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부자들의 투자 & 소비 트렌드

전반적으로 보수 성향을 띠는 가운데 젊은 신흥 부자들이 그나마 적극적인 투자와 소비를 이끌고 있는 상황.

지방 부자들의 성향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그렇다. 지역 경제와 흥망을 함께하는 지방 부자들의 투자 및 소비 패턴을 따라가 보니 현재 전국적인 머니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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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금융 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개인을 ‘부자’라고 할 때 우리나라 부자는 전체 인구의 약 0.3% 정도로 추정된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의 2013년 자료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 한국 부자는 약 16만3000명. 이는 전년 대비 약 14.8% 증가한 수치로 전체 인구 중 부자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11년 0.28%에서 2012년 0.32%로 증가했다. 그러나 지역별 부자들의 현황을 보면 일단 수적으로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 인천 등에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에는 7만8400명, 경기도에는 3만900명, 인천에는 4600명 등 서울과 수도권에 70%가량이 몰려 있다. 서울만 따로 떼어놓고 봐도 전국 부자 중 48%가 집중돼 있는 등 쏠림 현상이 심하다. 지방에서는 그나마 부산이 1만2500명으로 부자 수가 1만 명이 넘고, 그다음으로 대구 7200명, 경남 5300명, 대전과 경북이 각각 3300명 순이다.


지역 기반 산업과 공동운명체
부자 수로만 봐도 서울 및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가 두드러지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성향 차는 보다 확연해진다. 대표적으로 지방 부자들은 부의 축적 과정에 있어 지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다시 말해 지역을 떠받치고 있는 산업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은 것. 대표적으로 광주광역시는 기아자동차와 금호타이어 등 지역 기반 제조업체에 기댄 경우가 많고, 부자 증가율 1위인 울산 역시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현대가(家)’와 뗄 수 없는 구조다. 과거에 대구 지역이 섬유산업을 중심으로 발전할 당시 많은 부자들이 생겨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다 보니 해당 지역 산업이 활황이면 부 역시 함께 상승했고, 반대로 불황이거나 정체가 계속되면 침체를 면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방 부자들 중 상당수는 지역 내 대기업과 대형 제조업체의 하청 업체나 관련 업체 최고경영자(CEO)들, 그리고 해당 기업의 임원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투자에 있어서도 해당 지역에 기반을 둔 상장사들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다. 애향심 여부는 차치하고, 좁은 지역 사회 특성상 해당 기업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쉽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방 부자들 중에는 지역 내 상장사에 투자했다가 소위 ‘대박’을 쳤다는 사례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지방의 부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또 다른 부류는 바로 의사·법조인을 비롯한 전문직 종사자들이었다. 서울 및 수도권에 비해 집값이 싼 데다 상대적으로 전문직 종사자들의 연봉이 지역 평균보다 높다 보니 여유 자금을 바탕으로 금융 투자 등을 통해 자산을 늘려 나가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이들 신흥 부자들은 자산 규모가 전통 부자들에 비해 크지 않지만, 주식투자는 물론 일부는 해외 주식에도 투자하는 등 전통 부자들보다 적극적인 투자 성향을 띤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전국 금융권 프라이빗뱅커(PB)들을 만나 본 결과, 대체적으로 지방 부자들은 보수적 성향으로 안정적인 투자를 원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뿐만 아니라 지방 부동산이 서울·경기권에 비해 가격이 낮은 데다 투자처나 대상이 다양하지 않다는 이유로 부동산 자산보다 금융 자산에 쏠림이 심한 것도 특징적이었다.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지방 부자들이 서울 부자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및 수도권의 부자들은 부동산 자산 비중이 60% 정도이고, 금융 자산 비중이 35% 이내인 반면, 지방 부자들은 평균적으로 부동산 자산이 42.4%, 금융 자산이 52.2%로 나타나는데,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비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액자산가의 경우 부동산 보유 비율이 높아진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신흥 부자들의 경우에는 덩치 큰 부동산에 대한 부담 때문에 좀처럼 접근하지 않는 사례도 많았다. 부동산 자산을 소유한 경우에도 임대료 등을 위한 수익성 부동산에 대한 니즈가 크고, 금융 자산 내에서도 예·적금 비중이 많게는 60~70%까지 차지하는 등 안정성을 추구한다. 투자 상품을 선택할 때도 ‘안정’은 최우선이다. 주가연계증권(ELS)이 대표적.

금융 자산 포트폴리오 역시 서울과 지방 부자는 지향점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올 초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내놓은 ‘부자보고서’를 보더라도 서울 및 수도권 부자들이 40% 이상의 금융 자산을 주식 및 펀드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 반면, 지방 부자들은 금융 자산에서 주식 및 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31%에 불과해 현저한 차이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서는 금융권 관계자들이 두 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하나는 리스크에 대한 부담을 서울 및 수도권 부자들보다 더 크게 느낀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그만큼 금융상품 등에 대한 정보가 확실히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
[COVER STORY] 부동산보다 금융 자산 선호… 두드린 돌다리도 다시 두드린다
서해안과 제주로 머니 유입 중
전반적으로 지방 부자들이 금융 자산 비중을 높게 가져가는 가운데, 특정 지역은 부동산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주로 개발 이슈가 맞물린 지역들로 전국에서 땅값 상승률이 가장 두드러진 세종시와 제주도 등이 대표적이다. 세종시에 인접한 대전 및 충청권 부자들 중에는 그 지역 토지 보상 이슈로 인해 하루아침에 몇십억 원의 현금을 쥔 경우도 많은데, 다시 인근의 땅을 사거나 원룸 같은 수익형 부동산을 짓는 등 부동산을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주 역시 부자들의 포트폴리오에서 부동산 자산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개발 호재로 인한 가격 상승과 외국인 관광객들의 기하급수적인 증가에 따른 결과다.

그러나 이처럼 개발 이슈로 뜨거운 지역에는 비단 주변 지역의 부자들뿐만 아니라 전국 부자들의 돈이 몰리고 있다. 현재 가장 핫한 지역은 세종시, 당진 등을 포함한 서해안권이며, 제주에는 국내뿐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해외 부자들의 투자가 활발하다. 특히 제주는 아예 외지에서 이민을 와 정착하는 큰손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등 신흥 부자들의 증가율이 높게 나타난다.

한편, 지방 부자들은 소비에 있어서도 신·구세대의 차이가 있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부자들의 전체 월 평균 소비 지출액이 증가세인 반면 지방 부자들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지방 부자들의 소비 패턴을 보면 젊은 신흥 부자들을 중심으로 소비가 활발했다. 전국 공통적인 현상 중 하나는 바로 수입차의 증가다. 각 수입차 브랜드들이 이미 포화상태인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나 지방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