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설레는 청춘 킬리만자로에 있다’

킬리만자로. 이 다섯 글자를 곱씹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저릿하고 아련한 느낌이 피어오른다. 어쩌면 이는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때문일 수도 있고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떠올라서일 수도 있다. 그 이유야 어찌됐건 중요한 건 이거다. 누군가에게는 ‘꿈만 꾸는’ 곳이지만 누군가는 이곳을 제 두 발로 딛고 서서 ‘꿈이 아닌 현실’에서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김성경, 이범구, 김호경
(왼쪽부터) 김성경, 이범구, 김호경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이런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서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그리고 노래의 마지막에는 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누구나 ‘표범’이 되길 꿈꾸지만 대개는 ‘하이에나’로 살 수밖에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특히나 가족을 어깨에 짊어진 중년 남성의 일상은 한없이 팍팍하고 무겁기만 하다. ‘가슴 설레는 청춘 킬리만자로에 있다’라는 책의 제목에 눈길이 멈춘 건 아마 그 때문이었으리라. 청춘의 설렘을 되찾기 위해 먼 여행길에 나선 50~60대의 사나이들. 소설가 김호경(52) 작가와 중소업체를 운영 중인 두 명의 최고경영자(CEO), 이범구(59) 두리산업 대표와 김성경(61) 범우건업 대표다. 이들은 과연 킬리만자로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아 왔을까. 그곳에 과연 표범이 있기는 한 것일까.


먼저 저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중소업체를 운영한다고 돼 있는데 어떤 기업인가요.
김호경 작가(이하 김호경) 김성경 대표는 철강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건설업과 관련된 분야라고 할 수 있죠. 이범구 대표는 목재로 만든 싱크대를 설치하는 사업을 운영 중이고요. 어떻게 보면 두 분 다 경직되고 딱딱한 느낌이 강한 사업에 종사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마음속에는 말랑말랑한 청춘의 낭만을 간직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대표라고 하면 대부분은 시간도 여유롭고 돈도 풍족해서 킬리만자로에 다녀온 줄 알지만, 옆에서 지켜본 결과 그렇지 않습니다. 두 분 다 하루에 20시간 넘도록 치열하게 일을 하시면서도 술, 담배 줄이고 푼돈 아껴가며 모은 돈으로 여행을 다녀온 거니까요.


세 분 다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킬리만자로에 동행하게 된 건가요.
김성경 대표(이하 김성경) 킬리만자로는 저희뿐 아니라 모두 6명이 함께 올랐습니다. 그런데 모두 이번에 처음 만난 사람들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노을빛 고을’이라는 등산 동호회를 함께 하던 친구들입니다. 지금도 매주 국내에서 등산을 다니지만,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해외의 명산들도 찾아다니자는 데 의기투합하게 된 거죠. 킬리만자로도 1~2년간의 준비 끝에 지난 3월 10일 출국해서 10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20일에 귀국했습니다.

김호경 이분들과 비교해 저는 꽤 즉흥적으로 참여한 여행이었습니다. 이범구 대표와는 동서지간인데 부부동반으로 저녁 식사를 하다가 엉겁결에 제의를 받고 한 달 반 동안 준비해서 함께 가게 됐거든요. 지금도 늘 얘기하는 게, 아마 저 혼자였다면 킬리만자로에 다녀올 일은 없었을 거란 겁니다. 그래서 인생이 참 재밌다는 생각을 합니다. 늘 이런 큰일은 혼자서는 못 가지만 동행자가 있다면 어떻게든 가게 되더라고요.


그렇다면 하고 많은 산 중에 왜 킬리만자로였을까요.
이범구 대표(이하 이범구) 왠지 모르지만 ‘킬리만자로’라는 이름부터가 좀 멋있지 않습니까. 어딘지 모르게 날카롭고 남성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고, 또 우리 나이대의 남자들은 킬리만자로에 대한 향수를 누구나 다 갖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아무래도 등산 동호회 활동을 하는 만큼 무산소로 등정할 수 있다는 최고 높이의 산에서 제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한계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가기 전에 품었던 킬리만자로에 대한 이미지가 있었을 텐데, 실제로 가보니 상상하던 모습과 비슷했나요.
김호경 킬리만자로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은 있었지만, 막상 준비를 시작하니 이 산이 어느 대륙에 위치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아는 게 없더군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막연하게 상상만 하던 모습과 실제 킬리만자로의 모습은 정말 달랐습니다. 막상 이곳은 삭막하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킬리만자로를 어느 정도 오르다 보면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가 나옵니다. 그러다 정상에 도착하면 상상도 하지 못한 반전이 펼쳐집니다. 남극에서나 볼 법한 빙하가 눈앞에 펼쳐지는 겁니다. 그 위로 해가 지고 노을이 내려앉으면 빙하가 순식간에 황금빛으로 물드는 겁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까 너무나 가슴이 벅찬 나머지 눈물이 절로 흐르더군요.

김성경 그 자연의 경이로움은 실제 가보지 않고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킬리만자로는 진짜 인생에서 한번은 꼭 가볼 만한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 번은 오르기 싫은 곳이기도 합니다.(웃음)
[BOOK WE ATEND] “‘꿈조차 꾸지 못하던’ 그곳,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군요”
두 번은 오르기 싫다는 건 왜죠. 그만큼 산을 오르는 과정이 험난하기 때문인가요.
김성경 저는 고산증이 걸리는 바람에 정상을 밟아 보진 못했습니다. 정상 바로 직전의 마지막 산장(키보 산장)에서 드러누웠거든요. 일행 6명 중 정상을 밟은 사람은 이 두 분을 포함해 모두 3명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킬리만자로를 올랐다는 성취감은 말로 다하지 못합니다. 비록 정상에 오르진 못했지만 키보 산장까지 간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너무 뿌듯했으니까요.

이범구 처음에 산을 오르려고 몇 발자국만 떼도 벌써부터 호흡이 가빠지고 손도 발도 시려 오기 시작합니다. 정말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인 거죠. 그저 멀찌감치 보이는 산봉우리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오르고 또 오르는데, 내가 살아 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할 겨를도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그만큼 치열하지 않고서는 오를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책에 보니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무엇을 얻고자 그 험한 곳까지 갔을까”란 표현이 있더라고요. 적지 않은 나이에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시나요.

김호경 이때가 아니면 언제 하겠습니까. 50~60대라고 하면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싶지만, 저희도 별 탈 없이 정상을 밟고 내려왔잖습니까. 실제로 킬리만자로를 가장 많이 찾는 연령대를 보면 50, 60대가 많다고 합니다. 다들 죽기 전에 가보고 싶다는 동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정상을 밟고 내려오는데 다른 것보다 여기를 한 번 더 올 수 없다는 게 그렇게 가슴이 저릿할 수가 없더라고요. ‘조금만 더 젊었다면 한 번 더 이 장면을 볼 수 있었을 텐데…’싶었습니다. 그 뒤돌아서는 발걸음이 어찌나 아쉽던지 그곳에서 찍은 사진만 1000여 장이 넘을 정도였으니까요.


킬리만자로를 오를 때는 ‘폴레폴레(천천히)’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업무나 일상에서 늘 ‘빨리빨리’를 추구하는데, 적응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이범구 포터들이 등산객들 옆에서 “폴레폴레”를 외치는 건 우리 몸이 고산증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여유를 두기 위함입니다. 이 때문에 천천히 오를수록 정상에 더 오래 머물 수 있지만, 빨리 올라간다면 정상에서도 더 빨리 내려와야 하거든요. 우리 중에는 김 대표가 애를 많이 먹었죠. 이 사람이 워낙 앞만 보고 내달리다 보니 포터와 자존심 싸움이 붙은 겁니다.

김성경 그래 놓고 저도 나중에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포터와 같이 산을 오르는데 절대 먼저 쉬자는 말을 안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저도 무슨 자존심인지 먼저 쉬자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둘이 ‘누가 이기나 한번 보자’는 꼴이 된 겁니다. 그 포터랑 헤어지고 나서 얼굴은 사색이 되고, 기침도 멈추질 않는데 정말 죽겠더군요.


킬리만자로에 대한 향수는 아마도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 한 곡의 힘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여행하는 내내 노래 가사가 많이 떠오르던가요.
김성경 물론입니다.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이곳에 돌아오기까지 이 노래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특히 산을 내려오고 나서 생각이 참 많아지더라고요. 가장 큰 변화는 제 삶이나 인간관계 등을 조금 더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는 겁니다. 꿈에 그리던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밟았다는 성취감이 그만큼 컸던 덕분일 겁니다.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게 그저 감사하고, 그러니 앞으로도 더 열심히 인생을 꾸려 가야겠다는 열정이 되살아나더라고요.


책의 부제가 ‘그곳에 과연 표범이 있을까’인데, 그곳에 올라 보니 표범이 있던가요.
김호경 실제로 어느 산장에서 만난 덴마크, 브라질 등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과 이에 대해 토론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킬리만자로에 얼어 죽은 표범이 있는지 없는지 말입니다. 나중에 돌아와서 인터넷을 뒤져 보니 킬리만자로의 표범 사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아이러니하게도 ‘표범은 없다’였습니다. 아마도 빙하기 시대 표범이 얼어 죽은 게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대세였거든요.

김성경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건 결국 인생의 해답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매번 산을 오르기 전에는 항상 많은 의문점들을 안고 출발합니다. 그러나 막상 산을 오르다 보면 인생의 해답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자꾸 더 높은 곳을 향해,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려고 하겠죠. 그게 또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합니다.


킬리만자로에 다녀왔다고 하면 지인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김성경 킬리만자로에 다녀오고 난 뒤 제 카카오톡 대화명을 ‘가자! 킬리만자로’로 바꿔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를 본 제 여동생이 ‘우리 오빠가 얼마나 킬리만자로에 가고 싶었으면’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진짜로 킬리만자로에 다녀왔다”고 하니, 그렇게 놀라더라고요. 현실적인 여건을 따진다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잖습니까. 제 여동생은 “꿈조차 꾸지 못하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곳에 실제로 다녀왔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자랑거리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제 인생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늘어난다는 게 좋습니다. 지금도 친구들과 만나면 킬리만자로에 다녀왔다는 얘기를 꺼내는 순간, 술자리의 모든 화제는 제가 주도하게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늘었다는 것, 이게 중년의 남성들에게는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킬리만자로를 꿈꾸지만 선뜻 길을 나서지 못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먼저 다녀온 선배로서 그런 분들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이범구 킬리만자로에 다녀온 후 가장 큰 변화는 삶을 바라보는 데 여유가 생겼다는 겁니다. 사업을 운영하다 보면 속된말로 ‘드럽고 아니꼬운 일’도 많이 겪게 되고, 때로는 물건을 납품했는데 돈을 보내주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들도 적지 않잖아요. 그럴 때 예전에는 조급하고 답답함을 느꼈다면 지금은 ‘그래, 나보다 못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 주자’ 이러고 그냥 넘겨 버려요. 그만큼 스스로 자신감이 붙으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겁니다.

김호경 제가 이 두 분을 보면서 느끼는 건 산도 타 본 사람들이 또 타는 거고, 인생도 즐겨 본 사람들이 또 즐기는 겁니다. 킬리만자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꿈조차 꾸지 못하던 장소를 실제로 가 본 사람이 다음번에도 꿈을 찾아 도전할 수 있는 겁니다. 50~60대라곤 하지만 아직도 체력적으로 건강하고 충분히 젊은 나이 아니겠습니까. 일단 무작정 질러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단 한번 저지르고 나면, 지금껏 보지 못했던 인생의 다른 면들이 서서히 당신 앞에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 말입니다.


이정흔 기자 verdad@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장소 협찬=여행카페 ‘마다가스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