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희 한국페스티벌앙상블 음악감독
클래식 대중화의 선도자.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의 박은희 음악감독은 매일을 음표로 시작하고 음표로 마감한다. 여의도 하나대투증권 한마음 홀에서 만나 시종 웃음과 함께 나눈 즐거운 이야기를 전한다.은희 한국페스티벌앙상블 박은희 음악감독은 1986년 실내악 연주단체인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을 창단한 후 지금까지 연주자, 해설자, 기획자의 1인 3역을 소화하고 있다. ‘지루하다, 어렵다’는 인식이 강한 클래식 음악에 위트를 가미하면서 ‘클래식의 대중화’에 기여한 인물이다.박 감독은 기자와 만난 날도 음악회 리허설 준비에 한창이었다. “내일 저녁 드라마음악회가 있어요. 연극에 클래식 연주회를 합친 퓨전극이라고나 할까요.” 박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의 공연은 매번 실험적이고 획기적인 레퍼토리를 내놓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예를 들면 ‘못 말리는 음악회’라는 타이틀을 걸고 연극과 음악, 설명 등으로 관객들에게 클래식의 묘미를 전해 주는 방식. 박 감독은 “관객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다가오길 원했어요. ‘못 말리는 음악회’의 한 공연에서는 모차르트가 죽은 후 하늘에서 땅에 있는 자신을 보고, 다시 환생하는 이야기도 있었죠.”연극과 무용, 음악은 모두 배운 과정과 장르가 다를 텐데, 드라마음악회를 수도 없이 개최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을까. 박 감독은 “연극과 무용, 음악은 모두 예술이라는 하나의 분야에 속하잖아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 뭔가 통하는, 같은 맥락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배운 점이 너무 많아요. 함께 하는 동료들 모두가 ‘경험’의 중요함을 되새깁니다.”그렇다면 실내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박 감독은 “바로 화음입니다. 적게는 2중주에서 많게는 10중주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연주하는 실내악에서 불협화음은 있을 수 없죠. 특히 한국페스티벌앙상블 단원들처럼 20년 넘게 함께 음악을 연주하면서 오는 익숙함. 서로의 눈빛만 봐도 마음을 읽어내는 앙상블이 필요합니다.”박 감독에게 드라마음악회 외에는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6월 초에는 한국페스티벌앙상블 제 47회 정기연주회를 예술의전당에서 열어요. 이번 타이틀은 ‘멘델스존과 문학’으로 멘델스존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음악과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숨은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관객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입니다.” 박 감독은 음악회 준비 말고도 하나금융그룹과 함께 진행하는 하나 클래식 아카데미와 몽블랑의 후원자상 등 각종 선발대회의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대기업에서 문화재단을 설립해 우리와 같은 예술인들을 후원하고, 돕는 취지가 너무 좋네요. 심사를 하면서 앞으로도 예술계를 위해 시간과 노력, 후원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수없이 많은 연주회 중에서 박 감독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공연은 무엇이었을까. “몇 년 전 지하철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었어요. 공연 도중에 술에 취한 50대 남성 한 분이 오시더니 ‘버럭’ 화를 내며 왜 여기서 이런 걸 하냐며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그 순간 ‘아, 내가 여기에서 물러나면 앞으로 어떤 공연도 하지 못하겠구나. 이 난관을 이겨 나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어떤 음악을 듣고 싶은지 물었더니, 대뜸 가요를 요청하는데, 다행히 함께 연주하던 동료가 그 노래를 알고 있었고, 즉흥적으로 그 곡을 연주했지요. 그 분은 요청했던 가요가 끝나고 클래식 곡이 연주돼도 자리를 지키고 있더니, 모든 연주가 끝난 후 박수를 치면서 잘 들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순간 가슴이 얼마나 벅차던지.” 박 감독은 “음악은 모두 음표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서양 음악이든, 가요든, 국악이든 모두 다 편견 없이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야 해요”라고 강조했다.이야기를 나누면서 밝고, 환하게 웃는 박 감독의 미소가 그의 나이를 잊게 했다. 음악을 사랑하기에 매일을 음악과 함께 살지만, 50년 음악 외길에 힘든 점은 없었는지 물어봤다. “솔직히 말하면 1년에 꼬박 100번이 넘는 연주회를 진행하면서 매번 새로운 모습을 선뵌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을 창단하고 처음 10년 동안 사비와 지인들의 투자로 단체를 운영해야 했어요. 사단법인이 된 후에야 한결 운영하기 수월해졌죠. 하지만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이 점점 발전된 모습을 보이는 데에 보람을 느낍니다.”매번 인터뷰를 할 때마다 듣는 식상한 질문일 테지만, 한편으론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박은희에게 있어 음악이란?’ “맞아요.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지만, 답변이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죠. 저는 ‘음악이란 나를 깨우는 명약’이라 생각해요. 음악이란 내가 잠들기 전까지 항상 나를 깨워주는 존재입니다. 여기에서 잠든다는 의미는 죽음을 뜻해요.” 박 감독의 답변을 듣자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즐거웠던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 감독의 답은 의외였다.“공연을 보는데 여가시간을 많이 소비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자연과 함께 할 때에요. 풀잎이 스치는 소리, 향기로운 풀 냄새, 비 오는 소리가 사랑스러워요. 도심 속에 살고 있기에 자연과 접할 기회가 적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죠. 대신 집 앞에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어요.” 항상 음악과 소리와 함께 생활하기 때문일까. 박 감독은 “가끔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좋을 때도 있어요. 조용히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덧 그림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 소리가 나를 향해 들리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그런 박 감독에게 ‘다시 태어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물어봤다. “아이들이 맑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영아원과 병원에서 무료 연주회를 자주 갖으면서, 그곳에서 만난 어린 자폐아들을 보면 ‘어쩌면 이렇게 영혼이 맑을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요.” 답변을 하다가 박 감독이 도리어 질문을 했다. “다이돌핀이라는 말을 들어봤나요? 감동을 받았을 때 몸에서 나오는 호르몬으로 암까지 치료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적어도 음악만은 아이들 같이 맑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좋은 음악을 듣고 근심과 사심이 사라져 모두가 맑은 마음을 가졌으면 해요.”한국페스티벌앙상블 음악감독1952년 11월 30일 서울 출생1971년 이화여자고등학교 졸업1975년 미국 뉴욕 맨해튼 음악대학 졸업1981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대학원 졸업1981년~85년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역임1986년 한국페스티벌앙상블 창단1992년~97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역임1992년~0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발전기금 이사 역임2007년~08년 삼성문화재단 이사 역임글 김가희·사진 이승재 기자 holic@moneyro.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