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curtain): 회화예술의 은유
햇살이 뜨거운 여름, 창가에 드리운 커튼은 외부의 광선으로부터 실내를 보호한다. 집 안의 사생활이 창밖의 시선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커튼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에서 두 공간을 완벽히 차단하지는 않는다. 이쪽과 저쪽의 문턱에서 두 세계를 불완전하게 가르는 유동적이고 임시적인 장벽, 그것이 바로 커튼이다. 그래서 커튼은 실용적 목적 외에도 은유적 표현으로 예술작품 속에 자주 등장한다.![야콥 폰 산드라르트,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 1683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3514.1.jpg)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일화는 회화의 본질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관점들을 제시한다. 우선 회화란 현실을 유사하게 모방한 것이라는 인식이다. ‘모방’은 그리스어로 ‘미메시스(mimesis)’라고 하며 예술적 창조를 가리키는 핵심 개념으로 여겨졌다. 플라톤은 회화란 본질적 이데아의 그림자인 자연계의 현상을 또다시 모방한 것으로, 허구요 가상에 불과하다고 했다. 따라서 잘 그린 그림은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모방해 진짜와 같은 착각을 주는 것이었다.
한편 제욱시스가 승복한 이유에는 사물을 통찰하는 예술가의 눈이 표면적인 것에 현혹되는 짐승의 눈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이는 곧 자연에 대한 인간 능력의 우월성을 정당화하는 비유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는 정말 실물과 혼동할 만큼 대상의 겉모습을 똑같이 그렸을까? 회화가 새나 화가를 속일 수 있었던 것은 사실 표면적 유사성 때문이 아니라 그려진 대상이 환기시키는 어떤 본질적인 것이 현실의 사물과 같이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논리적, 과학적 판단이 아니라 감각적, 상상적 동일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성과 과학적 합리성에 근거해 세상을 보고자 했던 그리스 고전기에 회화란 어디까지나 상상과 결부된 현실이 아니라 현상을 재현한 가상으로 인식됐다.
![아드리안 판 데르 스펠트·프란스 판 미에리스, ‘꽃과 커튼이 있는 정물’, 1658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3515.1.jpg)
회화가 현실 세계를 재현한 것이라는 관념은 르네상스 시대로 계승됐고, 3차원의 현실을 2차원의 화면에 그럴 듯하게 옮기기 위한 방법으로 원근법이 발명됐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커튼의 역할이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회화를 창문에 비유했는데, 커튼은 창문과 같은 공간을 표현하는 데 유용한 장치가 된다. 커튼은 물리적으로 장소를 구분할 뿐 아니라 사물을 감추는 동시에 드러낸다는 점에서 회화의 의미에 대한 적절한 은유로 작용한다. 요컨대 커튼은 회화라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서 그 두 영역을 분리하는 동시에 매개하는 유연한 장막인 것이다.
그럼 3차원의 현실을 2차원의 가상공간으로 옮기는 작업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이에 대한 극단적인 시도를 ‘눈속임 회화(trompe l’oeil)’에서 엿볼 수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아르리안 판 데르 스펠트(Adria en van der Spelt)와 프란스 판 미에리스(Frans van Mieris)는 ‘꽃과 커튼이 있는 정물’에서 제욱시스의 자연과 파라시오스의 커튼을 한 화면에 결합했다. 그림에서 꽃과 커튼은 어느 쪽이 우세하다 할 것 없이 모두 눈을 속일 만큼 정교하게 묘사됐다. 여기에는 고전에 대한 관심과 함께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려는 화가의 의지와 자부심이 담겨 있다. 이 눈속임 회화는 제욱시스의 일화를 문자 그대로 실천한 결과로, 가상과 현실의 간격을 좁히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집요한 시도는 묘사된 사물 너머에 있는 본질을 꿰뚫고 그것을 현실로 여길 만한 상상력이 부족함을 역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눈속임은 본래 가상인 회화가 현실을 가장하는 것이므로 눈속임에 성공할수록 회화로서는 실패하게 된다는 모순에 빠진다. 게다가 눈속임 회화는 관람자가 잠시 속았음을 깨닫게 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기 때문에, 결국 그림이 아무리 현실을 잘 모방했다 해도 역시 허상임을 확인시키는 셈이다.
![에드가 드가, ‘폐막’, 1888년경](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3516.1.jpg)
![요하네스 베르메르, ‘회화예술’, 1666~1668년경](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3517.1.jpg)
박은영 미술사가·서울하우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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