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고객 만족 정신으로 원스톱 금융 서비스 제공”

렇게 출발한 A+에셋은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주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며, 국내 GA(General Agency·독립판매법인) 업계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GA란 개별 금융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다양한 금융회사의 펀드, 보험, 예적금 등 금융상품을 비교분석해 판매하는 회사를 말한다. 쉽게 말해 ‘금융판 하이마트’ 같은 회사가 GA다.A+에셋은 현재 20여 개의 금융기관과 제휴를 맺고 생명보험, 손해보험, 펀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2009년 7월 말 기준으로 월초보험료 20억 원, 계속보험료 350억 원, 13회차 보험계약 유지율 97%, 재무설계사 1500명, 스태프 200명 규모로 성장했다. 또한, 누적고객 12만 명을 돌파하였으며, 현재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제주 등 전국적으로 60개의 판매지점망을 구축하고 있다.이 같은 폭발적 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일부의 스태프를 제외한 초창기 창립멤버 대부분이 보험업계 최고 수준의 고능률 FC(재무컨설턴트)라는 데 있다. 이들이 기존 전속 보험회사를 그만두며 포기한 잔여수당만 합산해도 무려 50억 원 가까이 됐다고 하니 어느 정도의 고능률 FC들이었는지 짐작이 간다.곽 대표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31명의 창립멤버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성공을 보장해줄 수도 없었고, 일정액의 급여를 보장해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함께 해준 31명의 창립멤버들에게 정말로 가슴깊이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A+에셋은 창립 초기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자본’과 ‘고능률 FC’ 그리고 ‘최적화된 영업지원 인프라’라는 삼박자를 두루 갖춘 준비된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자본금이 열악한 소규모 GA가 대부분이었던 당시로서는 자본금 70억 원의 대형 GA의 설립은 하나의 모험이었다.A+에셋은 보험/증권/경영의 세 명의 CEO체제로 출발했다. 보험을 중심으로 경영 전반을 총괄하는 곽 대표 외에 증권가의 1세대 애널리스트로 꼽히는 김경신 대표, 16년간 제조업체를 일궈온 CEO이자 경영전문 컨설턴트인 정용 대표. 이들 3인의 CEO시스템과 더불어 20여 명의 CFP(국제공인재무설계사)로 구성된 CFP센터의 도입은 체계화된 시스템을 갖춘 GA라는 평가로 이어졌다.그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창립멤버들은 최고의 실적과 생산성으로 곽 대표의 기대에 부응했고, GA로의 이직을 희망했던 FC들이 A+에셋으로 몰려들었다. 2007년 여름 31명으로 시작한 A+에셋은 그 해 말, 186명으로 6배 성장한 데 이어, 2008년 말 921명, 그리고 2009년 7월 말 현재 1500명의 영업조직으로 급성장했다. 또한, 2007년 매출액 360억 원, 당기순이익 10억 원에서 2008년엔 매출액 949억 원, 당기순이익 28억 원으로 증가했으며, 올해는 매출액 2000억 원, 당기순이익 100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이 같은 급성장의 이면에서는 업계의 견제와 악성 루머도 따랐다. ‘곽 대표가 회사를 팔려고 시장에 내놨다’, ‘사채시장의 돈을 끌어들이고 있다’, ‘부실계약이 많아 곧 망할 것이다’라는 등의 소문이 떠돌았다. 곽 대표는 “급성장하는 기업들이 겪는 성장통 중 하나가 주변의 견제,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소문들인 것 같다”며 “이런 견제가 오히려 A+에셋이 더욱 분발하고 정도경영을 하게끔 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초창기 영업조직을 확충하기 위해 A+에셋이 리크루팅 세미나를 개최할 때면 그야말로 007작전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회사 모르게 A+에셋으로의 이직을 희망했던 고능률 FC들과 이탈을 막으려는 전속 보험사 간의 리크루팅 전쟁은 A+에셋과 보험사 간의 감정싸움으로까지 확대됐다. 곽 대표는 “지금은 그간의 오해들이 풀려 현재 대부분의 보험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제는 A+에셋이 보험사들의 가장 중요한 판매채널 중 하나로 성장했다”고 말했다.이렇듯 성공한 CEO로 자리 잡은 곽 대표도 처음에는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시작했다. 대구 출신인 곽 대표는 영남대를 졸업하고 ROTC로 전역한 뒤 삼성생명에 입사했다. 그는 “ROTC 출신이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삼성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군대 제대 후에야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명문대를 졸업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대학시절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삼성에 입사한 뒤 상당수가 명문대 출신인 동기들을 바라보면서 곽 대표는 ‘난 남들에 비해 부족하기에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는 생각을 항상 갖게 됐다고 당시를 술회했다.지방의 한 지점의 말단 총무부터 시작한 곽 대표는 “1년 중 단 하루밖에 안 쉬었을 정도로 미친 듯이 일을 했다”고 했다. 그 후, 첫 부임지에서 영업소장을 맡게 된 곽 대표는 그 해 전사 꼴찌의 지점을 최우수 지점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성공을 발판으로 곽 대표는 이전 지점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의 지점으로 발령을 받았다. “두 번째 지점에서는 더 좋은 실적을 냈습니다. 6~7개 지점이 할 실적을 우리 지점 혼자서 했으니까요.”이때의 실적을 발판으로 곽 대표는 삼성그룹 비서실로 옮기게 됐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5년간을 비서실 내 경영진단 팀에서 일한 곽 대표는 “삼성그룹 내의 어느 회사에서도 쌓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5년 동안 수십 군데의 회사를 방문하며, 그 회사를 CEO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훈련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회사의 CEO가 어떻게 경영을 하고 있고, 그에 맞춰 회사의 조직 분위기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감사 후 어떤 관점과 방식으로 기업현장을 바라보며 분석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회사에 대한 분석보고서를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배울 수 있었습니다.”그렇게 비서실 경영진단 팀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1997년 송파지점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곽 대표는 대한민국의 생명보험 업계에 한 획을 그을만한 새로운 영업방식을 창안했다. “지금은 널리 일반화됐지만, 그 시절 제가 최초로 ‘복합 TM’이라는 제도를 창안해 생보업계 전체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복합 TM제도는 기존의 돌입 방문 일변도의 영업 방식에서 벗어나 전화로 약속을 잡은 뒤, 걸러진 DB를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시스템으로 곽 대표는 이를 통해 고객 접촉률과 성공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곽 대표는 삼성에 25년간 몸담으며 배운 것을 두 가지로 압축한다면 “첫째는 고객 만족이고, 둘째는 위기 의식”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교훈은 ‘최고의 인재를 통해 최고의 서비스로 최고의 고객만족을 실현한다’는 A+에셋의 경영이념 속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즉, ‘고객의 행복이 곧 TFA(Total Financial Advisor)의 행복이며, 그것이 바로 A+에셋의 존재가치’라는 생각이다.곽 대표는 급속히 변화되어가는 금융시장의 변화 속에서 고객만족의 솔루션을 GA로부터 찾았고, 그것이 현재의 A+에셋이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A+에셋이 지향하는 시스템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원스톱 금융백화점’ 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위해 A+에셋은 먼저 삶의 전반을 아우르는 토털 라이프케어 서비스를 담당할 자회사인 A+에셋라이프를 2009년 2월 설립했다. A+에셋 라이프는 상조회사 중 국내 최대 규모인 자본금 70억 원 규모로 출범했으며, 현재 상조부금 사업을 중심으로 교육 유학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점차적으로 헬스케어, 실버케어, 여행 여가 등의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곽 대표는 “고객 만족은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한다. “제 전화는 24시간 항상 켜져 있습니다. 회의 때도, 식사할 때도, 강의 중에도 항상 켜져 있습니다. 고객이 언제 어느 때 어떤 이유로 저를 찾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정한 고객만족이란 고객의 처지에서 모든 걸 바라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이러한 곽 대표의 고객 만족에 대한 철학은 설립 초기부터 A+에셋 내의 고객 관리를 위한 전초기지이자 싱크탱크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국내 최고 수준의 CFP(국제공인재무설계사)센터를 만든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또 “앞으로는 환경이 변화하는 속도만큼 빨리 적응할 수 있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하며, “‘규모의 경제’만큼이나 ‘속도의 경제’가 기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또 하나의 핵심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곽 대표는 회사의 궁극적인 비전에 대해 “회사가 성장해서 계열사들이 하나둘 늘어날 때마다 TFA들에게 더 많은 지분을 나눠줄 계획”이라며 “이 회사를 잘 키워 임직원들과 TFA, 그분들의 자녀들까지도 대를 이어 일할 수 있는 멋진 일터로 키우는 게 저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CEO로서 마지막 바람은 A+에셋이 고객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면서 고객의 마음도, 행복도, 자산도 에이플러스(A+)가 되도록 만들어줄 수 있는 멋진 회사로 키우는 것”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곽근호A+에셋 대표영남대학교 공업화학과삼성생명 입사삼성생명 법인사업부장글 신재수 객원기자·사진 이승재 기자 ifeel21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