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th FINANCIAL INSTRUMENTS

한국경제매거진 머니는 2005년 창간됐다. 2000년대 중후반은 국내 주식시장 최대 전성기였다. 증시가 1000포인트에 안착했던 2005년부터 2000선을 돌파한 2007년까지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활활 타올랐다. 이 시기에 등장한 고위험·고수익 적립식 펀드는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기 마련이다. 2007년 정점을 찍은 주식시장은 불과 1년 뒤 2008년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쓰나미처럼 몰려 왔다. 코스피 지수는 다시 1000선 아래로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과열된 금융시장의 거품이 한순간 사라지면서 투자자들의 멘탈도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금융위기의 여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저성장·저금리 시대가 도래하면서 다시 중위험·중수익 상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불과 9년 안에 일어난 변화치곤 한마디로 드라마틱하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금융시장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묻지마식’ 광풍의 펀드도 결국 수익이 반 토막 나고, 호황 때는 눈길도 안 줬던 가치주펀드들은 새로이 빛을 보고 있다. 우리가 얻은 교훈은 금융상품 시장엔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다는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제대로 진단해야 미래도 전망할 수 있다. 창간 아홉 돌을 맞은 한경 머니가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지난 9년간 유행했던 금융상품을 돌아보고, 변화해 온 투자의 흐름을 짚어봤다.


2005~2007 미래에셋이 이끈 투자 황금의 시대
[SPECIAL REPORT] 히트 상품으로 돌아본 금융투자 9년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가 박스권에서 벗어나 1000포인트에 안착했던 2005년을 금융상품 시장의 판도가 본격적으로 바뀐 해로 본다. 이전까지 전 국민 대표 재테크 수단이었던 은행 적금 상품은 인기가 시들해진 반면, 주가 상승에 힘입어 적립식 펀드와 저축은행 상품으로 자금이 몰렸다.

재테크 포털 모네타에 따르면 2005년 6월 경영공시 기준, 적립식 펀드는 전년 대비 10조3000억 원 늘었고, 저축은행의 수신고도 전년 대비 4조7000억 원 늘었다. 반면 은행 적금은 1조2000억 원 줄어들었다.

박성현 미래에셋증권 상품기획팀 과장은 “시장은 좋고 투자 테마는 위험자산인 주식이었다”며 “펀드 수익률이 20~30%는 기본이었으니 그야말로 투자의 황금기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중심에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있었다. 미래에셋이 선보인 인디펜던스, 디스커버리, 3억 만들기 솔로몬 등 공격 성향이 강한 ‘액티브펀드 삼총사’는 지수 상승률 이상의 성적을 내며 국내 펀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2005년에는 인디펜던스에 5780억 원, 디스커버리에 3000억 원가량이 몰렸고, 2007년에는 각각 1187억 원, 6447억 원이 유입됐다. 미래에셋의 대표 펀드 시리즈들은 투자자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입한다고 해서 ‘묻지마 펀드’ 혹은 ‘1가구 1펀드 시대의 주역’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외 펀드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코스피 지수가 최초로 2000선을 돌파했던 2007년의 대표작은 인사이트펀드. 그리고 ‘미차솔’이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미래에셋차이나솔로몬이었다. 당시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증시도 연일 신고가를 경신했다. 지역, 섹터에 구애받지 않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매력적인 투자 대상을 발굴, 투자하는 미래에셋 인사이트 혼합형 펀드는 설정 일주일 만에 설정액 3조 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 간접투자 역사상 유례없는 기록이었다.

국내 최초 중국 펀드인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의 봉쥬르차이나펀드는 2007년 중국 증시가 6000을 넘자 투자자가 떼로 몰려 왔다. 2006년 출시된 미차솔은 2007년 한 해 동안 75.8%라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기록했다. 1년 수익률이 100%를 웃돌며 순자산이 6조 원에 육박하자 신규 모집을 중단하기도 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의 김태연 부장은 “한 사무실 안에서도 누구는 3개월 투자해서 200% 수익을 얻었느니, 또 누구는 1000만 원으로 한 달 만에 300만 원을 벌었느니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을 정도였다”며 “대출까지 받으면서 펀드에 가입하는 투자자가 적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저축은행 예금·변액유니버설보험 등 고금리 상품 인기
은행권에서는 탈(脫) 예금이 화두였다. 시중은행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저축은행으로 몰렸다. 저축은행 상품은 예금자 보호 대상이 되고 평균 4%대였던 은행 금리보다 1%포인트 이상 높다는 점이 ‘금리 노마드족’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8%대 금리를 자랑했던 HK저축은행의 에이치케이플러스 정기적금, 솔로몬상호저축의 정기적금 등이 인기였다. 보험 역시 주식 등에 투자해 돈을 굴린 뒤 성과에 따라 연금을 지급하는 공격적 성향의 상품이 화두였다.

펀드와 은행, 보험 상품을 결합하고 은행 예금처럼 적립금을 자유롭게 넣거나 빼내 쓸 수 있는 기능을 더한 변액유니버설보험은 2005년 이후 생명보험사 업계 최고의 히트 상품이었다. 미국계 메트라이프 생명은 주식에 90%를 투자하는 펀드를 운용하는 마이초이스 변액연금을 운용하기도 했다.



2008~2011 ‘묻지마 투자’ 시대 지고 안전자산으로 대거 몰려
[SPECIAL REPORT] 히트 상품으로 돌아본 금융투자 9년
2008~2011년은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국내외 증시가 급락하면서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자의 인식 대전환이 일어난 시기다. 이른바 ‘묻지마 투자’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리스크를 최소화한 안전자산으로 대거 돌아섰다.

투자했던 펀드들이 대부분 반 토막 나면서 투자자들은 환매에 나섰다. ‘펀드런’이 시작된 것. 김태연 부장은 “40%를 웃돌던 수익률이 거꾸로 절반 가까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이익 실현을 위한 펀드런이라기보다 더 이상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환매가 대부분이었기에 거의 재투자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장기투자 상품보다는 자금이 짧은 기간 머무는 단기 금융상품들로 많이 이동했는데, 초단기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 시장의 규모가 커졌다. 정기예금 역시 만기가 짧은 회전식 예금에 돈이 몰렸으며,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도 1조 원이 넘는 자금이 유입됐다.

이 무렵 주식형 펀드를 대신해 인기는 얻은 상품은 안전하면서도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채권형 펀드였다. 저금리 기조 속 선진국의 경기부양책 등으로 인한 신흥시장 통화 강세에 따라 힘을 얻은 국외 채권형 펀드는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주식형 펀드를 뛰어넘는 수익률을 보이면서 뭉칫돈이 대거 몰렸다. 국외 주식형 펀드의 3년 수익률이 -23.93%인 데 반해 브라질, 러시아, 아시아 등 신흥 국가들이 발행한 국공채에 투자하는 국외 채권형 펀드의 2년, 3년 수익률은 각각 36.55%, 26.82%였다.

특히 브라질 채권은 금융위기 이후 최고 히트 상품으로 꼽힌다. 2011년 5월 출시된 이래 불과 3개월 만에 1조 원 가까운 투자금을 끌어모았고, 환율 변동이라는 위험에도 연 10%대 이자 수익과 절세 효과로 투자자들을 유혹했다.

펀드별로 보면, 얼라이언스번스틴자산운용의 에이비(AB)글로벌고수익증권투자 펀드가 15.53%의 수익률로 선두를 달렸다.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고위험·고수익 하이일드 채권 펀드 역시 당시 히트 금융상품이었다.


브라질 국공채·랩어카운트 등 금융위기 이후 최고 히트 상품
자문형 랩 역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2010년 4월 1조 원이 조금 넘었던 계약 잔고가 2011년 5월 9조1824억 원까지 늘었다. 랩어카운트는 여러 금융투자 상품을 하나의 계좌에서 묶어 관리하는 종합자산관리계좌를 뜻한다. 크게 자문형과 일임형으로 나뉘는데, 자문형은 투자자문사가 투자에 대한 조언과 자문의 역할만 할 뿐 실제 주문은 고객이 직접 내야 하는 방식이다. 이 자문형 랩은 당시 금융권에 랩어카운트 붐을 불러일으켰으며 자문사들의 선호 종목을 두고 ‘칠공주’, ‘사대천왕’ 등의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2011년 8월 증시가 폭락하면서 주요 편입 종목의 주가가 하락하자 자문형 랩 상품의 수익률도 곤두박질쳤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금융산업연구실장은 “리먼 사태 이후에는 특별한 스타 상품이 있었다기보다는 안정적이면서 비교적 고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들이 다양하게 등장했다”며 “평균 수익이 5%만 돼도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보험 상품 가운데서는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된 연금보험이 인기가 좋았다. 안정적이지만 인플레이션에 취약한 일반 연금보험 대신 변액연금보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다.



2012~2014 위험 회피, 중위험·중수익 상품 주목
[SPECIAL REPORT] 히트 상품으로 돌아본 금융투자 9년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최근까지 서서히 주가가 회복되고 있지만, 금융위기 당시의 충격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지금도 상당수 투자자들이 전고점을 넘어선 선진국 증시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이에 최근 국내 금융상품 투자 트렌드는 ‘위험 회피’로 흐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2013년 국내외 주식형 펀드에서 8조5700억 원이 빠져나가는 등 침체 속에서도 가치주펀드의 활약은 빛났다. 가치주펀드는 그 주식이 갖고 있는 가치에 비해 현재 가격이 싸다고 판단하는 주식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우량 중소형주에 주로 투자한다. 신영자산운용은 지난해 7900억 원으로 국내 운용사 가운데 가장 많은 자금을 모았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은 5200억 원의 투자 자금을 모았다. 신영밸류우선주증권자투자신탁, 한국밸류10년투자100세행복증권투자신탁, 현대인베스트먼트로우프라이스증권투자신탁, 신영밸류고배당증권투자신탁 등 가치주펀드는 2013년 최고의 대박 상품으로 통한다.


‘가치주펀드’ 맹활약…다크호스 ‘롱쇼트펀드’회의론도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현재 펀드 시장의 다크호스는 롱쇼트펀드다. 2012년 말 1773억 원에 불과했던 롱쇼트펀드 설정액은 올 초 2조 원을 돌파하며 10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들어 롱쇼트펀드로 유입된 추가 자금만 5000억 원이 넘는다. 롱쇼트펀드 붐을 일으킨 한국형 헤지펀드도 성장하고 있다. 공식 집계가 가능한 공모형 헤지펀드는 2조3000억 원을 기록 중이고 사모형까지 포함하면 5조 원 내외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롱쇼트펀드 열풍을 일으켰던 트러스톤다이나믹코리아50자 펀드는 자산 30~40%를 국내 채권에 투자하고 나머지 자산은 롱쇼트전략을 적용해 국내 주식을 매매한다.

그러나 한국 증시 성격상 롱쇼트펀드가 완전히 증시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비좁은 시장에 너무나 많은 롱쇼트펀드가 생겼으며, 이로 인해 헤지펀드들도 시장을 확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밖에 녹색성장 펀드, 창조경제 펀드, 통일 펀드 등이 정부 정책에 따라 ‘반짝’ 인기를 얻었으며 에너지인프라MLP특별자산펀드 등 자원과 에너지에 투자하는 대체투자 펀드도 ‘핫’한 상품으로 떠올랐다.

보험에서는 18년 만에 부활한 재산형성(재형)저축 상품이 2013년 3월 출시 첫날에만 28만 계좌가 개설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다양한 상품에 투자해 위험은 줄인 반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변액보험이 스타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2008년 이후 투자 상품의 유행도 무척 짧아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성장 모멘텀이 풍부했던 2008년 이전에는 밸류에이션 체크도 필요하지 않았지만 국내외적으로 저성장 테두리 안에 있는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투자 트렌드가 급변하고 금융상품군이 다양해진 만큼 인기 있는 상품에 무작정 투자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남기남 자본시장 연구원 파생상품실장은 “플러스 알파를 원한다면 앞으로 투자자들도 직접 금융상품을 연구해 적합한 투자 상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펀드 슈퍼마켓 등 온라인 펀드 판매 사이트를 잘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윤경 기자 ramiji@hankyung.com | 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