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 체어맨 W와 함께 달리는 오늘의 리더②

플웍스는 2000년 LG정보통신에서 Power Amp 전문기업으로 분사한 회사다. 현재는 정보통신 관련 부품을 만드는 ㈜피플웍스(Red)와 프로모션 회사인 (주)피플웍스 프로모션(Green), 종합광고대행사인 ㈜피플웍스 커뮤니케이션(Blue) 등 3개사로 구성돼 있다.올 3월 (주)피플웍스는 제조업, 광고업 등 이질적인 3개사의 CI통합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으며 기업의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김 사장은 전문경영인으로 3개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김 사장 인터뷰는 (주)피플웍스 구미공장에서 이루어졌다. (주)피플웍스가 추구하는 기업의 가치를 보려면 구미 공장을 한 번쯤은 방문해야 한다는 게 김 사장의 생각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매주 수요일 구미공장 방문은 거르지 않는다는 김 사장은 인터뷰를 위해 하루를 더 머무르며 기자 일행을 맞았다.공장은 구미 1공단 안에 있었는데, 오래되고 멋없는 다른 공장에 비해 산뜻한 외관이 눈에 띄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 사장과 함께 기자 일행을 맞은 우준환 부사장이 ‘2006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은 건물이라고 귀띔해줬다.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30여 분간 회사를 둘러보며, 우 부사장으로부터 회사와 관련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우 부사장은 (주)피플웍스는 초기 파워 앰프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파워 앰프, 중계기, LCD 인버터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축적된 고급 기술을 바탕으로 방위산업에 진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CD 인버터가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공장은 3층 건물로 1층은 전 라인이 자동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클린룸(Clean Room) 설비를 갖춰 고정밀 부품생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2층은 연구소와 회의실, 사무실 등으로 쓰이고 있다.정작 (주)피플웍스의 경영철학을 담은 곳은 야외에 있는 풋살경기장과 농구장, 그리고 3층이다. 구내식당이 있는 3층에는 직원들을 위한 검도장과 헬스장, 영화관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특히 3층에 있는 옥상 정원은 임직원들의 휴식공간으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옥상 정원에는 마침 점심을 먹은 직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공장 밖 풋살경기장에는 한 무리의 젊은 직원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은 김 사장은 운동을 하느라 점심을 놓치는 직원이 있어 근래 점심시간을 1시간 30분으로 늘였다고 했다. 그제야 이 회사의 사훈이 “Through people, we dare to see eternity(사람을 통하여 우리는 무한한 미래를 본다)”라는 사실이 떠올랐다.“서울에서라면 공장 안에 풋살경기장, 농구장을 만드는 게 불가능했을 겁니다. 구미니까 가능한 것이죠.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고, 무엇보다 우수한 인재들이 많습니다. 부모가 농사를 짓는 직원들이 많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덕에 참을 줄도 알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도 압니다. 농경사회의 윤리가 아직은 남아있는 거죠.”김 사장은 여느 CEO처럼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등 숫자로 회사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주)피플웍스의 매출액이 2008년 약 795억 원에서 올해 약 1211억 원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음에도 크게 자랑하지 않는다.“만약 외형적인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이미 몇 년 전에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을 겁니다. 2002년에 사장으로 왔을 때, 회사는 코스닥에 상장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제품이 앰프 하나였고, 단품 생산에 따른 위험이 컸습니다. 코스닥 상장이 시기상조라는 판단에 목표를 수정했습니다. 대주주뿐 아니라 소액주주인 종업원들의 반발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그런데 이듬해부터 매출이 줄고, 적자가 났습니다. 당시에 상장을 했다면 주가는 아마 반 토막이 났을 겁니다. 이후에 R&D에 투자하고 제품을 다양화하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죠. 내부 평가로 현재 우리 회사 주식의 가치는 액면가의 3배 정도입니다.”현재 앰프를 만들던 경쟁사들이 대부분 문을 닫거나 매출 규모가 현저히 줄어든 것을 보면 제품을 다양화한 그의 판단은 옳았다. 물론 그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내부 연구원들의 반발이 거셌다. 앰프에 이어 중계기, LCD 인버터 등을 개발하면서 그는 외부 인력을 들이지 않았다. 외부 연구진을 영입하는 데 따른 위험 요소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오랫동안 앰프를 만들며 기술을 쌓아온 사내 연구원들을 믿었다.그런데 연구원들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앰프만 연구하던 사람들에게 중계기를 하라고 하니 반발이 있을 수밖에. 당시 연구소장조차 그의 계획이 무모하다고 했다. 김 사장의 계획을 들은 연구소장은 “외과의사한테 치과에 가서 진료를 보라고 하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했다. 연구소장과 달리 한쪽에선 지금의 우 부사장처럼 “우리 기술력이면 가능하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무모해 보이던 그의 계획은 결국 성공했다.제품의 패러다임은 3년마다 바뀐다. 이제는 연구원들도 그 사실을 안다. 좀 나은 연구원들은 스스로 알아서 변하기도 한다. 좀 더 많이 아는 연구원이 동료를 가르치기도 한다. 자가발전을 하는 것이다.“비즈니스는 전쟁입니다.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때, 완벽한 준비란 없습니다. 그럼 늦어요. 비즈니스는 초기에 들어가야 마진이 좋거든요. 완벽하게 준비하기 이전에 총 쏘고 전쟁터에 들어가야 합니다. 전쟁에서 지휘관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전투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저를 믿고 따라준 우리 직원들이 늘 고마워요.”김 사장은 이런 변화의 힘을 강인한 체력에서 찾는다. 회사 내 풋살경기장, 농구장, 검도장이 있는 것만 봐도 김 사장이 체력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 김 사장 자신이 테니스, 검도, 스키, 등산을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인터뷰가 있던 그날 아침에도 새벽에 검도를 했다고 한다.(주)피플웍스에는 유달리 운동선수 출신들이 많다. 농구, 축구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동계올림픽에서나 겨우 볼 법한 컬링선수도 있다. 그와 검도를 함께 하는 직원은 일본으로 검도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다. 검도체육관을 하다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직원으로 데려왔다.“이 친구들은 모두 하나에 미쳐본 친구들이거든요. 이런 친구들은 방향만 잡아주면 폭발력이 있어요. 몸 실하고 마음만 곧으면 웬만한 일은 다 해냅니다. 운동에 쏟던 에너지를 회사로 옮겨오면, 회사로선 엄청난 잠재력을 얻게 되는 거죠.”운동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이뿐이 아니다. 운동은 기본적으로 자기수양이 뒤따라야 한다. 그는 40년 가까이 테니스를 해왔다. 하지만 최근 스윙법이 달라지면서 3년째 스윙을 바꾸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는 운동을 하며 ‘노력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다.‘페어 플레이 정신’도 빠뜨릴 수 없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정하다. 경기에 지면 결과에 승복할 줄 안다. 그는 비즈니스에서도 ‘페어 플레이’를 강조한다. 회사에서도 직원들이 공정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다.“비즈니스를 하다보면 항상 문제가 생깁니다. 체력이 뒷받침 되는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짜증을 내지 않습니다.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부하 직원에게 짜증을 내고, 탓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체력이 없어서 그래요.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쿨하게 받아들이고, 사장이 직접 나서서 사과하는 겁니다.”건강한 몸과 함께 직원들의 정신건강도 그의 주요 관심사다. 등산은 몸과 정신을 단련하는데 더없이 좋은 운동이다. 김 사장 자신이 매주 산을 찾는 등산 애호가이다. 매년 6월 창립기념일에 전 직원이 참석하는 창립기념 산행은 회사의 주요 행사가 된 지 오래다.“산에 가면 많은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버려야 그만큼 새로운 것을 채우죠. 매니지먼트의 마지막은 예지력, 직관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직관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자연 속에 있는 것입니다. 앰프를 처음 할 때 ‘이것만 해서는 2년 안에 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꾼 거죠.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산에 많이 갑니다.”산행은 한마디로 강행군의 연속이다. 1박 2일간 하루 14시간의 산행은 극기훈련이나 진배없다. 평소에 준비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힘든 코스다. 가끔 김 사장은 목표지점에 도달할 때쯤 부러 코스를 바꾸기도 한다. 비즈니스 환경은 늘 바뀐다. 바뀐 환경에 따라 목표를 수정해야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산행을 통해 그런 교훈도 함께 주고 싶었던 것이다.“저는 직원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회사나 경영자는 직원들에게 사랑과 믿음을 줘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매출이나 영업이익은 자연히 좋아집니다. 저희가 규모는 작아도 직원들 급여 수준은 대기업 못지않습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근무환경도 좋고요. 직원들도 회사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습니다.”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자기주장이 강하고, 그만큼이나 심지가 굳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결정하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차만 해도 그렇다. 현재 그의 차는 쌍용차 체어맨 W이다. 쌍용차만 세 번째이다. 올초 쌍용차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개인적으로 한 일간지에 법정관리로 흔들리고 있는 쌍용자동차에 응원의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그때는 우리 회사 회장님께서도 만류를 하셨습니다. 주변의 만류에도 응원 광고를 낸 건 쌍용차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차가 4륜 구동인 4Tronic 모델입니다. 4륜 구동 승용차를 개발한다는 게 쌍용차의 규모로는 큰 부담이거든요. 1위 업체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뚝심 있게 만들어 내거든요. 믿음이란 그런 데서 생깁니다.”처음 쌍용차를 탄 이유는 벤츠 엔진을 얹었다는 데 대한 호기심과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차의 성능이 뛰어났다. 승차감이 좋고, 쿠션도 딱딱한 듯 하지만 편안했다. 특히 코너를 돌 때 스티어링이 상당히 좋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차를 볼 때 외관이나 라이트의 모양 등 디자인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차를 좀 아는 사람들은 마력이나 서스펜션, 스티어링 등 차 본연의 성능을 중시한다. “성능에서는 쌍용차가 동일 가격대에서 최고”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새로운 모델도 쌍용차에 대한 믿음을 줍니다. 디자인만 조금 바꿔 새로운 모델이라고 출시하는 경우가 흔히 있거든요. 쌍용차는 달라요. 성능을 개선하려고 공을 많이 들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걸 보면 소비자를 지향하는 회사라는 생각이 들어요.”사람들은 자기와 닮은꼴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김 사장이 그랬다. 소비자를 지향하고 R&D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쌍용차와 (주)피플웍스는 닮은꼴이다. 작지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싶은 점 또한 닮은 점이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Beauty of Scale, 규모의 아름다움이다. 그는 매출액보다 1인당 영업이익을 더 중요시한다. 겉으로 보이는 외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핵심 역량만 내부에 두고 나머지는 모두 아웃소싱한다는 게 그의 오랜 구상이다.“외형보다 영속기업으로 얼마나 아름답게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독일 오스람 같은 기업은 3대에 걸쳐 다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곳은 입사할 때 직원 자녀에게 혜택을 주기도 합니다. 저도 이 회사를 직원의 손자들도 다니는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글 신규섭 ·사진 이승재 기자 wawoo@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