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투자의 고수라도 불황기엔 장사가 없다. 객관적인 통계수치가 부족한 미술 시장에서도 이 같은 원칙은 그대로 통용된다. 금융위기로 시작된 지난 1년간의 경기침체는 미술 시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그나마 요즘 들어 꽁꽁 얼어붙었던 실물경기가 바닥을 치고 반등조짐을 보이자 겨우 한숨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사실 아트재테크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가 바로 해빙기이다. 자칫 방심했다간 큰 위험에 봉착할 수 있기에 더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지금 미술 시장이 바로 그 짝이다. 소소한 훈풍도 귀 얇은 컬렉터에겐 큰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지금 같은 시기에 미술품 투자를 고려하는 이에게 꼭 필요한 유의점을 열다섯 개의 키워드로 짚어본다. 특정 장르에 집착하지 마라. 2005년부터 시작된 ‘극사실주의 화풍’은 최근까지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실적인 기법의 그림을 좋아할까?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미술에 대한 사전지식이나 정보가 아직 충분하지 않은 ‘일반 미술애호가의 급증’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 작품들은 보자마자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이 느낀 감동을 다른 이와도 어렵지 않게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는 그림을 알아가는 과정이거나 개인의 성향이라면 몰라도, 무작정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시장의 대세’라고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행히 최근에는 같은 사실기법이라도 주제 선택이나 다양한 화면구성 등 작가 개개인의 감성이 녹아든 작품이 늘어나고 있다. 지나친 편식이 건강에 해롭듯, 무작정 트렌드만을 쫓으려는 습성 역시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재조정기 맞은 작가 중에도 옥석을 가려라. 경기가 나빠지면서 가격 측면에서 너무 과대평가되었던 상당수 작가의 시장가격이 크게 조정되고 있다. 웃돈을 주고도 쉽게 사지 못했던 작품이 거래가 뜸해졌다거나, 아예 전시가격에서부터 큰 할인율을 적용시키는 예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주문한 작품을 받기 위해 대기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예도 있다. 때문에 시세에 비해 가격이 크게 낮다고 무조건 살 일은 아니다. 과연 장기간 살아남을 작가인가, 선호도의 기복이 심하지 않은 작가인가 먼저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벌 마켓의 흐름에 주의를 기울여라. 이번 경기변화는 미술시장에도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이젠 ‘세계시장’이 대세이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국제적 경쟁력’의 유무가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수요자 역시 글로벌 아트마켓의 흐름을 유심히 살피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점차 국내외 마켓의 경계가 빠른 속도로 붕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만의 감성기호를 찾아라. 미술품에 대한 가치판단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장 큰 감동은 자신의 감성코드에 얼마나 맞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안목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과연 내게 가장 큰 감흥을 전해줄 작품을 직접 찾는 것이 중요하다. 작품의 색감, 주제, 소재, 작가의 성향 등 꼼꼼히 살피면 누구나 자신과 통하는 작품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신진 유망작가를 발굴하라. 난세에 영웅난다고 했다. 지금처럼 과도기와 혼란기를 동시에 겪고 있는 시기일수록 새로운 비전과 경쟁력을 갖춘 유망작가의 출현이 절실하다. 하지만 작가는 혼자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작품의 생산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향유하는 수요자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잠재적 가능성 있는 작가를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찾아 나서는 것도 한 방법. 다행히 젊은 신진작가의 경우 경제적 지출도 적어 부담이 적다. 미술강좌 수강으로 기초소양을 다져라. 미술애호가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동시에 진화하고 있다. 새롭게 편입하는 미술애호가를 대상으로 하는 교양강좌도 적지 않다. 미술품 감상부터 아트재테크 입문요령까지 알찬 강의내용이 돋보이는 예도 있다. 자신의 목적에 따라 강좌를 선택해 기초소양을 갖춰 나간다면 프로다운 면모를 다져나가기에 더욱 수월해진다. 객관적인 정보수집 루트를 개설하라. 맘만 먹는다면 주변에서 원하는 정보들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대개 인터넷이나 미디어 매체들이 대부분이다. 넘쳐나는 정보량으로 즐겁겠지만, 정보를 얼마나 취사선택할 수 있는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받을 루트가 필요하다. 비록 최종 선택은 주관적일지 몰라도, 관련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은 객관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뜻 맞는 이와 작은 모임을 형성하라. 적절한 투자를 요하는 기호 활동일수록 혼자하면 왠지 불안한 법이다. 혼자보다 코드가 맞는 여럿이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차후에 다른 성향의 소모임과 교류하게 된다면 더욱 풍성한 자료를 얻을 수도 있다. 소모임은 객관적인 검증과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장점이 있다. 새로운 유통형태를 눈여겨보라. 그림을 사고파는 가장 일반적인 형식은 화랑 중심의 유통방식이다. 여기에 한시적인 기간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아트페어가 성행하고 있다. 최근엔 ‘호텔아트페어’라는 흥미로운 전시 패턴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잠만 자던 호텔방 구석구석에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심지어 침대나 쇼파에도 작품이 놓인다. 머지않아 일상 공간에서도 자연스럽게 판매 가능한 미술품들을 심심치 않게 볼 것이다. 작품을 어디에서 사느냐보다, 어떤 작품을 고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라. 미술품 감상이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면, 미술품 투자는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이다. 그림책으로 보는 것보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직접 보는 것이 낫고, 단돈 10만 원이라도 직접 자신의 돈으로 작품을 구입해 보는 게 중요하다. 냄새를 맡는 것과 맛을 보는 것은 여운의 깊이가 다르다.작품가격 대비 효율성을 따져보라. 감상용이 아니라 경제적 부가가치를 염두한 작품구입이라면 ‘투자효율성’까지 생각하자. 명성과 인기가 높은 작가의 작품을 싸게 샀다고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가치는 살 때보다 되팔 때에 결정된다. 어떤 작품이냐에 따라 손에 쥐는 수익률은 크게 차이난다. 적정한 가격을 주고 최상 컨디션의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효과적인 투자법이다.경매의 테마세일을 잘 활용하라. 경기가 불안정할 땐 경매물건이 많아진다. 미술시장 역시 경매에 대한 거부감은 거의 없어졌다. 특히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엔 구매욕을 돋우기 위해 ‘테마세일’을 자주 한다. 특정한 주제를 정해놓고 작가와 작품을 엄선한 예가 많다보니, 조금만 부지런 떨면 양질의 작품을 좋은 조건에 확보할 수 있다. 관심 있는 경매사의 사이트를 주기적으로 체크하는 것도 요령이다.어떤 상황이든 타이밍이 중요하다. 모든 일은 결정적 계기에 이루어진다. 내가 작품을 구입할 시기, 판매할 시점, 경제적 여건과 지출금액, 스쳐 지나가는 주요 전시나 경매, 놓치기 아까운 고급정보, 우연한 절호의 찬스 등. 늘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성공을 안겨준다. 평소에 여러 상황을 가정해보는 워밍업이 필요하다.자신의 시행착오를 기록하라. 한 번의 실수는 시행착오겠지만, 두 번의 실수는 습관이다. 습관처럼 고치기 힘든 것도 드물다. 만약 컬렉터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시행착오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평소의 실수나 아쉬웠던 점을 기록하는 습관을 가져라. 다양한 정보를 자신의 구미에 맞게 정리해 놓을수록 실전에선 자신을 방어하는 무기가 된다.중장기적 안목을 기르고 멀리보라.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격언의 최신 버전으로 ‘낮게 나는 새가 더 많은 고기를 잡는다’는 말이 있다. 유능한 미술애호가에겐 둘 다 갖춰야할 덕목이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고기를 찾으려면 물 속이라도 들어가야 되고, 작가의 비전이나 시장의 흐름을 바르게 살피려면 대기 상층권까지도 비행해야 한다.결국 미술품 투자는 결단력, 순발력, 인내력 등을 동시에 갖출 때 성공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술품의 진정한 매력은 경제적 가치보다 감성적 가치가 더 우선한다는 점이다.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