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 대표

미국 서부 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일간지 LA타임스는 2000년, 갑자기 트리뷴(Tribune Company)에 매각된다.
1881년 설립 이후 100년이 넘게 승승장구하던 이 기업이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Family Business Consulting] 100년 기업 LA타임스가 무너진 까닭
LA타임스 창업자의 4대 손인 오티스 챈들러(Otis Chandler)가 대표 자리에 올랐을 때 LA타임스 주식을 보유한 챈들러가(家)의 가족들은 무려 수십 명에 달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주주임을 내세우며 각자의 잇속을 챙기기에 바빴다. 오티스는 몇몇 자녀들과 연합을 맺고 “회사 밖에서 왈가왈부 말만 많은 조카들이 문제”라고 외치며 그들의 주식을 뺏어오려고 했고 조카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자신들도 주주임을 주장하며 사사건건 경영 방침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 와중에 오티스의 첫째 아들을 포함한 몇몇 가족들은 그들이 가진 주식을 몰래 외부에 팔아넘겼으며 가족이 보유한 지분이 줄어들자 외부 사람들도 경영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이사회나 주주총회를 열 때마다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바빴으며 매 회의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됐다. 결국 이들은 극심한 경영난에 빠졌고 그렇게 300년의 역사가 남의 손에 고스란히 넘어가게 됐다.

허무하게 무너진 LA타임스의 이야기,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도 가족 간 소유권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이 매년 20~30%씩 증가하는 추세다. 대개 이런 문제는 2세대를 거쳐 3, 4세대 승계에 이르러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사촌에 팔촌까지 회사의 주식을 갖고 있는 가족 수가 엄청나게 많아지면서 관리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의 장수 가족기업들은 주식 때문에 발생할 문제들을 예방하기 위한 몇 가지 장치를 공통적으로 마련해 두고 있다.


주주합의서 작성의 필요성
첫째, 소유권 유지를 위한 주주합의서를 작성한다는 점이다. 창업자의 가족이 대를 이어 기업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나 가문 내에서 지배적인 소유권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2세, 3세로 넘어가면서 소유권이 여러 가족에게 분산될 수밖에 없다. 만약 가족 각자가 자신이 갖고 있는 주식을 마음대로 외부에 팔아넘기면 어떻게 될까. 아마 오너로서 영향력이 빠져나가는 걸 통제할 수 없게 되고 경영을 하는 데 큰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 때문에 장수 가족기업들 중 대부분은 이를 막는 주주합의서를 만들어 두고 있다.

설립된 지 200년이 넘은 가족기업인 스웨덴의 미디어 기업 보니에르 그룹(Bonnier Group)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은 주식을 가진 가족들이 모두 참여해 주주합의서를 작성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살펴보면 ‘주식을 팔 때에는 반드시 가족구성원에게 먼저 팔아야 한다’, ‘이혼을 해 더 이상 가족구성원이 아니게 되면 갖고 있던 주식은 반드시 회사에 팔아야 한다’라는 규정이 있다. 바로 가족들이 주식을 외부에 맘대로 파는 걸 막기 위한 것이다. 또한 ‘가족들이 갖고 있는 주식은 공정가의 30% 수준으로 거래된다’는 규정도 있다. 이는 가족들이 주식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지 못하게끔 하는 장치다. 그래서 이 주주합의서를 어기는 가족들은 법적인 처벌까지도 받게 돼 있다.

둘째, 지분이 많아도 기업을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한다. 한 기업의 주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 기업의 주주로서’ 기업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주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입김이 세지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신이 더 많은 주식을 갖고 회사를 좌지우지하기 위해 다른 가족들과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만약 능력이나 자질이 부족한데 지분이 많다는 이유로 회사를 자기 마음대로 경영한다면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장수 기업들은 이러한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가족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독일의 종합화학·제약기업 머크(Merck)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설립된 지 120년이 넘은 이 기업에는 주식을 갖고 있는 가족들만 130명 가까이 된다. 이들이 제각각 기업 경영에 이래라 저래라 목소리를 낸다면 그야말로 난장판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파트너위원회라는 별도의 조직을 만들었다. 이는 가족 주주들이 뽑은 대표 5명과 기업의 주요 사업 분야에 정통한 외부 전문가 4명으로 이뤄져 있는데, 바로 여기서 기업의 구체적인 경영 지침들을 결정한다. 즉, 단지 주식이 많다는 이유로 회장 자리에 오르고 기업을 맘대로 할 수 없도록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만약 가족 주주 대표들이 모든 걸 결정하려 한다면 이런 조직이 무의미해질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이를 예방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로 선정된 사람들에게도 일정한 주식을 주고 있다. 즉, 기업의 주주로서 가족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소신껏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끔 하는 것이다. 이러한 머크의 시스템은 많은 가족기업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이상적이라고 꼽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올바른 가치관과 스튜어드십의 이전이다. 아무리 장치를 잘 만들어 놨어도 가족 주주들이 ‘그딴 거 무시하면 뭐 어때’라고 생각하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주주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자신이 가진 권리를 행사하도록 공통된 가치관을 정해 두고 가족들을 교육해야 하는 것이다.


가족 주주는 오너가 아닌 신탁 관리인
앞서 소개한 머크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이 기업은 20여 년 전, 주식을 가진 가족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갈등과 분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러한 가치관을 내걸었다. 바로 ‘가족 주주들은 스스로를 오너(owner)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다음 세대 자녀들을 위해 주식을 신탁(信託)하고 관리하는 사람들(trustees)일 뿐이다’라고. 이를 전체 가족회의에서 공유하고 다음 세대 기업을 이끌 자녀들을 현장 견학, 세대 간의 대화, 주주로서의 책임과 의무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철저하게 교육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기업의 가족 주주들은 ‘내가 갖고 있는 주식을 어떻게 써먹을까’가 아니라 ‘어떡하면 기업의 주식을 잘 지켜 다음 세대에게 더 큰 가치를 물려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이를 위한 다양한 시스템을 고안해 낼 수 있었다.

주식은 곧 기업 경영에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와 같다. 하지만 가족기업에서 주식을 갖고 있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갈등과 분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앞서 설명한 장수 가족기업들의 세 가지 장치를 벤치마킹한다면 가족 간 주식 다툼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