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가다 울산광역시

울산은 전국에서 1인당 소득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1인당 소득이 높은 만큼 금융 자산 10억 원 이상, 고액자산가들의 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가에서 ‘울산은 PB 시장의 무덤’으로 통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COVER STORY] PB 고객 90% 현직 CEO… 신흥 부자들 부동산에 꽂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지역소득’에 따르면 울산의 1인당 개인 연소득은 1831만 원으로 전국 평균인 1477만 원보다 24.0% 많았다. 울산은 서울(1752만 원), 부산(1505만 원) 등 15개 시·도를 제치고 4년째 소득 1위를 차지했다.

부자 증가율도 전국 최고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보고에 따르면 한국 부자의 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점에 일시 감소한 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전국 평균 증가율은 14.8%였는데, 울산의 부자 증가율은 19.6%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부자 증가율 1위, PB 시장은 걸음마
소득 1위, 부자 증가율 1위 울산 고액자산가들의 투자 성향은 어떨까. 정상하 삼성생명 울산FP센터 팀장은 “울산은 평균 연봉이 높을 뿐 전통적인 의미의 부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울산은 ‘산업화 도시’답게 1960, 1970년대 공업화가 이뤄지면서 개인소득이 급증했다. 그 탓에 2세대 중 고액 자산을 보유한 부자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삼성생명 고객만 보더라도 대부분의 계약자가 월 보험료 30만~100만 원 사이의 직장인들이다.

반면 월 보험료 100만 원 이상 고액 계약자들은 대부분 사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이다. ‘현대의 도시’답게 주로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 1~5차 벤더의 CEO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회사가 성장하면서 주식 가치도 상승해 부자가 된 경우다.

자산의 대부분은 회사 지분이다. 이렇다 보니 회사는 부자인데 CEO 본인의 자산은 적은 경우도 많다. 매출액 100억 원, 당기순이익 10억 원인 회사 오너의 월급이 300만 원인 경우도 적지 않다. 정 팀장은 “그런 분들에게 합당한 급여 확보와 배당 등으로 개인 자산을 늘리도록 컨설팅한다”고 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울산은 서울 다음으로 증권 계좌 수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 또한 허수다. 울산은 주식이나 펀드 계좌를 가진 인구가 110만 명 중 16만 명에 이른다. 울산에 상장 기업이 많다 보니 우리사주로 인해 증권 계좌만 만든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증권 계좌만 있을 뿐 주식이나 펀드 투자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거의 없다. 전체 울산 인구 중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512명에 불과한 것만 봐도 지역 부자들의 투자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고배당을 받는 회사 CEO들을 빼면 그 수는 더 줄어들 것이란 게 정 팀장의 분석이다.

삼성증권 울산지점 자산이 약 6000억 원인데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만큼 주식이나 펀드에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그 대신 본인 유고 시에 회사를 지킬 수 있는 보장성 상품이나 상속과 관련한 종신형 보험 상품에 관심이 많다.

정 팀장은 “울산은 소득 수준이 높고 정년이 어느 정도 보장되기 때문에 투자 상품에 크게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한 달 700만~800만 원이면 약 99㎡대 아파트에 4인 가족이 풍요롭게 사는데, 위험을 감내하는 투자 상품에 투자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많은 건설사들이 울산에 대형 주상복합을 공급했다 실패한 이유도 거기 있다.

정 팀장의 말처럼 울산을 대표하는 고액자산가들은 대부분 하청업체 CEO들이다. IBK기업은행이 금융사로는 최초로 울산PB센터를 연 이유다. IBK기업은행은 대출을 통해 인연을 맺은 CEO들의 가업승계와 자산관리 등을 위해 2011년 문을 열었다.

울산PB센터는 남동공단, 시화공단, 창원공단과 함께 IBK기업은행의 4개 기업형 PB센터다. 부산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이미화 IBK기업은행 울산PB센터장은 울산 CEO들의 특징에 대해 “젊으며, 자산관리보다 사업에 투자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표현했다.
1인당 소득 1위인 울산은 부자 증가율 또한 전국 1위다.
1인당 소득 1위인 울산은 부자 증가율 또한 전국 1위다.
우정혁신도시 등 주변 개발 호재 넘쳐
PB센터 고객의 90% 이상이 현직 CEO로 여전히 부동산을 1순위 투자처로 여긴다. 울산은 하청업체라도 규모가 크기 때문에 공장 부지도 3300㎡ 이상이다. 따라서 공장을 운영하는 동안 지가가 동시에 상승해 부자가 된 경우가 많다. 산업단지에 3.3㎡당 40만~ 50만 원에 분양받은 땅이 몇 년 사이 160만~170만 원으로 치솟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경우 시장금리 등 저리의 자금을 활용하면 레버리지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어 수익률은 더 높아진다.

우정혁신도시 이슈도 지역 부동산 시장의 매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울산은 2015년까지 근로복지공단, 한국산업인력공단 등 10개 기관이 옮겨 온다. 기관 이전에 따라 건설 중인 우정혁신도시 개발은 지역 부동산 시장에 큰 호재가 되고 있다. 이 지역 아파트들은 2000만~5000만 원의 프리미엄이 형성돼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타 지역에 비해 금리 민감도도 그리 크지 않고, 금융 자체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낮다. 10억 원을 기준으로 자산 비중을 보면 부동산 6억 원, 일반 예금 3억 원, 펀드 1억 원 정도다. 부산, 광주 등과 마찬가지로 주식, 펀드 등의 투자 비중은 현저히 낮다.

그렇다고 주식에 대한 관심이 그리 없진 않다. 투자 대상은 대부분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 관련 종목이 많다. 하청업체를 하면서 얻는 정보나 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를 하는 것. 증권 거래는 현대증권이나 HMC증권, 하이투자증권 등 범현대가의 증권사를 주로 이용한다. 울산은 삼성증권이 전국에서 시장점유율 3위 안에도 못 드는 거의 유일한 지역이다.

중소기업 CEO를 제외한 고액자산가들은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다. 지역적으로는 법원이 있고, 학군이 좋은 남구 옥동 주변이다.

옥동 주택가에서 가까운 경남은행 문수로지점. 지난해 12월 PB센터를 개소한 문수로지점의 윤준호 팀장은 “울산 고액자산가들의 특징은 부동산, 특히 상가에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경기가 좋다 보니 상가에 대한 수요가 꾸준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윤 팀장은 “때가 되면 부동산을 사겠다고 6년 동안 정기예금으로만 돌리는 분들도 많다”고 전했다.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높은 반면 자산관리의 기본 개념에 대해서는 아직 생소하다. 이 때문에 목표 수익률을 정하거나 투자에 따른 위험을 간과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 등 이머징 펀드에 투자했다 손해를 본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윤 팀장은 “울산 부자들이 지역적인 특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다만 펀드 등 투자 상품을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 부담스러워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따라서 부동산을 대체할 수 있는 투자 상품에 대한 인식만 넓어지면 투자 패턴 자체도 다양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울산=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