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승 세종문화회관 사장

종문화회관은 한국 공연예술계의 살아있는 역사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공간인 세종문화회관을 이끄는 사장은 단지 경영만 잘 알아서는 안 된다. 경영자로서의 자질뿐 아니라 문화적인 식견까지 고루 갖춰야 한다. 이 사장은 그런 점에서 세종문화회관 사장 자리가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주)한국폴라를 창업해 성공적으로 이끈 경영자인 그는 홍대 미대 출신으로 개인전을 5차례나 연 화가이기도 하다.지난 2008년 사장에 취임하면서 그는 “세종문화회관을 서울 시민을 섬기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나눔앙상블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세종 르네상스 과정을 통해 후원 세력을 싱크탱크화하는 일 등은 이를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다. 최근에는 그동안 버려졌던 지하보도를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 있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세종대왕 전시장 개관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1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약속시간에 맞춰 사장실에 도착했을 때 그는 외부 인사와 미팅 중이었다. 20여분이 흘러 회의실을 나온 그는 인사를 마치고 기자 일행을 다짜고짜 옥상으로 이끌었다.“아마 사진기자 분께는 처음 공개하는 곳일 겁니다. 옥상에 가서 보면 광화문 광장의 변화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만간 여기에 카페를 만들고, 시민들에게 공개하려고 해요.”엘리베이터로 5층에 닿은 후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서 그는 그렇게 말했다. 높이 28m(일반 건물 10층)에 달하는 옥상 전망대는 청와대, 경복궁, 광화문광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지만 그동안 보안상 이유로 일반인들의 접근이 금지돼 왔다.옥상 개방은 세종문화회관 개관 3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경찰청 등 관계기관과 협의를 진행 중인데, 올해 안으로 개방이 가능할 거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건물 옥상에 식음료 카페를 오픈할 것이라는 계획도 들려줬다. 이미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설계한 건축가 류춘수에게 카페 설계를 맡겼다.옥상에 이르자 그의 말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전망 좋은 하늘 카페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옆에 선 그가 다짐하듯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서울에서 이만한 전망을 가진 곳도 없을 듯 싶었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광화문 광장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 한가운데 세종대왕 동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계단을 내려오면서 그는 새 전시장이 있는 세종대왕 동상으로 다시 기자 일행을 이끌었다. 그는 그날 하루 가이드가 되기로 작심한 듯 했다. 인터뷰를 위해 접견실에서 그와 마주한 것은 30여분에 걸친 세종문화회관 투어를 끝낸 후였다.“세종문화회관에 오면서부터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알면 알수록 정말 대단한 분이세요. 세종대왕 하면 한글만 생각하는데, 이 분이 200여곡을 작곡한 작곡가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보다 중요한 건 백성에 대한 그의 사랑입니다. 지방 산골까지 그의 애정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세종조에 한 번은 지방에 어떤 여자가 남자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주문만으로 남자를 살해했다는 겁니다. 세종대왕이 이야기를 듣고, 사람을 급파합니다. 알고 보니 밥을 먹던 남자가 급사한 거죠. 요즘으로 치면 뇌졸중이나 그런 병이었겠죠. 그 누명을 여자가 덮어쓰게 된 겁니다. 오랜 고문 끝에 삶을 포기한 여자가 죄를 인정한 거죠. 이 일을 계기로 대왕은 고문을 금하는 칙령을 내리게 됩니다. 세종대왕에 대한 이런 기록은 한 두 개가 아닙니다.”“배우는 게 많죠. 세종대왕이 백성을 생각했듯이, 저도 서울시민을 생각합니다. 작년에 취임하면서 갑과 을의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민을 왕으로 생각하고, 시민의 입장에서 세종문화회관을 개선하려고 노력했습니다.”세종문화회관의 모든 임직원은 서울시민을 섬기는 자세로 일을 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오랫동안 관료화된 직원들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세종문화회관에 와서 그가 처음 마주친 벽이 ‘칸막이 문화’였다. 자신만의 벽을 치고 그 자리에 안주하려는 직원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일을 시켜도 다른 사람에게 시키기 일쑤였다. ‘칸막이 문화’를 없애기 위해 인사도 자주 했다. 조직을 쇄신하기 위해 일부 직원을 해고하는 아픔도 겪었다.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내홍도 겪었다. 그의 인사에 반발한 직원이 서울시에 투서를 한 것. 2개월 이상 이루어진 감사는 오히려 그간의 경영성과를 보여주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그는 그간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다. 다행스럽게 이제는 직원들도 그의 진심을 조금씩 안다. 일을 통한 성취감을 경험한 직원들도 적지 않다. 최근 문을 연 세종대왕 전시장도 직원들에게 보람을 안겨준 대표적인 사업이다.사실 세종대왕 동상 건립 계획에 전시장은 애초에 없었다. 동상 건립만으로는 세종대왕을 기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그가 전시장 아이디어를 냈다. <세종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보람도 컸다.무엇보다 그 자신이 세종대왕이 지닌 무궁무진한 이야기보따리에 놀랐다. <세종이야기>를 통해 그는 단순히 화폐에서 보는 세종대왕의 얼굴 이외에 많은 정보를 전해주고 싶었다. 그는 “광화문 광장의 폐쇄된 지하보도가 단순히 관리소로만 활용된다는 것이 비효율적이라 생각해 착안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처음에는 관계자들 모두 난색을 표했다. 시간도 부족했고, 예산도 없었다. 불가능해 보이던 사업을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지금까지 사업한 것을 보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일반 정치인이라면 오 시장처럼 시정을 못 볼 겁니다. 개인의 욕심을 앞세웠다면 지금처럼 일하지 못했을 거예요. 문화에 대한 식견도 상당히 높고요. 저랑은 코드가 맞는 것 같습니다.”“그런 면도 없지 않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오 시장을 높이 평가합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카리스마가 있거든요. 오 시장 인상이 부드럽잖아요, 그런데 서울시 직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오 시장입니다.”“저랑 비슷한 거죠. 칸막이 문화에 젖어있는 것을 못 봅니다. 아마 역대 서울시장 중에서 가장 많은 직원을 내보냈을 겁니다. 저야 6명 정도에 그쳤지만요. 이미지 좋게 임기만 채우려고 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겁니다. 경영자는 경우에 따라서는 악역을 맡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경영자로서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변화의 핵심은 사람입니다. 자체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걸로 부족하면 교체도 해야 하거든요. ‘반드시 필요한 사람도 있지만 있어서 문제를 키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영자로서 그냥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되는 거죠.”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더 중요할 때도 있다. 미대를 나와 다섯 차례의 개인전을 한 화가이기도 한 그는 그림을 그리며 이 같은 진리를 확인한다. 지금까지 그의 그림은 소재는 주로 말이었다. 화가 이청승의 화폭에는 늘 살아 꿈틀대는 듯한 말이 있다. 젊어서부터 그는 말을 그려왔다.말은 항상 앞만 보고 질주한다. 그가 말에 천착해 그림을 그린 데는 말의 ‘질주본능’이 큰 영향을 끼쳤다. 젊은 시절 그가 그랬다. (주)한국폴라를 설립해 성공적으로 경영한 그는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문화를 다루는 월간 베세토라는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북경현우예술대학 이사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제디자인대학원 이사 및 아카데미 원장 등은 숨 가쁘게 달려온 그의 삶을 대변해준다.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그는 지난 1년 5개월을 정말 바쁘게 지냈다. 바늘 하나 꽂을 데 없이 꽉 짜인 일과 중에도 그는 화폭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늦은 시간 귀가를 해도 잠시 짬을 내 그림을 그린다. 늘 잠이 부족하니까 차 안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 그래도 집에 오면 그림을 그리면서 하루 일과를 정리한다. 화폭 앞에서 하루를 돌아보기도 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 시간이 그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시간인 셈이다.“요즘은 그림이 좀 변해요. 예전에는 어떻게 화폭을 채울지를 고민했다면, 요즘은 어떻게 비우는 게 좋을까를 고민하거든요. 마음을 많이 비우려고 합니다.”마음을 비운다고 일에 대한 열정이 식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옥상에 ‘전망 좋은 카페’도 만들어야 하고, 드림랜드 터에 들어선 ‘꿈의 숲’에 공연장 2개, 미술전시관 2개 등 총 8개를 직영하는 사업도 추진해야 한다.‘세종벨트’ 구상도 그 중 하나다. 세종벨트는 얼마 전 이 사장이 발표한 것으로 세종문화회관, 정동극장, 난타기념관, 금호아트홀, KT아트홀 등 광화문 일대 문화공연장을 하나로 묶어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궁극적으로 그는 이런 사업을 통해 우리나라가 제2의 르네상스를 맞기를 고대한다. 그는 이걸 ‘세종르네상스’라고 불렀다. 이를 통해 그는 세종의 긍정적인 정신, 창의적인 정신, 도전적인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려 한다.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