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사유하라

신의 가방 속엔 자그마한 넷북이 담겨 있고, 한 손엔 어디서든 이메일이 확인되는 블랙베리가 들려져 있다. 500마력이 훌쩍 뛰어넘는 슈퍼 카의 오너 드라이버일 수도 있고, 심지어 매주말마다 경춘가도를 자유로이 달리는 터프한 ‘레니게이드’여도 상관없다. 말하자면 당신은 ‘전통’보다는 ‘혁신’과 훨씬 어울리는 남자인 셈이다.하지만 2009년 가을, 남자의 진정한 스타일을 위해선 자신의 손목 위에 빛나고 있는 멋진 기계식 시계의 시침을 잠시 과거로 돌려야 한다. 그렇다. 잠시 동안 남성 슈트를 구성하는 데 있어 하등 쓸모없다고 여겨지던 베스트(조끼)가 이젠 진정한 신사와 그렇지 못한 남자를 구분 짓는 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사실 베스트가 요즘처럼 천대받는 건 ‘기술’이 크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남성복에서 실용적인 면이 아닌 장식적인 기능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타이가 유일하기 때문에 조끼 역시 원래 ‘멋’이 아닌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슈트가 남성복의 표본으로 받아들여질 무렵부터 조끼는 선택에 따른 옵션이 아니라 반드시 입어야 하는 필수품이었다.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쓰리피스 슈트를 제대로 입는 법에 대해 알아보자. 가장 먼저 쓰리피스 슈트를 입을 때 유의해야 할 점은 자칫 잘못하면 지나치게 다리가 짧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스타일일수록 몸에 맞게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번은 샤빌로에서 슈트를 맞춘 적이 있어요.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죠. 하지만 그 곳에서 제 몸의 수치를 재고 가봉을 하는 건 썩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어요. 마치 이발소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맨해튼 메디슨 애비뉴에 샤빌로에 기초한 남성 슈트 맞춤 점을 연 전설적인 디자이너 톰 포드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가장 클래식하지만 몸에 꼭 맞는 것이야 말로 클래식한 슈트의 기본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영민한 디자이너다.자신의 실루엣을 찾는 최고의 단서는 바로 최적의 사이즈를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슈트를 넉넉하게 입는 성향이 있는데(그것을 가장 기본적인 아메리칸 스타일인 ‘케네디 슈트’라고 위안하면서), 어깨 솔기선을 자신의 어깨의 끝이 아닌 중간에 솟아 있는 어깨뼈에 맞춘다는 마음가짐으로 재킷을 고르면 된다. 팬츠의 품 역시 재킷과 맞춰 고르다보면 평소 자신의 슈트 팬츠보다 통이 좁아지겠지만, 입다 보면 그것이 바로 자신의 실루엣이라는 걸 곧 알게 될 것이다.둘째, 클래식한 쓰리피스 슈트들은 대게 고급스런 소재로 된 의상이기 때문에 더 품격 있는 맵시를 내고 싶다면 수제품으로 된 커프스 링크나 버튼으로 교체하면 좋다. 시계 역시 스틸로 된 브레이슬릿보다 악어가죽으로 된 고급스런 기계식 시계가 훨씬 잘 어울리는 편. 혹시 이런 스타일이 너무 무겁다고 여겨지면 가문의 휘장이나 방패 등이 프린트된 ‘레지멘탈’ 타이(이 경우에는 다소 캐주얼한 쓰리피스 슈트와 잘 어울린다)나 사선 스트라이프 타이로 너무 고루해보일 수 있는 약점을 커버하는 것도 좋은 스타일링 방법이다.다음은 슈즈의 선택이다. 컬러는 대게 블랙 슈즈를 신으면 무난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브라운 슈즈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슈즈의 형태다. 클래식한 쓰리피스와는 누가 뭐래도 윙 팁이 찰떡궁합이다. 옥스퍼드 슈즈나 부츠보다 윙 팁 형태의 구두는 훨씬 정중해 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쓰리피스 슈트를 입는다는 것 자체가 ‘포멀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매치되는 액세서리 또한 격을 맞춰주는 게 좋다.다음으로는 슈트와 어울리는 가방인데, 요즘 들어 슈트에 백 팩을 메는 남자들도 많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세미 정장에나 어울리는 룩이지 정통 슈트와는 상극이니 절대 백 팩 쪽은 고개도 돌리지 말길 바란다. 일명 ‘007 가방’으로 불리는 브리프 케이스 역시 공식적인 비즈니스맨의 필수품이긴 하나 쓰리피스 슈트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쓰리피스 수트는 자동차로 말하면 ‘쇼퍼 드리븐’을 위한 차림이지 ‘오너 드리븐’을 위한 복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맨손으로 여유롭게 다니는 게 훨씬 멋진 애티튜드를 보여줄 수 있다.브리티시 스타일의 유행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 온 쓰리피스 슈트의 유행은 비틀즈와 같이 스트리트에서 비롯된 모즈 룩이 아닌 영국의 정통 귀족들의 스타일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결국 이런 슈트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위에서 말한 보이지 않는 스타일링 룰을 준수하는 것에 앞서 그 옷에 어울리는 인격과 교양 그리고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슨 옷 하나에 그렇게 까다롭게 구느냐고 반문한다면 ‘완벽한 패션이 가져다주는 무언의 자산을 누리기 위한’ 일종의 투자라고 말하고 싶다. 패셔너블한 상사, 멋진 아빠 그리고 센스 있는 남편과 비즈니스 파트너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법이니까.김현태 아트머스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