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로 시작해 고기로 끝나는 식문화. ‘하루걸러 하루 바비큐를 먹는다’는 브라질리언들의 무거운 식단은 어쩌면 채식주의자들의 눈엔 야만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삼바와 축구로 대변되는 그들 특유의 정열과 넘치는 활력이 육식으로부터 나온다면 말이 달라지지 않을까. 여기에다 살찌지 않고 건강하게 고기요리를 즐기는 방법까지 제대로 알고 있으니 브라질 사람들, 보통 현명한 게 아니다.
[TASTE THE WORLD] 삼바와 축구의 나라, 브라질 사람들이 ‘잘 노는’ 이유
“브라질 상파울루에서는 월요일에는 포크, 화요일엔 미트(소고기), 수요일엔 페이조아다, 목요일엔 파스타와 치킨, 금요일엔 피시, 토요일엔 다시 페이조아다, 일요일엔 치킨을 먹습니다. 아, 슈하스코(바비큐)는 거의 매일 먹어요.”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브라질 정통 레스토랑 ‘더 브라질’의 바그너(Wagner) 셰프의 말이다. 브라질 동남부 상파울루 출신인 그가 설명하는 브라질 사람들의 요일별 식단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일을 정해 놓고 음식을 먹는다는 점도 재밌었지만(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식당에서 판매하는 베이스 메뉴가 그렇다는 말일 테다), 거의 매일 육류를, 그것도 하루걸러 하루 바비큐를 즐긴다는 대목에서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사실 브라질 음식을 고기로 한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넓은 대륙 면적을 자랑하는 브라질만큼 다채로운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도 드물다. 애초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오들은 주로 사냥한 고기나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꼬챙이에 구워 먹거나, 식물의 뿌리를 그대로 먹었으며, 15세기 포르투갈에 의해 끌려 온 흑인 노예들은 ‘쿠스쿠스’나 ‘페이조아다’와 같이 백인들이 먹다 남긴 부속 고기로 만든 솔 푸드(soul food)로 주린 배를 채웠다. 18세기경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등지에서 건너 온 백인들은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피자나 스파게티, 해산물 요리나 치즈 등 유럽식 음식을 뿌리내렸다.
숯불에 구워 기름기를 쫙 뺀 브라질식 바비큐 슈하스코.
숯불에 구워 기름기를 쫙 뺀 브라질식 바비큐 슈하스코.
슈하스코·페이조아다, 브라질리언 육식 문화의 꽃
이처럼 각 지역의 여러 음식들이 어우러져 삼바 식문화를 꽃피웠지만, 브라질 음식 하면 단연 슈하스코(Churrasco)가 첫손에 꼽힌다. 수세기 동안 브라질 남부의 카우보이나 가우쵸(목동)들이 즐겨 먹던 전통 브라질식 바비큐로, 에스페토라고 부르는 쇠꼬챙이에 마리네이드 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 등을 꿰어 숯불에 구워 먹는 요리다. 1m 정도 되는 기다란 쇠꼬치에 다양한 고기 또는 여러 부위의 고기를 꿰어 숯불에 돌려 가며 서서히 구워 양파소스를 곁들여 먹는데, 카니발 같은 축제나 결혼식, 생일 등 큰 행사에 절대 빠지지 않는다. 슈하스코를 판매하는 식당인 슈하스카리아(churrascaria)는 이제 전 세계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그너 셰프는 “우리는 주말이면 대게 하루 종일 축구를 하는데, 경기가 끝나고 슈하스코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일상을 너무 행복해한다”며 “한국인들의 삼겹살과 소주 사랑도 여기에 비하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매일 바비큐를 먹을 수가 있을까. 그는 “기름을 쫙 뺀 1등급 고기는 건강한 단백질”이라며 “몸에 좋은 천일염으로만 깔끔하게 간을 하기 때문에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숯불에 구워 낸 소고기 등심 부위를 꼬챙이에서 덜어 주며 토마토, 피망, 양파를 초절임한 비나그래치 샐러드를 함께 곁들이라고 권했다. 우리가 김치를 먹듯 매 식탁에 빠지지 않는 샐러드로, 육류를 발효된 채소와 함께 먹음으로써 영양의 균형을 맞춘다. ‘더 브라질’에서는 7가지 고기를 무한 리필해 주는데, 마늘을 얹은 소등심 부위인 ‘피카냐 코말유’, 안창살 부위인 ‘프라우징야’가 인기다.
페이조아다는 라이스, 비나그래치 샐러드 등과 함께 곁들이면 좋다.
페이조아다는 라이스, 비나그래치 샐러드 등과 함께 곁들이면 좋다.
브라질 사람들은 바비큐를 즐길 때 사탕수수를 증류한 럼주로 만든 정통 칵테일 ‘카피리냐’나 탄산음료 ‘안타라치카라’를 옆에 놓고 마신다. 특히 안타라치카라는 아마존 신비의 식물 과라나 열매로 만든 음료로, 활력과 지구력을 더해 준다고 해서 브라질 축구선수들도 가지고 다니면서 마신다고. 셰프들은 꼬챙이에 꽂은 고기를 들고 다니면서 손님들이 “여기요”를 외치면 가서 서비스해 준다. 보통 슈하스카리아에서는 손님 앞에 한쪽은 빨간색, 다른 한쪽은 초록색의 막대가 놓이는데, 고기를 계속 먹고 싶으면 녹색 부분을, 그만하고 싶으면 빨간 부분을 위로 가게 놓으면 된다.

소와 돼지의 뼈와 각종 부산물을 검은콩과 함께 삶아 낸 음식 페이조아다(Feijoada)도 브라질리언의 주식이다. 과거 백인 농장주들이 먹다가 버린 돼지의 귀나 꼬리 등 부속품을 흑인 노예들이 가져다가 검은콩과 함께 끓여 먹은 데서 유래한 음식으로 우리나라의 부대찌개와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보통 토요일 점심 때 페이조아다를 먹는데, 콩을 목요일 밤부터 물에 담가 불려 다음 날 하루 종일 큰 냄비에 삶는다. 푹 삶아진 콩에 취향대로 돼지고기와 양파, 마늘, 월계수 잎 등을 넣고 끓여 준다. 푹 퍼진 팥죽 같은 페이조아다는 주로 라이스와 함께 덮밥처럼 먹는다. 소화가 잘 되도록 오렌지와 파인애플 등 과일을 한 접시에 담아내니 건강식이 따로 없다.

브라질 사람들의 고기 사랑은 필연이다. 온종일 그라운드를 누비며 공을 차고, 한 달 내내 지속되는 카니발에서 삼바 춤을 신명하게 출 수 있는 건 ‘밥심’이 아닌 ‘육심’일 터. 추측하건대 브라질리언 특유의 유쾌한 국민성은 든든하게 먹고 화끈하게 즐기는 문화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등심·안심 등 7가지 바비큐 무제한, 브라질의 맛 여기서…
더 브라질(경기도 구리시 수택동·031-555-9933) 까르니두 브라질(서울 서대문구 신촌·02-338-9992) 따봉브라질(서울 용산구 이태원·02-797-3363) 코파카바나 그릴(서울 용산구 이태원·02-796-1660) 브라질팩토리1304(서울 서초구 서초동·02-533-6888)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