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Balance

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은 요즘 3종류의 명함을 갖고 다닌다. 그를 처음 만나는 사람은 회사 명함 외에도 서강대 MBA겸임교수 그리고 ‘서양화가’ 명함을 받을 수 있다.그는 개인전을 7번이나 연 중견 화백이면서 한국미술협회 회원, 세계미술문화진흥협회 이사장, 신미술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는 미술계의 유명인사이기도 하다.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GE코리아 CEO를 맡아 외국기업 한국인 CEO 1세대의 대표격으로 재계에서 주목을 받았던 강 회장은 2003년 GE코리아를 그만둔 후 전업 화가로 변신했다. 지난 18일부터 프레스센터 1층 서울갤러리에서 7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강 회장을 필운동 작업실에서 만나봤다.“셀 수가 없죠. 제가 그림을 시작한 지 30년이 됩니다. 아마추어로 10년, 프로화가로 20년을 그렸으니 수백 점은 너끈히 되지요.”“사실 어렸을 때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제대로 배울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언젠가는 나도 그림을 제대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1970년에 뉴욕에서 모 금융회사 부사장으로 근무할 때였어요. 하루는 센트럴파크를 지나가는데 30대 젊은 화가가 뉴욕 시내 전경을 그리는데 너무 잘 그리더라고요. 매일 정해진 시간에 그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구경하다가 서로 친해졌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처음부터 유화를 그리고 싶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바로 짐을 싸서 나를 큰 아트 숍에 데려가 각종 물감, 붓, 캔버스, 파레트 등 그림에 필요한 모든 도구를 정성스럽게 골라주더라고요. 그리고는 그림을 그리려면 이걸 다 사야한다고 해요. 하도 정성스럽게 물건을 골라준 터라 거절도 못하고 다 샀죠. 그리고 바로 그림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산 재료로 한 4∼5년은 썼어요(웃음).”“아니요. 미국 화가들은 남을 가르치는 데는 관심이 없더라고요. 대신 그 친구가 미술 초보자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을 골라줬어요. 유화를 그리기 위해서 스케치하고 밑칠하고 덧칠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죠. 그 책을 읽으면서 1년을 그림을 그렸는데 실패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한때는 거의 포기상태로까지 갔었죠. 그 후 74년에 GE코리아에 몸담게 되면서 한국에 왔는데 짐을 풀다가 그림 도구를 다시 보니 그림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더군요. 그 때부터 주말에 혼자 스케치하러 여기저기 돌아다녔죠. 현장에서 그림 그리러 온 화가와 친분을 쌓게 됐고 그 인연으로 여러 프로 화가들에게 지도를 받았습니다.”“아니지요. 처음에는 그냥 그림이 좋아서 그린 거고요. 그러다 보니 점점 미술에 빠지게 됐고 나중에는 기법에도 자신이 생기게 됐습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러 다니면서 초대 미협 이사장을 지낸 박덕순 선생님, 역시 미협 이사장을 역임하신 김서봉 선생님 같은 원로 분들에게 지도를 받았어요. 대한민국 최고이신 분들에게 배우다보니 실력이 굉장히 빨리 늘었지요. 그렇게 5∼6년이 지나다보니 그 분들이 그 정도면 작품을 내놔도 된다고 하셔서 80년대 초중반부터 전시회에 참여를 하게 됐습니다. 제가 프로작가로 활동을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라고 봐야죠.”“업무시간에는 당연히 바빴죠. 그러나 저녁에 퇴근하면 바로 화실로 와서 12시 정도까지 그림을 그렸어요. 주말에는 당연히 다른 화가들과 함께 작업복 입고 그림을 그리러 돌아다녔죠.”“접대가 있어도 가급적 1차로 끝내고 9시 정도면 화실로 왔어요. 주말에 골프도 치지만 꼭 참석해야 하는 골프 모임은 1년에 5∼6차례 정도였지요.”“그림을 그리면 제 자신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붓을 들고 있으면 모든 것을 다 잊게 돼요. 커피를 타놓고 그림을 그리다 못 마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중요한 컨퍼런스 콜을 그림 그리다 놓친 적도 있지요. 그러나 그림을 그리고 나면 완전히 재충전이 되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업이라서 그런지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개인전 준비 때문에 새벽 2시까지 작업을 하는 날이 많지만 피곤한 줄 모르죠.”“저는 자연을 그리는 게 좋아요. ( ‘5월의 전원’이라는 작품을 가리키며)이 그림을 보세요. 여기는 포천 근처였는데 이걸 그리는 데 4년 걸렸어요. 어느 날 새벽에 차를 몰고 가다 물안개가 서린 풍경을 보고 너무 감동해서 화구를 가지러 서울에 갔다가 다시 왔더니 물안개가 다 사라져서 처음 그 풍경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1주일 후에 비가 온 후 다시 갔어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논에 이미 모가 심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1년을 기다렸다가 비슷한 시기에 다시 갔더니 1년 전 그 풍경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이 작품이 나왔죠.”“서양화 구상미술계에서는 ‘강석진 화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정 자연을 그리는 그림은 많았지만 넓게 펼쳐진 자연 광경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에서 그림을 그린 화가는 그동안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 구도를 강석진 구도라고 합니다. 또 저는 녹색을 가장 많이 씁니다. 사실 녹색은 쓰기가 가장 어려운 색입니다. 조그만 더 쓰면 봄이 되고 덜 쓰면 여름이 되거든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면서 싹이 나올 때의 녹색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린 그림에는 산 들판 강이 한꺼번에 어우러진 장면이 많습니다.”“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도 모임에서 함께 스케치를 하러 갑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좋아하는 풍경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풍경이 있는 곳은 자기가 찾아야지요. 저는 GE코리아에서 CEO를 할 때도 그림통을 둘러메고 웬만한 나라는 다 가봤어요. 매년 여름에 한달간 휴가를 내고 갔지요. 단 떠날 때는 반드시 내가 없더라도 회사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어요. 나 대신 CEO역할을 맡을 사람을 선임해 문서로 위임을 해주었죠. 사실 경영에서 CEO가 자기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면 문제가 있는 것이죠. 자기가 없어도 회사는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팀을 짜고 시스템을 만들어놔야 합니다. 잭 웰치는 저의 이러한 방식에 대해 차세대 리더를 키우는 좋은 방식이라며 ‘부재경영(absence management)’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죠.”“저는 경영과 미술은 공통점이 많다고 봅니다. 먼저 미술은 창조적으로 사물을 봐야 합니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른 마음과 다른 시각으로 보지요. 경영도 마찬가집니다. 모든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봐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미술은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경영도 열정이 없으면 못하지요. 또 하나는 프로정신입니다. 아마추어 정신으로 회사를 경영하면 기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림도 프로정신을 가져야 작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사실 예전 친구들은 하나씩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화가들은 열정과 시간을 쏟아서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그림을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죠. 그래서 남에게 그림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팔 때도 맘이 아픕니다. 아마 생활문제가 아니라면 절대로 안 팔 걸요. 단 개인전을 열 때는 작품을 파는 게 불문율이죠. 제가 그동안 6차례나 개인전을 열었기 때문에 꽤 많은 작품들이 저도 모르는 곳에 전시돼 있더군요. 증권거래소 LG인화원 중국삼성본사 등에서 제 그림을 봤습니다.”“음악을 좋아합니다. 저는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저기 저 그림을 보세요. 티벳의 사원을 그린 건데 한국음악을 들으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겠어요? 그 나라의 정서와 호흡이 맞아야 합니다. 그래서 정서적인 교감을 위해서 페루 터키 러시아 등 각국의 음악을 들었지요 (강 회장의 작업실 한켠에는 각종 악기가 쌓여 있었다. 그는 즉석에서 안데스 지역의 팬파이프 악기인 잠포나로 아랑페즈 협주곡을, 하모니카로 베르디의 오페라 서곡 등을 연주해 보였다). 또 그림을 그리다보니 본의 아니게 재작년에는 시인문학상도 탔어요. 그동안 제가 쓴 시 여러 편이 문학지에 소개됐는데 심사위원들께서 순수하게 자연의 느낌이 그대로 느껴지는 시라고 평가를 해주시더군요.“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제가 늘 그리는 자연의 모습을 지금보다 더 성숙된 방법으로, 짙은 생명의 역동감이 느껴지도록 그리고 싶어요. 사실 자연은 서로 대화를 합니다. 사람이 그 대화를 못 알아들을 뿐이죠. 제 그림을 통해 자연의 대화를 듣고 순수한 아름다움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미술 수준은 높지만 세계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어요. 대부분 미술가들이 국내에서 활동하는데다 국내 화랑도 영세해서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없지요. 그런데 중국을 보세요. 중국은 오래전부터 정부 예산을 미술의 세계화에 쏟고 있어요. 그래서 뉴욕의 소호나 첼시 등에 가면 중국화가 작품들이 많습니다. 또 북경은 세계적인 미술시장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지요. 반면 우리는 문화부 예산이 정부 부처 중에서 가장 적고 그 중에서도 미술 관련 예산이 가장 적어요. 정부는 우리나라를 세계적인 미술 국가로 이미지 업을 하는 일을 안 하고 있지요. 우리보다 인건비가 비싼 프랑스 이탈리아가 전통적인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강국으로 남아있는 이유를 생각해봅시다. 그들이 만든 넥타이 옷 구두는 선진국 시장에서 비싸게 팔리고 있지만 같은 노동력이 들어가고 품질에도 별 차이가 없는 한국제품들은 저가에 팔리고 있어요. 이건 디자인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한국이 문화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문화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가 굳이 중국과 원가경쟁력을 따질 필요도 없을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데 정부의 지원이 없는 게 안타깝죠.”강석진CEO컨설팅그룹 회장연세대 공업경영학 석사미국 다트머스일렉트로닉스 부사장GE코리아 대표한국최고경영자포럼 공동대표글 김태완·사진 이승재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