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원덕 한덕서비스그룹 회장

한덕엔지니어링, 원휴먼서비스 등 5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한덕서비스그룹의 한원덕 회장은 정재계 마당발이다.

고려대 최고경영자과정(AMP) 총교우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1970년대 건설역군으로 파견된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에서 골프를 배웠다. 구력이 40년에 가까운 그는 골프가 가족 스포츠로는 최고라고 예찬한다.
[MAD ABOUT GOLF]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에서 매트 깔고 배운 골프 스토리
서울 평창동 한원덕 한덕서비스그룹 회장의 자택은 북한산 사자능선 아래에 있다. 2012년 초 완공한 3층 주택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1층이다. 주방과 거실, 침실이 있는 2층, 3층과 달리 주차장과 연결된 1층에는 트레드밀, 실내 자전거 등 운동기구와 스크린골프가 설치돼 있다. 강남의 아파트에 살던 그는 주택을 구상하면서 처음부터 지인들과 바비큐를 하면서 골프를 즐길 요량이었다. 골프에 대한 그의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자신뿐 아니라 아내까지 싱글인 한 회장이 골프에 입문한 지는 올해로 38년째다. 그가 처음 골프클럽을 잡은 곳은 사우디아라비아 사막 한가운데서였다. 1973년 두산건설(당시 동산토건)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로 파견을 나갔다. 기능공 4000여 명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담맘 지역 고층 아파트 건설 현장에 파견된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시작한 골프
군인, 경찰 등 공직자들이 살 아파트를 짓는 공사였다. 그런데 공사 현장이 사막 한가운데 있어 저녁이나 휴일이면 할 게 전혀 없었다. 할 게 없어 무료하던 차에, 마침 일행 중에 골프 칠 줄 아는 사람이 있었다. 이거다 싶어서 달밤에 사막 위에서 골프를 배웠다.

하루, 이틀 그렇게 골프클럽을 휘둘렀다. 그러다 동료들끼리 의기투합해 골프 코스 한 홀을 만들기로 했다. 주먹만 한 자갈을 골라내니 제법 코스다웠다. 서울에 부탁해서 받은 매트를 깔고 그 위에 공을 놓고 클럽을 휘둘렀다. 샷이 끝나면 다시 매트를 어깨에 메고 공이 있는 데로 가 다음 샷을 했다. 그린은 채로 받쳐 낸 고운 모래를 경유와 섞어서 깔았다. 그랬더니 바람에 날리지도 않고 부드러워 그린 느낌이 났다. 퍼팅을 한 후에는 롤러로 밀어 다음 팀을 배려했다.

“우리 현장 옆에 미국 건설회사의 현장 캠프가 있었어요. 보안이 철저해서 들어가지는 못했는데, 거기 골프장이 있었어요. 먼발치서 보니까 거긴 천연 잔디가 깔려 있어요. 스프링클러를 엄청 설치해서 관리하는데 정말 대단했어요. 그때 제 나이가 스물여덟 살이었는데, 한국에서도 골프장 구경을 못해 봤을 때거든요. 그때 서울 가면 천연 잔디 깔린 골프장부터 먼저 가리라 다짐했습니다.”

그 다짐은 4년 후 귀국하면서 이루어졌다. 1980년 한성컨트리클럽(CC), 그는 사막 한가운데서 갈고 닦은 골프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았다. 친구들과 함께 머리를 올리러 갔지만, 티를 꽂는 것도 모르던 완전 초짜였다. 티도 없어서 친구가 꽂아 준 티에 볼을 올리고 힘차게 스윙을 했다. 그런데 볼이 티 위에 그대로 있었다. 두 번째 샷도 헛스윙. 친구의 조언에 자세를 낮춰서 스윙을 했더니 뒤땅을 쳤다.

때는 8월 15일,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티업 시간도 12시 30분인 데다 그날따라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창피한 데다 힘은 힘대로 들어가 금세 땀으로 범벅이 됐다. 세 번째 홀까지 거의 100개의 볼을 친 듯했다.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유도를 했어요. 전국체전에도 나갈 정도로 웬만큼 했습니다. 그런데 골프는 내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 나 때문에 진행이 안 되기에 친구들한테 니들끼리 치라고 하고 사우나에 들어갔어요. 그러면서 골프는 나한테 안 맞는다며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때 제 몸무게가 95kg 나갔는데 친구들이 골프 열심히 하면 허릿살이 빠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건강을 위해 골프클럽을 다시 잡았죠.”


절정기에 찾아온 교통사고와 그 후유증
건강을 위해 다시 골프클럽을 잡은 그는 퇴근하면 곧장 연습장으로 향했다. 술을 안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하루 2시간은 골프클럽을 휘둘렀다. 한여름에도 구슬땀을 흘려가면서 연습에 몰두했다. 골프에 왕도는 없다.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스윙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드라이버를 잡아도 제대로 공이 맞을 정도로 몸에 익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연습하는 틈틈이 라운딩도 병행했다. 평일에도 시간이 되면 골프장으로 나갔다. 토·일요일은 오전, 오후 하루 36홀을 소화한 적도 많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10번 라운딩을 한 날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5년 정도 정성을 기울이자 전성기가 찾아왔다. 이전에는 골프 치자고 하면 좋아라 하던 지인들이 슬슬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그때는 심심풀이로 내기도 많이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게 1990년 부산에서의 기억이다. 당시는 그가 두산건설을 나와 한덕엔지니어링을 중심으로 한창 사업을 확장하던 때였다. 부산백화점, 롯데백화점 부산점, 리베라백화점 등의 시설 관리와 인력 파견 등 용역을 많이 했다. 거래를 하던 백화점에서 주최한 골프대회에 초대받은 그는 모르는 이들과 한 팀을 이뤘다. 같은 팀에 달변가가 있었는데 골프 실력이 아마추어 이상이었다. 방심하면 안 되겠다 싶어 신경을 좀 썼더니 적잖은 돈을 따게 됐다. 라운딩 후 그가 다른 내기를 제안하며 끝까지 따라붙는 탓에 딴 돈을 모두 주고서야 ‘무사히’ 풀려났다.
한원덕 회장의 손에 이끌려 골프에 입문한 아내는 2년 전 싱글 반열에 올랐다. 현재는 아난티CC 숙녀회 총무로 한 회장보다 골프에 더 열정적이다.
한원덕 회장의 손에 이끌려 골프에 입문한 아내는 2년 전 싱글 반열에 올랐다. 현재는 아난티CC 숙녀회 총무로 한 회장보다 골프에 더 열정적이다.
“당시엔 워낙 성적이 좋아서 다른 사람들하고 골프 치는 방법은 핸디를 주는 수밖에 없었어요. 한 홀에 한 점 9홀에 5~10개까지 달라는 대로 줬어요. 가끔 내기도 했는데, 중간에 잃어도 나중에 배판을 불러서 잃은 돈은 꼭 찾아왔습니다.(웃음)”

15년 가까이 전성기를 달리던 그에게 2000년 위기가 찾아왔다. 아침 출근길에 큰 교통사고를 당해 목뼈가 부러진 것이다. 12시간의 긴 수술 후에도 2개월가량 치료를 받았다. 그러고도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와 근 1년을 장애우로 지냈다.

수술 후 의사는 “당분간 헤드업은 안 할 것”이란 농담과 함께 갑자기 고개를 돌리는 일은 삼가라고 했다. 그런데 수술 후유증은 목뿐 아니라 어깨에도 남아 굳고 통증이 심했다. 당연히 골프가 안 됐다. 그 탓에 2년 가까이 골프를 쉬었다.

사업하는 사람으로 술을 안 마시는 데다 골프까지 안 하니까 사람들과 관계가 소원해졌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각종 골프모임에 가입하며 골프장을 찾았다. 골프계 인사들과도 친분을 쌓으며 아난티CC, 오크밸리CC 등의 운영위원을 맡기도 했다.


두 번의 홀인원, 그 짜릿한 즐거움
오랫동안 골프를 하며 기억에 남는 일도 많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홀인원이다. 지금까지 그는 두 번의 홀인원을 기록했다. 생애 첫 홀인원은 1995년, 오크밸리CC에서 경험했다. 고려대 AMP 교우회 회장이던 그는 동기들과 오크밸리CC에서 세미나를 열었다. 150여 명의 동기들과 세미나를 마치고 나선 라운딩에서 홀인원을 기록한 것. 파3, 153m 3번 홀이었다.

“가볍게 쳐서 올린다는 기분으로 5번 아이언으로 쳤는데 맞는 순간 ‘쩍’ 하니 느낌이 좋았어요. 핀 근처로 공이 구르기에 버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앞 팀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가 났어요. 가보니까 홀인원이더라고요.”

150여 명이 다 보는 앞에서 홀인원을 기록했으니 기분도 좋았지만, 출혈도 컸다. 세미나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선물을 돌렸고, 나중에는 학교에 소문이 나서 직원들에게까지 선물을 돌렸다. 그것도 모자라 두 번이나 술집을 빌려 홀인원 턱을 냈다. 그의 말마따나 홀인원 때문에 단칸방 전셋값까지 다 빼먹었지만 고조된 기분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두 번째 홀인원을 지난해에 기록했다. 업계 사람들과 떠난 중국 칭다오(靑島) 여행에서였다. 칭다오는 사계절 봄이라 골프에 더없이 좋은 기후 조건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동료들과 나선 라운딩이라 가벼운 기분으로 나섰다. 파3, 110m 홀이라 동료들은 피칭을 잡았다. 그는 그날따라 허리가 뻐근하고 아파서 8번 아이언을 잡고, 백스윙도 풀로 하지 않고 가볍게 쳤다. 그렇게 친 공이 에지에 맞고 홀에 곧장 들어갔다. 그는 ‘툭’ 하고 쳤더니 ‘쏙’ 하고 들어갔다고 했다.

“같이 간 사람들이 그냥 놔두겠어요. 술 사라고 난리를 쳐서 남은 여행 기간 내내 술을 샀습니다. 다녀와서도 여기저기 소문이 나서 파우치백에 ‘두 번째 홀인원’이라고 글씨 박아서 돌렸죠.”

그는 한 번도 어려운 홀인원을 두 번이나 한 데 대해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홀인원으로 허리가 휘청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추억이라고 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홀인원을 한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골프장으로 금강산 아난티CC를 꼽았다.

아난티CC 운영위원인 덕에 그는 금강산 아난티CC에 대해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개장 두 달 전에는 시범 라운딩을 하기도 했다. 시범 라운딩을 돌며 그는 그 비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전반은 금강산을 보고, 후반은 해금강 절경을 보며 라운딩을 하게 만들어진 금강산 아난티CC는 지금까지 가본 어떤 골프장보다 매력적인 곳이었다. 티박스에서 펼쳐지는 절경 탓에 미스 샷을 할 정도다.

아쉬운 점은 그런 명문 골프장이 남북관계가 나빠지면서 4년간 문을 닫아야 했다는 점이다. 금강산 아난티CC는 자연경관을 그대로 살려 만들었기 때문에 관리를 안 하면 페어웨이가 금세 풀밭으로 변하고 만다. 그는 아마도 새로 개장하려면 모든 공사를 다시 해야 할 거라고 안타까워했다.
[MAD ABOUT GOLF]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에서 매트 깔고 배운 골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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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의 노예가 돼 즐거움 빼앗겨선 안 돼
4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골프를 접한 그는 요즘 들어 골프가 더 재밌다고 했다. 스코어에 집착하지 않고 ‘즐기는 골프’를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아내와 라운딩을 하게 된 점도 즐거움을 더한다. 그의 손에 이끌려 골프클럽은 잡은 아내는 2년 전 싱글의 반열에 올랐다. 요즘은 아내가 그보다 골프 실력이 더 났다. 그는 “골프는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운동 중 하나”라고 말한다. 또한 근력이 떨어져도 할 수 있는 게 골프다.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가 팀을 이뤄 골프를 즐긴다면 금상첨화다.

“아난티CC 숙녀회 총무를 맡고 있는 아내가 처음 골프클럽을 잡을 때 했던 말이 ‘골프의 노예가 되지는 말라’는 거였습니다. 골퍼들 중에는 스코어에 너무 집착해서 제대로 골프를 즐기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주객이 전도된 거죠.”

그는 라운딩을 마치면 스코어카드를 확인하기보다 오늘은 무슨 얘길하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1만 보 이상 걸었는지를 돌아본다. ‘거기서 왜 오비(아웃오브바운드)를 했지?’, ‘몇 번 홀에선 왜 보기를 했지?’ 하는 식으로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

“인간사가 그렇듯이 라운딩을 하다 보면 다양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럴 때 너무 스코어에 집착하면 안 됩니다. 비즈니스 골프의 경우는 특히 그래요. 스코어에 집중하면 사업 얘기가 자연스럽게 안 나옵니다. 저는 재밌는 얘기를 일부러 외웠다 라운딩에서 합니다. 남자들만 치면 Y담도 하고, 여성이 끼면 코미디로 풀죠. 어떤 분은 골프보다 제 얘기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게 다 즐거운 골프를 위한 양념인 거죠. 어떤 경우에도 재밌게 치는 게 중요합니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