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 저자 조윤선 의원

화가의 꿈을 접었던 그에게 서울대 외교학과 1학년 시절 우연히 들은 김병종 교수의 ‘미술의 이해’는 잠자던 열정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도 처음엔 오페라란 장르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공연 가기 전에 대사를 미리 공부하지 않으면 도통 무슨 얘기인지 모를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피가로의 결혼’을 보는데 등장인물과 음색 무대 연출 조명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조윤선 한나라당 의원은 오페라 마니아다. ‘맨날 싸움만 할 것 같은 국회에서 오페라를 좋아하는 의원이라니...’라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초선 2년차인 조 의원을 만나보면 이런 생각은 편견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예술에 대한 사랑은 국회 입성 이후에도 남다르다. 의원들과 사적으로 만날 때면 정치 얘기보다 회화나 오페라 등의 예술 이야기를 더 즐긴다. 매일 성명서를 내야하는 당 대변인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음에도 날선 이미지보다 온화함이 묻어나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이런 조 의원을 두고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우리 국회가 보다 여유로워지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공간이 되려면 조 의원처럼 문화를 아는 사람이 많이 들어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김&장 변호사에 이어 한국씨티은행 임원을 지낸 조 의원. 순수한 호기심에서 시작해 오페라를 그림으로 풀어낸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라는 저서까지 내놓을 정도로 예술에 천착하는 그의 열정은 이미 유년 시절에 잉태됐다.“과외금지로 갈 곳이 없었던 초등학교 시절, 집에 걸려 있는 한 제약사 달력의 서양 명화를 보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미술 유학준비 중이던 옆집 언니에게 미술과외를 받으면서 한때 ‘미대를 가볼까’ 생각도 했었죠. 하지만 ‘못하면 죽을 것 같은 열정이 필요하다’는 조언에 포기했죠.”화가의 꿈을 접었던 그에게 서울대 외교학과 1학년 시절 우연히 들은 김병종 교수의 ‘미술의 이해’는 잠자던 열정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이듬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단기 교환학생으로 가게 된 그는 수업보다 미술관 탐방에 푹 빠져 지냈다. 하지만 이도 잠시, 두 번의 낙방 뒤 마지막 도전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 그에게 미술은 사치였다. 매일 야근이 반복되는 바쁜 일상 속에 지내던 조 의원은 2000년 큰 딸과 함께 1년 반 동안 미국 연수를 떠났다. 그가 오페라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시간이다.“한국에서 못 해본 일을 찾던 중 오페라가 눈에 들어왔어요. 처음에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과 가려고 티켓을 2장씩 샀는데 역시 미국 친구들에게도 오페라는 다가가기 쉽지 않은 장르인가 봐요. 결국 딸 손을 잡고 다녔는데 저도 처음에는 굉장히 애를 먹었죠. 그런데 어느 날 공연이 시야에 입체적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그 때부터 푹 빠졌죠.”평소 미술 감상을 즐기던 조 의원에겐 특히 거장의 화폭을 오페라 무대로 편입시킨 작품들의 울림이 컸다. 서울로 돌아와 지인들과 ‘라 돌체비타’라는 오페라 동호회도 만들었는데 어느 날 월간 ‘객석’에서 오페라 관련 칼럼 요청이 들어왔다. “어떻게 쓸까 하다가 그림과 오페라를 결합한 퓨전식 글을 썼는데 반응이 좋아 연재를 하게 된 거죠.”2년간 연재한 글과 그림을 손질해 지난해 내놓은 책이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이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비롯, 13편의 오페라를 인물이나 배경이 등장하는 회화와 소개하는 독특한 방식의 오페라 입문서다.“오페라에 등장하는 배경과 인물이 나오는 단 한 장의 사진을 찾기 위해 화보집들을 많이 사들였어요. 이렇게 사 모은 화보집만 200권이 넘어요. 오페라의 특정 장면을 설명할 수 있는 회화를 찾고, 이를 다시 사진을 찍어 컴퓨터에 입력해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쳤어요. 그나마 기업체 임원으로 있을 때니까 가능했지 지금 같으면 턱도 없는 일이죠.”공을 들인 만큼 보람도 컸다고 한다. 화가이자 서울대 교수인 김병종은 “예술을 전공한 바 없는 그녀에게서 프랑수아즈 사강이나 전혜린 류의 서늘한 천재성과 예술적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고 극찬했다. 조 의원은 “어렸을 적 동경했던 전혜린 같은 천재와 비교해준 것만으로도 굉장한 영광이죠”라며 웃었다.의원 배지를 단 후로는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조 의원은 새롭게 국내의 미술관을 블로그를 통해 소개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다. 국내 박물관 역사 100주년을 맞는 해여서 한국박물관협회와 손잡고 일반인들이 미술관에 친숙하게 다가서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미술관이나 그림 속에 담겨 있는 사연을 소장자로부터 직접 설명 듣고 감상 한 뒤 저의 느낌을 가감 없이 소개하는 방식으로 준비 중입니다. 선진국의 경우 개인 소장품을 사회와 공유하면서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어 가는데 우리도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조 의원은 끝없이 도전하는 인생의 멘토로 아버지를 꼽았다. “대학시절 동기생 두 명과 지리산 종주를 하겠다고 나설 때나 미국으로 단기연수를 떠나겠다고 할 때도 ‘사람은 여행을 많이 해야 한다’며 흔쾌히 허락해 주셨어요. 아버님은 제가 영어를 하는 걸 보신 후 ‘영어를 잘 하면 여행에 도움이 되겠다’며 예순이 넘으신 나이에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날 정도로 열정적이세요.”조 의원은 현재 1년 넘게 한나라당 대변인을 맡고 있다. 오랜 야당에서 여당으로 역할이 바뀐 첫 해인데다 각종 쟁점 법안으로 시끄러운 국회 한복판에서 여당의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 느낀 소회도 적지 않다.“대변인에게는 자신의 시간이 없어요. 주요 회의에 모두 참석해야 하고 만나야 하는 사람도 많죠. 초선이지만 이슈마다 선배들이나 행정부 수반들에게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 것은 장점이죠. 짧은 기간에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일종의 정치 속성반인 셈이예요.”그는 정계에 입문하면서 새삼 소통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한다. “1년여 동안 국회에서 느낀 점은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다들 무척 인간적이라는 점이예요. 일반 직장이나 국회나 마찬가지로 당 내외에 소통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정치를 잘 하는 문제도 결국 소통에 달렸다고 봅니다.”조 의원은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국회 문화관광방통위원회에서 활약하고 싶다고 계획을 밝혔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문화적 소양이 경제적 경쟁력 못지않게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콘텐츠보다 공연장 등의 인프라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며 “앞으로 문방위에서 일할 기회가 된다면 문화 역량을 키우는 토양을 마련하고 이를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한나라당 대변인서울대 외교학과컬럼비아대 로스쿨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한국씨티은행 부행장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