 지적되고 있는 폭탄주도 코벌라이제이션 식의 재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우리 문화와 자연스럽게 융화시킴으로 해서 독창적인 우리 것을 만들어 나가고, 이를 전 세계인과 같이 향유하도록 만드는 것이 글로벌 시대를 살아나가는 우리가 지녀야 할 전향적 태도이다.장병선 하이트-진로그룹 하이스코트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