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내다본 과감한 투자가 사업의 승부수”

탈리아 의류브랜드인 ‘CP컴퍼니’와 ‘스톤아일랜드’. 국내에서는 배용준, 비 등 톱스타들이 입으면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옷 브랜드다. 국내 백화점 명품 의류매장에서 판매되는 이 브랜드는 고급스러운 재질과 편안한 착용감 등으로 국내에서도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시장에서 팔리는 CP컴퍼니와 스톤아일랜드 옷의 80%가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국 업체에서 생산되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남동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서부 자바의 치렁시(Cileungsi)에 가면 1만5000평의 대지에 3개의 큰 공장건물을 갖춘 의류업체 ‘성보자야’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회사는 이진수 사장이 지난 2000년 외환위기 때 세운 업체로 지금은 연간 700만 장의 옷을 생산하는 중견 의류업체로 성장했다. 1년 매출은 약 4000만 달러로 이 회사에 고용돼 있는 인도네시아 직원들만 3500명이나 된다.현재 성보자야는 ‘스톤아일랜드’와 ‘CP컴퍼니’와 같은 고급브랜드를 비롯, 중상급 브랜드인 ‘에스프릿’, 대중브랜드인 ‘GAP’ 등의 제품을 만들고 있다. 올해 말부터는 ‘아르마니’와 ‘베네통’ 등 유명브랜드 제품도 생산하게 된다.이진수 사장은 인도네시아 의류 업계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꼽힌다. 그는 10년도 채 안 돼 회사를 세계적인 브랜드 제품을 도맡아 생산하는 의류업체로 성장시켰다. 이 회사는 한때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판매에 나설 정도로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세계 유명 브랜드들로부터 주문이 몰리고 있다.이 사장은 젊은 시절부터 사업을 꿈꿨다. 그는 한양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코오롱상사에 들어갔지만 해외에서 ‘내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에 1984년 말레이시아의 다국적 기업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서는 의외로 사업 아이템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화교가 대부분의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어 진입장벽도 높았다. 그러다가 1986년 인도네시아로 파견근무를 나가면서 의류사업에 눈을 뜨게 됐다.그는 2년 후 회사에서 말레이시아로 복귀하라고 하자 미련 없이 사표를 내고 인도네시아에 정착했다. 사업을 하기에는 말레이시아보다 인도네시아가 더 낫다고 판단해서다. 이 사장은 “옷을 만드는 일은 노임이 싸기도 해야 하지만 손 기술도 필요하다”며 “그런 면에서 인도네시아는 섬유 봉제업이 발달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라고 말했다.그가 인도네시아에서 먼저 시작한 사업은 에이전트 역할이었다. 현지에 지사가 없는 바이어들을 대행해서 현지 업체와 업무를 진행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 영국계 회사의 에이전트로 선경 코오롱 등 의류업체와 일을 하면서 국내 기업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이런 방식으로 업계 동향을 파악한 이 사장은 1990년 처음 자카르타에 공장을 설립하고 의류사업에 뛰어들었다. 초기에는 코오롱의 하청업체였지만 이후 국내 대기업들이 현지에서 공장을 철수하면서 자연스럽게 규모를 확장할 수 있었다.그러나 사업에는 항상 고비가 있는 법. 90년대 중반에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자카르타에서는 공단지역의 노조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인건비도 급속히 올랐다. 일부 회사는 노조의 파업으로 공장 문을 닫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이 사장의 회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국 노조와의 대치로 인해 제품을 납품하지 못하는 문제까지 발생했고 노동부 담당관까지 불러 중재를 해야 했다.홍역을 치른 이 사장은 10년간 키워온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심했다. 다른 회사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지려면 자카르타보다는 환경이 나은 곳에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또 현재의 공장을 유지하면서 다른 곳에 새 공장을 지으면 제대로 관리를 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그는 회사를 팔고 치렁시로 옮겨와 2000년에 성보자야를 설립했다. 치렁시는 주민들의 성격이 매우 온순한데다 토박이들이 주로 살고 있는 지역이다. 자카르타에 비해 임금 수준도 낮아 삼익악기 등 국내 기업들도 일찍부터 이곳에 진출해 있다. 실제 이 사장은 이곳으로 옮겨온 후 근로자들과 단 한 번의 마찰도 없이 순탄하게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그러나 성보자야가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과감한 투자 덕분이었다. 당시 다국적기업들은 물론 개인사업자들까지도 의류공장은 모두 임대해서 썼다. 의류사업은 기껏해야 5∼6년을 할 사업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어 당시 직접 공장을 짓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이 사장은 그러나 토지를 사들여 직접 공장을 지었다. 당시 외환위기로 인해 외국 업체들이 철수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 사장은 “당시 대형 의류회사들이 대부분 인도네시아에서 철수를 했기 때문에 남아있는 영세한 공장들과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시설과 관리력으로 승부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장을 당시로서는 최첨단으로 지었다. 기계도 최신 설비를 가져오고 자재도 좋다는 것을 골라 썼다. 덕분에 성보자야 공장의 근무 환경은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인도네시아 의류업체 중에서 손꼽을 정도로 좋다.이 사장의 과감한 베팅은 고객들의 주문으로 이어졌다. 공장을 방문한 바이어들은 “이렇게 좋은 공장은 처음 본다”며 오더를 줬다. 성보자야 설립 후 인도네시아에서는 의류공장을 직접 짓는 회사들이 크게 늘어났다.성보자야의 강점은 고객이 어떤 의류 제품을 원하더라도 즉시 공급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성보자야는 올해부터 가동을 시작한 관계사 ‘유리어패럴’을 포함 모두 3개의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2001년에 처음 설립된 1공장은 주로 우븐(Woven)제품을, 2공장은 니트(Knit)제품을 생산한다. 유리어패럴 3공장은 여성용 브라우스 스커트 등을 만들기 위해 설립했다.인도네시아에서는 성보자야처럼 모든 종류의 옷을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곳이 많지 않다. 실제 현재 인도네시아에는 주로 니트(Knit)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가장 많다. 우븐(Woven)에 비해 니트 시장의 수요가 많은데다 인건비도 훨씬 적게 들어 채산성이 좋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그러나 “의류업계는 5년 정도를 주기로 유행이 돌고 도는 경향이 있다”며 “유행을 따라 생산시스템을 바꾸면 시장상황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우븐업체가 니트업체로 변신하기는 쉽지만 니트업체에서 우븐업체로 다시 돌아오는 데는 기술적 장벽이 있다는 점도 이 사장이 이 같은 경영방침을 고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이 사장의 고집은 올해 경기불황으로 니트 주문이 급감하면서 빛을 발했다. 올해 1∼3월에 인도네시아의 의류업체들은 대부분 공장을 쉬게 하고 직원들을 휴가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보자야는 예상 밖으로 우븐 주문이 넘쳐나 공장을 풀가동해야 했다.성보자야의 또 다른 강점은 기술력과 신뢰성이다. 이는 스톤아일랜드를 만드는 SPW와의 관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SPW는 본래 루마니아와 이탈리아에서 의류제품을 생산했다. 그러나 2000년에 성보자야와 손을 잡은 이후 해마다 주문량을 늘려 지금은 전체 생산량의 80%를 이 회사에 맡기고 있다. SPW는 최근 중국 회사와도 거래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성보자야에서 만든 제품이 중국시장으로 수출되고 있다.현재 세계시장에서 섬유산업의 강자는 일본과 이탈리아 등 선진국이다. 고가의 옷은 대부분 일본의 원단을 쓴다. 일본 회사들이 만든 원단 가격이 훨씬 비싸지만 줄을 서서 살 정도로 인기가 높다는 게 이사장의 설명이다. CP컴퍼니나 스톤아일랜드 역시 대부분 일본에서 원단을 수입해서 만든다. 이 사장은 “일본 업체들은 해마다 독특한 촉감의 옷감을 만들어낸다”며 “한국도 한때는 원단분야에서 일본과 경쟁했었지만 지금은 일본의 개발력에 한참 못 미친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은 일본이 개발한 제품으로 옷이 만들어지면 그 다음해에 그 원단을 기반으로 유사한 제품을 만드는 데 그치고 있다.또 디자인 염색 등 옷을 만드는 기술은 이태리 프랑스 등이 주도하고 있다. 이 사장은 “CP컴퍼니와 스톤아일랜드를 만드는 SPW만 하더라도 디자인 재단 염색 등 의류 관련 전문가들이 분업화돼 있어 수많은 새로운 옷을 만들어 낸다”며 “한국은 섬유업을 사양 산업으로 치부해 결국은 고사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그래서 이 사장은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꿈을 꾸고 있다. 실제 10년 전에 성보자야는 인도네시아 국내에서 자체브랜드 제품을 개발하기도 했었다. 이 사장은 자체 브랜드를 만드는 전 단계로 우선 자체 기술력을 개발, 유명브랜드 고객사의 제품을 만들어주는 일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작년 8월부터 가동을 시작한 유리인도어패럴 제3공장에 자수, 프린트, 세탁, 염색 시설을 한 울타리 내에 만든 것도 자체적인 제품 개발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 사장은 “지금까지 번 돈으로 다른 사업을 하기보다는 이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한 투자를 계속하겠다”며 “고객사와 기술교류를 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 축적이 이뤄지면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패션사업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이진수인도네시아 성보자야 사장한양대학교 섬유공학과유리인도어패럴 대표인도네시아 한인회 부회장글 김태완·사진 이승재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