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천적은 이솝우화의 단골 주인공 ‘여우’라고 한다. 여우는 온갖 꾀를 내어 고슴도치를 공격해 보지만 그저 몸을 공처럼 둥글게 말아 온 몸에 돋아 있는 가시로 자신을 보호하고 앞으로 돌진하는 고슴도치의 지극히 단순한 방어법에 번번이 당하고 만다(물론 여우가 이기는 경우도 있다. 고슴도치를 물속으로 밀어 넣고 몸이 뒤집히는 순간 배와 다리를 공격하는 경우다).이런 여우와 고슴도치의 이야기는 라트비아 태생의 저명한 정치 철학자 겸 역사학자인 이사야 벌린(Sir Isaiha Berlin)의 저서 로도 유명하다. 이사야 벌린은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쿠스(Archilochus)의 시 중 한 구절인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한 가지 큰 것을 알고 있다’를 인용해 철학자와 역사학자를 사물의 세세한 부분까지 골고루 알고 있는 여우형과 사물을 단순화해 전체로의 큰 틀로 이해하는 고슴도치형으로 나누기도 했다.또한 이사야 벌린의 분류에 기초해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Good to Great)>이라는 저서에서 기업의 특징을 여우형과 고슴도치형으로 나누었다. 단순하고 투명한 개념아래 경쟁 우위를 잘 활용하는 고슴도치형의 기업이 위대한 기업이 된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결국 여우는 다양하고 화려한 재능과 분별력, 고슴도치는 전체의 본질을 보고 이를 단순화시켜 집중하는 능력을 대변한다.그런데 10여 년 전 읽었던 글로벌 기업 관련 책에서는 ‘여우는 모든 것에 대해 상당 부분 알지만 고슴도치는 특정한 것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 있었다. 여우형 기업은 다양한 업종의 사업을 다양한 지역에서 전개하는 다각화된 기업, 고슴도치형 기업은 특정 산업을 글로벌화 시키는 기업으로 비교하면서 두 가지 형태의 기업 모두 각각의 성장 전략과 장점을 비교 설명했다.당시에는 소니(Sony)와 도요타(Toyota)를 예로 들며 학계와 정치권에서 재벌기업의 광범위하고 무질서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질타하기도 했었다. 재계에서는 GE의 성공사례를 예로 들며 글로벌화에 다다를 때까지의 보호 필요성과 다각화에 의한 시너지의 중요성을 방어 논리로 공방이 벌어지고 있던 시기다. 여우는 다각화된 재벌기업, 고슴도치는 전업화된 전문기업을 대변하는 개념으로 비교한 내용이었다.그런데 필자는 지금 이 시점에서 여우와 고슴도치의 비교에 또 다른 비약을 해 보고 싶다. 고슴도치와 여우는 반드시 이분법적 양자택일의 대상이어야만 할까? 여우와 고슴도치의 장점을 골고루 융합한 ‘여우도치’는 나올 수 없는 것일까?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정말 눈부시고 그 변화의 속도는 감지해 내기조차 어려운 세상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1990년대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새로운 기술과 제품, 서비스가 매일매일 새롭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중에는 전혀 새로운 기술의 산물도 많지만 이종(異種) 기술 간의 융합에 의해 탄생된 새로운 제품, 용도, 서비스도 그에 못지않게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인문학과 자연 과학 간에도 통섭(統攝, Consilience)이라는 대결합이 시도되고 있다. 자기 영역만 충실하게 파고드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진 것이다.이제 경영자는 고슴도치와 같은 집중도와 통찰력, 거기에 다양한 장르와 산업에 대한 여우와 같은 폭넓은 분별력을 갖춰야 한다. 자, 이제부터 우리도 광속도로 진화하는 미래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창조물 ‘여우도치’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