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curtain): 회화예술의 은유

햇살이 뜨거운 여름, 창가에 드리운 커튼은 외부의 광선으로부터 실내를 보호한다. 집 안의 사생활이 창밖의 시선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커튼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에서 두 공간을 완벽히 차단하지는 않는다. 이쪽과 저쪽의 문턱에서 두 세계를 불완전하게 가르는 유동적이고 임시적인 장벽, 그것이 바로 커튼이다. 그래서 커튼은 실용적 목적 외에도 은유적 표현으로 예술작품 속에 자주 등장한다.
야콥 폰 산드라르트,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 1683년
야콥 폰 산드라르트,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 1683년
그림과 커튼의 관계는 고대 그리스 학자 플리니우스가 기록한 유명한 일화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의 화가 제욱시스는 포도를 그렸는데 어찌나 잘 그렸는지 새들이 날아와 쪼아 먹으려 했다. 이를 본 화가 파라시오스는 자기도 그림을 보여 주겠다며 제욱시스를 화실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커튼이 쳐진 그림이 있었는데 제욱시스는 어서 커튼을 걷고 밑에 있는 그림을 보자고 했다. 그런데 이내 그것이 실제 커튼이 아니라 커튼을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제욱시스는 자신은 새를 속였지만 파라시오스는 자기를 속였으니 그가 이겼다고 하며 스스로 패배를 인정했다고 한다.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일화는 회화의 본질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관점들을 제시한다. 우선 회화란 현실을 유사하게 모방한 것이라는 인식이다. ‘모방’은 그리스어로 ‘미메시스(mimesis)’라고 하며 예술적 창조를 가리키는 핵심 개념으로 여겨졌다. 플라톤은 회화란 본질적 이데아의 그림자인 자연계의 현상을 또다시 모방한 것으로, 허구요 가상에 불과하다고 했다. 따라서 잘 그린 그림은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모방해 진짜와 같은 착각을 주는 것이었다.

한편 제욱시스가 승복한 이유에는 사물을 통찰하는 예술가의 눈이 표면적인 것에 현혹되는 짐승의 눈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이는 곧 자연에 대한 인간 능력의 우월성을 정당화하는 비유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는 정말 실물과 혼동할 만큼 대상의 겉모습을 똑같이 그렸을까? 회화가 새나 화가를 속일 수 있었던 것은 사실 표면적 유사성 때문이 아니라 그려진 대상이 환기시키는 어떤 본질적인 것이 현실의 사물과 같이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논리적, 과학적 판단이 아니라 감각적, 상상적 동일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성과 과학적 합리성에 근거해 세상을 보고자 했던 그리스 고전기에 회화란 어디까지나 상상과 결부된 현실이 아니라 현상을 재현한 가상으로 인식됐다.
아드리안 판 데르 스펠트·프란스 판 미에리스, ‘꽃과 커튼이 있는 정물’, 1658년
아드리안 판 데르 스펠트·프란스 판 미에리스, ‘꽃과 커튼이 있는 정물’, 1658년
르네상스 시대로 이어진 현실 세계 재현
회화가 현실 세계를 재현한 것이라는 관념은 르네상스 시대로 계승됐고, 3차원의 현실을 2차원의 화면에 그럴 듯하게 옮기기 위한 방법으로 원근법이 발명됐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커튼의 역할이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회화를 창문에 비유했는데, 커튼은 창문과 같은 공간을 표현하는 데 유용한 장치가 된다. 커튼은 물리적으로 장소를 구분할 뿐 아니라 사물을 감추는 동시에 드러낸다는 점에서 회화의 의미에 대한 적절한 은유로 작용한다. 요컨대 커튼은 회화라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서 그 두 영역을 분리하는 동시에 매개하는 유연한 장막인 것이다.

그럼 3차원의 현실을 2차원의 가상공간으로 옮기는 작업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이에 대한 극단적인 시도를 ‘눈속임 회화(trompe l’oeil)’에서 엿볼 수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아르리안 판 데르 스펠트(Adria en van der Spelt)와 프란스 판 미에리스(Frans van Mieris)는 ‘꽃과 커튼이 있는 정물’에서 제욱시스의 자연과 파라시오스의 커튼을 한 화면에 결합했다. 그림에서 꽃과 커튼은 어느 쪽이 우세하다 할 것 없이 모두 눈을 속일 만큼 정교하게 묘사됐다. 여기에는 고전에 대한 관심과 함께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려는 화가의 의지와 자부심이 담겨 있다. 이 눈속임 회화는 제욱시스의 일화를 문자 그대로 실천한 결과로, 가상과 현실의 간격을 좁히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집요한 시도는 묘사된 사물 너머에 있는 본질을 꿰뚫고 그것을 현실로 여길 만한 상상력이 부족함을 역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눈속임은 본래 가상인 회화가 현실을 가장하는 것이므로 눈속임에 성공할수록 회화로서는 실패하게 된다는 모순에 빠진다. 게다가 눈속임 회화는 관람자가 잠시 속았음을 깨닫게 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기 때문에, 결국 그림이 아무리 현실을 잘 모방했다 해도 역시 허상임을 확인시키는 셈이다.
에드가 드가, ‘폐막’, 1888년경
에드가 드가, ‘폐막’, 1888년경
같은 시대에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는 커튼을 이용해 회화의 세계와 현실을 뚜렷이 구분했다. 커튼은 관람자와 화가의 작업실을 분리하며, 그림 속 장면이 현실이 아니라 은유적 내용이라는 것을 알린다. 그곳에는 작업 중인 화가와 함께 역사, 명예, 승리, 기술 등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있는데, 이는 모두 회화예술에 대한 알레고리다. 베르메르는 원근법을 적용해 3차원 공간을 정밀하게 재현함으로써 회화란 연극처럼 현실을 그럴 듯하게 재연해 고정시키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와 동시에 회화의 세계는 화면 밖의 관객이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신비로운 영역임을 선언한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회화예술’, 1666~1668년경
요하네스 베르메르, ‘회화예술’, 1666~1668년경
회화에 대한 이러한 관념은 19세기 인상주의 시대에 변화를 맞이한다. 드가(Degas)의 그림 ‘폐막’에서 보듯이 회화는 더 이상 눈속임과 같은 재현을 추구하지 않는다. 드가는 발레 공연이 끝나면서 막이 내려오는 장면을 신속한 필치로 묘사했다. 무대의 장막인 커튼은 화면 위쪽을 수평으로 지나가는데, 무대 아래쪽 또 다른 수평선과 평행을 이루며 화면을 적절한 비율로 3등분한다. 이렇게 나뉜 부분들은 장막, 무대, 연주석이라는 공존하는 세 가지 장소를 보여 주지만 서로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않는다. 커튼이 3차원적 깊이감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사각형 화면의 2차원적 평면성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 것처럼 보인다. 커튼 밑의 발레리나들은 팔다리의 직선, 의복의 곡선과 색채로써 평면 위에 리듬감을 부여하는 조형적 요소를 제공한다. 이들의 율동은 커튼의 무늬에서 추상적으로 반복된다. 이 그림에서 커튼은 회화를 현실과 구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작품의 구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회화의 일부가 됐다. 이렇게 회화는 더 이상 현상을 모방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게 되며, 현대로 오면서 점점 더 그 자체가 독립된 현실이 돼 갔다.


박은영 미술사가·서울하우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