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가다_부산광역시·경남권

부산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답게 부자 비율도 서열 2위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13 한국부자보고서’에 따르면 부산 부자는 1만2500명.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부자 비율은 1만 명당 35명으로 서울에 이어 둘째로 높다. 여기에는 몇 년 전부터 뜨겁게 달아오른 해운대 개발 돌풍이 한몫했다.

부산 사람들조차 ‘상전벽해’라고 일컫는 이 지역의 놀라운 변화는 우리나라를 넘어 아시아권 자산가들의 투자를 이끌었다.
2000년대 이후 부산의 신흥 부촌 해운대. 이 지역의 높이 솟은 주상복합건물 단지들에는 부산 자산가의 60%가 살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부산의 신흥 부촌 해운대. 이 지역의 높이 솟은 주상복합건물 단지들에는 부산 자산가의 60%가 살고 있다
지난 6월 5일 부산 부자들을 취재하기 위해 해운대로 가는 길. 택시가 광안대교로 올라서자 탁 트인 바다 뒤편으로 시원스레 펼쳐진 고층 빌딩 스카이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홍콩이나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마천루와 비견해도 뒤떨어질 것이 없는 광경이었다. 마린시티로 차를 몰던 택시 기사는 “구시가지에 건축물 폐자재가 쌓여 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완전 새 도시가 됐다”며 “이곳 사람들은 아무도 10년 전 해운대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0년대 이후 부산의 발전상을 이야기할 때 해운대를 빼놓을 수 없다. 실제, 금융권에 따르면 해운대구에는 부산 부자들의 60% 이상이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고급 주거 지역인 마린시티와 각종 프리미엄 상권이 몰려 있는 센텀시티는 해운대의 명성을 이끌어 가는 쌍두마차다.


부산 부자 해운대에 60% 이상 거주
해운대구 마린시티는 수영만 매립지 일대에 세워진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단지다. 2011년 80층짜리 두산 위브 더 제니스와 72층짜리 현대 아이파크 등 멋진 조망에 인프라까지 갖춰진 아파트들이 완공되자 부산 부자들은 이곳으로 속속 몰려들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시내 접근성이 좋고 학군이 뛰어난 동래, 그중에서도 럭키아파트가 1세대 자산가들의 밀집 주거지였다면, 지금은 해운대 아이파크가 그 자리를 꿰찼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4 전국 공동주택 가격공시에 따르면 해운대 아아파크(전용면적 285.9㎡)의 공시가격은 41억4400만 원으로 전국 4위에 올랐다.

수영강 인근에 115만7024㎡ 규모로 건설된 복합산업단지인 센텀시티에는 초고층 주거용 오피스텔 단지와 문화, 예술, 유통 등 인프라를 갖춘 도시가 조성돼 있다. 이곳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 1구역에 40층 이상의 고층 오피스텔 10여 동이 빌딩 숲을 이루고 있다. 해운대 백사장과 수영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더블 조망권’의 이 오피스텔은 서울 강남의 부자들, 유명 연예인 등의 세컨드 하우스로도 각광받고 있다.

재밌는 점은 서울이 특정 지역으로의 부 쏠림 현상이 약해지는 반면 부산은 오히려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은 강남 3구 부자 분포가 2009년 39.2%에서 37.6%로 떨어진 반면, 같은 기간 부산 해운대구는 10%대 후반에서 21%로 크게 늘었다. 곽경훈 부산은행 WM사업실 부부장은 “부산 정서가 워낙 보수적이라 끼리끼리 문화가 그 어떤 지역보다 발달했다”며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돼 있는 해운대를 ‘부산 속의 또 다른 부산’으로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전했다.

이는 해운대에 동양 최대의 백화점으로 불리는 신세계 센텀을 비롯해 레스토랑, 영화관, 미술관, 전시관, 호텔, 병원까지 각종 부대시설이 있어 그 속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해운대 사람들은 농담으로 “광안대교를 건널 일이 없다”고 하는데, 서울 강남 사람들이 굳이 강북의 명동까지 쇼핑하러 나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해운대 센텀시티와 마린시티의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부산의 프라이빗뱅커(PB)들은 부산과 경남 지역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혹은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류라고 답했다. 최근 부산~울산 간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울산 지역 자산가들 역시 해운대에서 출퇴근하기도 한다. 서울 및 수도권에서 은퇴한 뒤 내려온 사업가 등도 큰손들이다.

부산은 1970~1980년대 자동차와 조선, 해운, 화학 분야의 제조업을 중심으로 고도의 성장을 이뤄냈다. 이 때문에 부산에는 핵심 대기업이 모여 있는 산업단지와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이 즐비하다. 특히 자동차, 조선 등의 부품업체 경쟁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지면서 중소기업들의 경쟁력도 덩달아 높아졌고, 이를 통해 부를 일군 CEO들이 대거탄생했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공장용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큰 수익을 올렸다. 공장용지의 경우 녹산공단의 2001년 3.3㎡당 감정 가격은 59만5850원이었으나, 2006년에는 120만7000원으로 5년 사이에 2배 이상 상승했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20년 전 녹산공단에서 공장부지를 3.3㎡당 4만여 원에 분양받았는데, 10여 년 뒤 2006~2007년엔 이 땅이 450만 원으로 치솟아 100배의 이익을 얻기도 했다. 박필준 삼성생명 FP센터 부산지점 차장은 “부산의 공장용지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가격 상승률이 아파트 가격 상승률보다 높다”며 “같은 100억 원이 있어도 서울 부자들은 아파트, 상가 소유주가 많아 현금화가 쉬운 반면, 부산은 대부분 사업과 관련한 부동산으로 현금 유동성이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마린시티 전경.
마린시티 전경.
즉, 부산 부자는 거부(巨富)는 아니지만 힘든 지역 경제 속에서 맨손으로 자산을 일군 자수성가형 기업인이 대다수다. 이렇다 보니 프라이빗뱅킹(PB)센터를 이용하는 고객들의 나이대도 평균이 70대다. 류문선 신한은행 PWM 부산센터장은 “고객들의 평균 나이대를 보면 60대도 젊은 축에 속한다”며 “이들은 돈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흥청망청 쓰지 않고, 겸손하며 결코 부를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도 자산가군에 속한다. 부산 의료관광의 중심인 서면에는 메디컬스트리트가 펼쳐져 있는데, 이곳은 부산의 압구정으로 불릴 만큼 중국인의 수요가 많다. 부산시는 부산을 찾은 외국인 환자가 2009년 5000명에서 지난해 2만 명으로 4배가량 늘었고, 이에 따른 수익 규모도 3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부자들이 속속 상륙한 해운대는 오늘날 부산 금융의 1번가다. 2007년부터 2011년 해운대 마린시티 일대는 금융권 PB센터들의 각축장으로 불릴 정도로 큰손들을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최근에도 마린시티 내 PB센터의 최대 격전지는 신한은행을 비롯해 우리은행, 하나은행, 우리투자증권, SK증권, 현대증권, KB국민은행의 PB센터가 몰려 있는 현대아이파크 상가동이다. 길 건너편 제니스스퀘어에는 부산은행과 유진투자증권, BS투자증권의 PB센터가 치열한 고객 쟁탈전에 나선 상황이다. 금융권은 해운대 부자들의 자산 규모가 향후에도 꾸준하게 늘어날 것으로 추산한다.

그렇다고 부산의 ‘돈’이 해운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대의 아파트 단지가 지어지고 있는 북구 화명동과 고급주택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기장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과거 해운대에 10년 이상 쏠린 눈은 구도심이 살아나면서 강서구 에코델타시티를 중심으로 한 서부산 시가지로 퍼지고 있다. 동부산은 바다만 끼고 있고, 서부산은 강과 바다를 함께 끼고 있다 보니 개발 호재가 있다고 판단, 발 빠른 사람들은 이미 땅을 많이 사 놨다고 한다.


예·적금 70%… 비과세 보험·수익형 부동산에 관심
부산은 도시가 빠르게 변하는 것과 달리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지역이기도 하다. “야구 응원을 하듯 투자도 화끈하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다수 PB들은 고개를 저었다. 보수적인 지역 특성상, 부산 부자들은 대체로 돈을 지키려고 한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자산 배분에 있어서도 높은 수익률을 원하기보다는 시중금리 플러스알파(+α) 수준에 눈높이가 맞춰져 있다. 전체 포트폴리오에서도 은행 예금이 60~70%에 달할 정도로 안전자산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 그다음이 채권, 보험, 주식 순이다. 60대 이상 자산가는 예금과 적금, 채권형 펀드, 머니마켓펀드(MMF) 등 원금보장형 상품을 선호한다. 비과세 혜택, 상속세 재원 마련 등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보험 상품에도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수익률을 높이고 안전하게 자녀에게 자산을 물려주기 위해서다. 박필준 차장은 “연금을 상속하면 연금 수령액의 정기금 평가를 통해 상속세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어 고액의 연금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젊은 층의 일부 전문직 종사자들은 시중금리로는 더 이상 자산관리가 힘들다는 판단 아래 공격적인 투자를 택하기도 한다. 주로 헤지펀드와 롱쇼트펀드를 선호하며, 해외 투자형 상품으로는 선진국의 경기회복세에 따른 선진국 주식과 채권혼합형인 글로벌 자산배분형 펀드에 많이 가입했다. 그 밖에 저금리 기조 속 안정적인 수익형 부동산으로도 눈을 돌린다. 해운대의 한 PB는 “마린시티에 거주하는 사모님들은 요즘 상가에 꽂혔다”며 “20억~30억 원대의 적당한 수익형 부동산을 사겠으니 좋은 물건을 찾아봐 달라는 주문을 자주 한다”고 귀띔했다.
경남의 산업을 주도하는 창원기계공단.
경남의 산업을 주도하는 창원기계공단.
하지만 부산에서는 젊은 자산가층이 새롭게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PB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젊은 자녀들은 해외나 서울로 떠나고 부산에는 부모 세대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선대로부터 기업체를 물려받은 2세들이 있긴 해도 이들을 아직 부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류문선 센터장은 “서울에는 벤처나 정보기술(IT) 분야에 뛰어들어 돈을 번 30대 중후반의 젊은 VIP 고객들이 종종 있지만 부산은 벤처 토대가 약하고 대부분 비상장 기업들이다 보니 고소득을 올리는 젊은 부자를 찾기가 어렵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산의 토착 기업 관계자는 “젊은 층의 역동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 부산이 부자 도시의 명성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고 지적했다.
부산·경남 부자들의 관심사인 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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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부산 부자는 자수성가형 기업인 시중금리+α…‘안전 또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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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