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문 밀레코리아 대표

독일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7%에서 1.9%로 올렸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3.4%로 하향됐지만 독일만큼은 상향됐다. 유로존의 점진적 회복과 다른 산업 국가의 경제 상황 개선, 독일의 강화된 내수 경제를 근거로 독일이 견고한 성장의 길을 걷게 될 것으로 경제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수년간 유럽을 강타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홀로 흑자를 내는 독일의 경제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독일 경제의 힘은 제조업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독일 기업 전체의 90%에 달하는 중소기업이 독일 제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독일 중견기업 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대부분의 독일 기업이 가족기업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은, 주식회사 형태의 대기업으로 경제가 돌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면 대조적인 부분이다. 독일 내 가족기업은 300만 개 정도로 전체 중소·중견기업의 약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 독일 기업 전체 매출액의 41.5%와 고용의 57%를 책임지고 있기도 하다.

독일에서 가족기업의 이미지는 상당히 긍정적인 편이다. 기업의 역사가 오래될수록 창업자로부터 이어져 오는 남다른 기업가 정신, 신속한 의사 결정,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과감한 투자가 결국 소비자에게 신뢰를 받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물론, 안정적인 고용을 미래에도 지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올해로 11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가전업체 밀레는 공동 창업자인 밀레 가문과 진칸 가문이 4대째 공동으로 가족경영을 하면서 연매출 32억 유로, 한화로 5조 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다. 밀레의 1만7000여 임직원 중 25년 이상 근속 사원만 1만여 명에 가까울 정도로 시스템이 탄탄한 독일의 대표적인 가족경영 기업이다. 또 34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화학·제약회사 머크는 회사를 13대째 가문이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11억7300만 유로, 한화로 약 16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성공한 가족기업의 공통점은 무엇보다도 기업 내부의 의사 결정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주주의 이익이 중시되는 주식회사의 경우 단기 실적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으나, 가족기업의 경우 장기적인 관점의 투자 경영 전략을 보다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독일 기업은 가업 상속 시 정부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즉, 가업을 상속할 때 높은 과세 부담을 덜어주는 상속세 개혁 법안을 2008년 통과시킴으로써 독일의 많은 가족기업들이 대를 이어 가업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독일의 경제성장촉진법안은 상속인이 사업을 계속해야 하는 기간과 고용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기간을 줄이는 등 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대폭 완화했다. 또 가업상속지원 세제를 중소기업에 제한하지 않고, 업종별로도 제한을 두지 않아 기업인들의 부담이 완화됐다. 그뿐만 아니라 기업 상속 후 의무도 이전 10년이었던 기간을 7년으로 줄여, 회사 규모에 관계없이 상속세를 100% 공제해 주고 있는 등 혜택이 다양하다.

구보타 쇼이치 일본 호세이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에는 1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이 무려 5만여 개, 200년이 넘은 기업은 3000개를 웃돌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사가 90년 넘는 기업이 고작 3개뿐이라는 것과 비교해 보면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100년 가는 기업을 만드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를 위해 거시적인 안목으로 바라보고, 100년 역사의 꿈을 꾸는 기업가 입장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자세로 희망을 만들어 준다면 100년 기업은 더욱 많아질 것이며, 결국 궁극적인 일자리 확대와 견실한 경제로 이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