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을 열광케 하는 그들만의 콘텐츠_세 번째

6·4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전국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후 보수와 진보는 또다시 대립했고 누군가는 무관심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정치판에 대한 맹목적 분노를 느끼기도 했을 터다. 이 지독한 현실을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가 있으니,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내부자들’이다.
[MEN`S CONTENTS] 픽션인가 팩트인가, 정치 스릴러 ‘내부자들’
이병헌과 조승우, 연기력과 티켓 파워를 모두 지닌 두 배우가 한 작품에서 조우한다. 그들이 선택한 영화는 ‘내부자들’이란 작품으로 필자가 그들의 캐스팅에 사뭇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 영화의 원작이 바로 윤태호 작가가 그린 동명의 웹툰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웹툰은 ‘이끼’와 ‘미생’을 거치는 동안 대중에게는 이미 ‘믿고 보는’ 작품이 됐고, 제작자들에게는 판권 구매 1순위로 통하는 ‘킬러 콘텐츠’가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부자들’은 ‘안타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홈런을 날려 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그림체나 붓 터치가 전작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시각적인 면에서부터 그동안에 보아 온 것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짜임새를 살펴봐도 기대 이상이다. 무릇 정치 스릴러는 장르의 특성상, 독자나 관객이 권력을 놓고 암투를 벌일 것이라는 기본적인 기대심리가 깔려 있다. 그 기대에 부응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수작으로 대접받거나 졸작으로 취급당하는데 ‘내부자들’은 시작부터 출중함을 보여 준다.


진보와 보수에 대한 냉소와 날 선 비판
이야기 축은 간단하다. 영향력 1위의 보수신문 논설위원과 정치적 도약을 꿈꾸는 3선 국회의원의 거래, 그들과 공생하는 대기업과 조폭이 서로 물고 물리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윤 작가는 음모와 배신이라는 장르적 기본에 안주하지 않고 현실을 리얼하게 담아냄으로써 남다른 재미의 꽃을 피웠다. 만화를 보다 보면 정치면 뉴스에서 접했던 사건이나 단어들이 새로이 가공돼 등장하는데 어찌나 생생하게 묘사가 됐는지 픽션을 넘어 팩트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허투루 넘길 대사도 없다. 선문답 같은 말 속에 엄청난 계략이나 복선이 깔려 있다. 물론 꼼꼼하면서도 방대한 취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저 드라마적인 재미에만 치중하거나 피상적인 울분만을 건드리지 않는다. 대개의 정치 스릴러가 그저 암투나 배신에 치중하기 마련인 데 반해 ‘내부자들’은 진보와 보수에 대한 냉소적 묘사나 날 선 비판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한편의 르포 기사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근간 최고의 히트 상품이라고 할 TV 드라마 ‘정도전’에 견주어 봐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현실 투영이 묵직하다.

윤 작가는 단행본 맨 앞장에 찍힌 서두를 통해 정치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이 작품을 그리며 깨닫게 됐다고 밝혔는데, 그 예리한 한 마디가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술자리에서는 거침없이 진보 논리를 외치면서도 정작 행태는 이미 보수화돼 버린 사람들이 흔한 세상이기도 하거니와 돈벌이를 위해 정치적 신념을 스스로 묵살해 버리는 비겁함에서 필자 역시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내부자들’의 영화화 소식에 기대를 갖는 이유는 또 있다. 만화 속 등장인물들을 과연 배우들이 어떻게 그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특히 이병헌이 맡은 역할에 주목해 본다. 그가 분할 ‘상구’라는 인물은 복수의 칼을 가는 정치깡패로 만화에서는 한쪽 손을 잃은 절름발이로 묘사돼 있다. 만약 감독이 원작을 충실히 따른다면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이병헌의 전매특허는 쓸래야 쓸 수가 없다. 배우 역시 말끔한 슈트 대신 구겨진 점퍼에 ‘배바지’를 한껏 추켜 입어야 하고 식스팩은 출렁이는 뱃살로 채워야 한다. 다른 인물들 역시 어떤 모습으로 스크린에 옮겨질까 궁금하기도 한데, 부디 살아 있는 에지만 깎이지 않고 고스란히 전달되길 바랄 뿐이다.


김상명 시나리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