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유행했던 중국풍을 ‘시누아즈리(chinoiserie)’라고 한다. 태양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문화 역시 동양에서 시작해서 서양으로 전해지나 보다.‘문화’는 일방적인 것만은 아닐 터, 결국 서로 주고받은 영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도자기가 유럽에 전해진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상의 문화 환경을 지탱하는 가구, 그 가운데 특히 의자가 중국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있다.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해 명품으로 브랜드화한 의자들이 고가로 팔리는 현실이다. 그 유명한 디자이너들의 서양 의자에는 우리네 처마선과 버선코가 숨겨져 있다.20세기에 빛을 발하는 명나라 의자1963년에 만들어진 찰톤 헤스턴과 에바 가드너 주연의 영화, <북경의 55일>(55 Days at Peking)은 1900년 베이징에서 영국인들과 미국인 장교가 겪은 55일간의 역사를 담아낸 필름이다.이 영화에서는 서태후와 열강들과의 긴장감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 시기는 유럽에서 제1차 대전이 시작되기 전으로 좋은 시절, 즉 ‘벨 에포크’였다. 당시 중국에 머물렀던 주재원들은 그들의 집을 꾸미고 있었던 중국의 가재도구들을 귀환하면서 모국으로 들여오게 된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직전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들이 꾸려온 짐 속에서 발견된 디자인 요소들이 서구인들을 다시 눈뜨게 했다.독일은 바우하우스의 활약으로 건축과 가구들에서 실용적이면서 단순 명쾌한 디자인을 선호하게 된다. 이 운동을 기점으로 소위 모던 디자인이 출발하였는데 디자인의 이념은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가 주창한 ‘아트 & 크래프트’ 운동으로부터 아르누보나 아르데코 사조의 이론을 참고하였다면, 디자인 자체는 더욱 철학적인 명 시대의 의자를 주목하기에 이른다.우리 눈에 아주 익숙한, 헝가리 태생 모던 디자이너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의 의자도 그러하지만 같은 시대의 덴마크인 한스 베그너(Hans Wegner), 독일의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그리고 동아시아의 영향과 영감을 받은 바우하우스(Bauhaus)의 디자인에서 이런 특징이 그대로 나타난다. 여기에 모던 시대의 상징인 크롬과 투명 합성수지(Lucite)가 사용되면서 소재가 다양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그토록 놀랍게도 모방하고 있었던 명나라 의자를 어떤 정신으로 만들어진 것일까라는 제하의 리포트가 최근에 자주 등장한다. 그들이 다시 원류를 찾아보자는 뜻일까.평상심(平常心)으로 디자인된 의자‘中’이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것,‘庸’이란 평상(平常)을 뜻한다. 인간의 본성은 만들어지는 것이기보다는 천부적(天賦的)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 본성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본성을 좇아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도(道)일지 모른다. 이러한 도를 닦기 위해서는 궁리(窮理)가 필요하고 이 궁리를 교(敎)라고 한다.<중용>(中庸)은 요컨대 이러한 궁리를 연구한 책으로서 인간의 본성은 한마디로 말해서 성(誠)이라 여기고, 사람은 어떻게 하여 ‘성’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를 규명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중용의 미학일진대, 과연 이러한 중용적 자세로 디자인에 임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중용적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소재 그 자체, 기능 그대로에 만족하고 그것을 보여주는 것에 충실한 디자인이 아닐까. 물론 힘든 일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디자이너들은 끊임없이 과다한 장식의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明) 시대 의자(椅子)는 이 평상심으로 디자인되어진다. 그래서 이 시대 의자를 일컬어 ‘명상의 의자’, 즉 Meditation Chair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명나라의 의자는 단순함으로 특색을 이루고 조화된 비율과 기능적인 절제, 이와 더불어 차분함을 지니며 우아함과 청징(淸澄)한 취향의 결정적인 요소를 재확인 시켜준다. 본래 300년이 넘도록 엘리트 지식 계급을 위해 만들어졌던 명조(明朝;1368~ 1644)의 가구들은 놀랍게도 현대 예술가들이 지향하는 미니멀리즘과도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정교하게 장부촉(mortise) 이음으로 이어지고 장부(tenon) 이음 된 클래식 중국 가구들의 특색은 부드럽게 윤을 낸 표면과 단호하면서도 고운 무늬가 살아 있는 단단한 재목, 즉 경재(硬材)를 사용한다는 점이다.선비의 미감을 담은 미니멀 스타일 가구호화스럽고 훌륭한 소재를 쓰는 대신 가구 장식을 아끼고 자제하는 것은 위엄 있는 명나라 엘리트층의 문화적 미학을 반영한다. 소박하고 절제된 점은 우리네 선비의 미감(美感)과 같다. 그럼에도 목재의 물성을 그대로 들어내면서 오직 한 가지 재질만을 사용한다는 점은 우리네 선비의 가구와는 대비된다. 우리의 가구는 목리(木理)의 무늬를 살려 부분별로 각기 적합한 목재를 다르게 쓰는 것으로 상감을 하지 않으면서도 장식성을 부여하였기에 그러하다.동양에는 철학적 관념이 장식 미술과 재료에 많이 얽혀 있었다. 예를 들어 대나무는 약한 바람에도 쉽게 구부러지는 유연성을 상징하며, 대쪽이라 불리는 곧은 대나무 결은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성실함의 표상으로 여겨졌다. 중국에서 매화, 소나무와 함께 대나무는 삼우(三友)라 불리면서 예술의 모티프로 특별한 존중을 받았다. 속이 빈 등나무는 겸손함을 상징한다고 보았다.케인(Cane)이라 불리는 등나무 가구와 죽재(Bamboo) 가구는 그 모양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사용 빈도 역시 높은 편이다. 등나무 가구는 인도로부터 유럽으로 전해져, 윌리엄 앤드 메리 여왕 시대에 결정적인 모티프로 자리한다.이러한 자연관(自然觀)은 같은 시대의 학자들 사이에서 쉽게 발견된다. 한 중국학자는 “마디가 있는 나무뿌리의 자연 형태를 정관(靜觀)하여 마음과 영혼을 살찌게 할 수 있을 것이며 금붕어가 헤엄치는 대야를 창가에 둠으로써 생명의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이란 학자다운 탐구적인 일을 수행, 추구함은 물론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형태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물체와 소재는 미덕과 존경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자연과 삶의 일치를 주장했다.이 놀라운 관조의 결과를 우리는 명나라 가구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참고로 중국의 가구 가운데는 고목의 뿌리, 즉 근재(根材)를 다듬어 가구로 만드는 도교적 시선으로 디자인된 의자와 탁자들이 회화 속에 등장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에서 물권(物權)이 인권(人權)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동질적 삶의 요소로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동학(東學)에서도 물권을 주장한다. 이는 환경을 따로 떼어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하나라는 구성 요소로 본 것이다.1 중국의 로킹 체어로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의자뿐 아니라 서양 근대 로킹 체어에 큰 영향을 주었다.2 격자무늬의 중국 의자로 특히 21세기 디자인에서 기하학적인 요소를 가미한 디자인의자에서 찾을 수 있다.3 마르셀 브로이어디자인의 바슬리 체어.4 중국의 경재의자에 마르셀 브로이어가 강철파이프를 사용하여 바슬리 체어를 만들었다. 명품의자로 꼽힌다.5 붉은 색 나무 중국의자에 크롬 색의 철커버를 씌운 근대 중국 의자.6 조지언 시대의 중국 문양과 선이 그대로 투영된 의자.7 대나무의자로서 이 시기부터 유럽에서도 비슷한 디자인들이 나타난다.8 뉴욕 MOMA에 전시된 마르셀 브로이어의 의자 컬렉션. 중국 의자에 뼈대만 철로 바꿨다.9 의자는 아니지만 대나무를 묶은 느낌의 다리가 중국의 대나무 가구에서 영향을 받았다.10, 10-1 로코코 시대 시누아즈리를 보여주는 가구.정확하게 두 개의 의자가 일치하듯 비슷한 디자인을 보여준다.김재규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 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