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스톤자산운용 조병준 본부장

내 주식형 펀드의 환매세가 심상치 않다. 9월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만 순유출된 자금 규모만 2조4000억 원가량에 이른다. 올 들어 증시가 상승세를 이어가자 손실을 만회하거나 일부 수익을 낸 투자자들이 펀드에서 자금을 빼고 있다는 분석이다. 당연히 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나 펀드를 찍어낸 자산운용사들은 하루하루 살얼음을 걷는 기분일 수밖에 없다.하지만 이 같은 분위기완 전혀 다르게 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가 있다. 조병준 트러스톤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이다. 조 이사가 운용을 책임지고 있는 트러스톤칭기스칸펀드의 운용 성과를 보면 이 말이 이해가 간다.트러스톤칭기스칸펀드는 작년 6월 시장에 나왔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전신인 IMM투자자문이 운용사를 출범하며 시장에 야심차게 내놓은 펀드다. 운용 성과는 설정 후 3개월 만에 선두권으로 올라갔지만, 시장에선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판매량은 미미했었다. 반년이 넘어 작년 말을 앞두고 200억 원을 간신히 넘었을 뿐이다.하지만 올 들어 이 펀드에 자금이 뭉텅이로 몰리고 있다. 4월을 지나자 300억 원을 넘었고 6월엔 400억 원을 돌파했다. 1년 수익률이 최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오자 펀드 성과에 대한 검증이 끝났다고 판단한 것일까. 10월 9일 기준 이 펀드에 몰린 자금은 840억 원이 넘는다. 불과 석 달 사이 펀드 규모가 두 배로 불어난 것이다.특히 이 펀드에 몰린 자금 가운데 기관 투자가 돈은 한 푼도 없다. 모두 개인 투자자들이 이 펀드를 알아보고 돈을 들고 가입했다. 그만큼 시장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얘기다.이 펀드의 올 들어 수익률은 65%. 같은 기간 설정 잔액 10억 원 이상의 745개 국내 주식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45% 정도다. 시장 평균보다 무려 20%포인트나 초과 수익을 내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사실이 신문 등을 통해 알려지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대형 포털 사이트 지식 검색에 이름이 올라가고 은행 창구에서 “칭기스칸펀드 주세요”라는 말도 자주 들린다. 미래에셋이 급성장하기 시작한 초기 상황과 비슷하다.조 이사는 이 상황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라고 짧게 말했다. 기자가 가만히 있자 “사실 몸둘 바를 모르겠다. 뿌듯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고 첨언했다. “다른 펀드 매니저들이 저보고 ‘혼자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 같지 않냐’고 물어볼 정도”라고 말을 이어갔다.조 이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1998년 장기신용은행에 입사해 이듬해 주택은행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0년엔 다시 신영증권으로 이동했다. “평소 분석하고 시장을 보는 게 좋아 금융권에 들어갔고, 좋아하는 업무를 찾아 옮겨 다녔다”는 설명이다. 그는 2005년까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에서 거시경제 분석을 담당했고, 금융업종 애널리스트를 맡았다. 조 이사가 펀드매니저로 변신하게 된 것은 현 트러스톤자산운용의 대표이자 이 운용사의 전신인 IMM투자자문을 설립한 황성택 대표를 만나면서였다.“황 대표께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매니저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시장을 분석하고 숫자를 뽑아내는 일을 하다 보니 내심 직접 운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였습니다. 당시 매니저로 입사 제의를 받은 곳도 몇 곳 있었는데, 황 대표의 얘기를 듣다보니 그가 제시한 경영 철학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황 대표를 따라 왔습니다.”황 대표가 그에게 말한 경영 철학은 첫째가 ‘고객 수익의 극대화’였고 둘째가 ‘인적 자원에 최대한 투자’였다. 고객의 수익을 최대한 내주는 인재에겐 어떠한 보상이든 해준다는 얘기였다. 실제 그는 IMM에 입사할 때 후한 대우를 받았다고 했다.매니저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그는 황 대표와 지금은 브레인투자자문을 설립한 박건영 대표에게 매니저 업무를 배웠다. 황 대표와 박 대표 모두 시장에서 스타매니저로 꼽히는 인물인 만큼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다 운용사로 전환하고 첫 펀드를 내놓게 됐다.“칭기스칸펀드는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첫 데뷔 무대였습니다. 자문사에서 신생 운용사로 전환해 내놓은 첫 공모펀드였으니까요. 이 펀드가 잘 되면 운용사도 잘 되겠지만,반대의 경우엔 가망이 없었을 겁니다. 이런 각오로 운용에 나섰습니다.”물론 각오만으로 펀드가 잘 굴러가진 않는다. 기자가 인터뷰차 방문한 목요일 오후 조 이사를 포함해 모든 매니저가 회의실에서 나올 줄 몰랐다. 매주 목요일 장이 끝나자마자 황 대표부터 말단 매니저까지 회의실로 모여 끝장 토론을 하는 것이다. 간혹 휴식시간은 있지만, 이 토론은 밤 늦게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인터뷰 중간에 황 대표도 초췌한 얼굴로 회의실에서 나와 휴게실로 물을 마시러 이동하기도 했다.“이 회의에서 시장 분석과 종목 선정 등이 이뤄집니다. 회의에 참석한 누구든 시장과 종목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반대 의견도 나옵니다. 이러한 브레인스토밍을 거쳐 종목을 선정하고 시장을 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시장에 휩쓸리기 쉽습니다.”일례로 지난 8월 펀드 매니저들 사이엔 ‘7공주’라는 말이 돌았었다. 삼성전기 삼성SDI LG화학 등 일곱 개 종목을 일컫는 말로 시장의 ‘큰손’이 베팅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었다. 실제로 이 종목들에 몰빵한 펀드도 있었다. 하지만 트러스톤칭기스칸펀드는 이 같은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무시할 수 있었다고 조 이사는 설명했다.이 펀드의 전체 투자풀은 330여 개 종목이다. 리서치 팀이 탐방과 증권사들의 보고서 분석을 통해 포트폴리오군을 선정하고 이에 대해 일주일간 회의를 해 편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조 이사가 추구하는 운용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꾸준히’다. 매분기 매년 상위권에 포진해 있으면 최고 수익을 내는 펀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강세장에서 30% 더 벌고 약세장에서 30% 덜 빠지고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5% 더 벌고 5% 덜 빠지기만 해도 굉장한 성과를 내는 펀드입니다. 펀드는 장기 투자의 수단이기 때문에 단기 숫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운용하면 우리 펀드 고객들에게는 높은 장기 수익률을 돌려 줄 수 있습니다.”그의 꿈은 이미 이뤘다. 펀드 매니저였기 때문이다. 이미 이룬 꿈에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대학 기금처럼 오랫동안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를 맡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연 10%가량을 시장과 상관없이 절대 수익을 낼 수 있는 펀드를 꼭 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미국의 대학 기금처럼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자금을 맡아야 합니다. 이러한 펀드를 통해 장기 투자의 위대함을 실현해보고 싶습니다.”글 김재후 한국경제신문 기자 ·사진 서범세기자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