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왜 3대를 못 가는가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속담이 있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부(富)가 3대를 넘어 유지되는 비율이 4% 정도밖에 안 된다.

한 기업이 100년 장수 기업을 꿈꾼다면 최소 4대까지 생존해야 하는데 그 확률이 불과 4% 정도밖에 안 된다는 의미다.

대다수의 기업들이 ‘3세대의 함정’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FAMILY BUSINESS CONSULTING] 구치가의 실패에서 배우는 교훈
3세대의 함정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환경이나 기술 변화, 세금 문제, 승계 문제 등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가족기업 전문가들은 가족 갈등이나 분쟁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가족 문제로 세대 이전에 실패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구치 가문이다. 구찌(Gucci)라는 이름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패션 브랜드 중 하나로 대중의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구치가(家)가 아닌 다른 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창립자인 구치오 구치를 거쳐 그의 네 자녀와 네 명의 손자를 거치기까지의 이야기는 한편의 영화를 방불케 한다.


청부 살해로 끝을 맺은 구치가의 비극
구치가의 이야기는 설립자 구치오 구치(Guccio Gucci)와 함께 시작된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고향을 떠나 영국 사보이 호텔에서 일을 시작했다. 당시 사보이 호텔은 전 세계의 부호들이 모이는 곳이었는데, 그는 여기에서 부호들의 럭셔리 취향과 문화를 체험했고, 그동안 모은 돈을 가지고 1921년 피렌체로 돌아와 최고급 가죽 제품을 만들어 파는 작은 가게를 냈다. 1925년에는 그의 맏아들 알도가 아버지의 비즈니스에 참여하며 회사를 크게 확장시켰고, 창업자 구치오는 1953년 백만장자가 돼 세상을 떠났다.

그는 딸 하나와 아들 삼형제를 두었는데 세 아들에게만 기업의 지분을 3분의 1씩 남기고 딸은 기업의 유산 지분에서 제외시켰다. 창업 초기부터 회사를 위해 일했던 딸은 이에 격분하고 소송을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후 세 형제 중 둘째가 일찍 사망하면서 장남 알도와 셋째 루돌프가 각각 지분을 50%씩 갖게 됐다. 창업 초기부터 일찌감치 회사에 참여한 장남 알도에 비해 루돌프는 회사에 기여하는 바가 적었기 때문에 형알도는 회사에 대한 자신의 기여도를 감안할 때 동생의 50% 지분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구찌는 1960년대 후반 홍콩과 일본 도쿄에 매장을 내면서 아시아를 공략하고 1970년대는 그야말로 럭셔리 제국을 이루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형제간의 싸움은 격렬해졌다. 형제간에 첫 균열이 생긴 것은 알도가 구치가 수익의 상당 부분을 자회사인 향수사업으로 옮긴 것을 루돌프가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향수회사의 지분은 알도가 80%, 루돌프가 20%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다툼이 격렬했다.

그러나 더 큰 분쟁의 씨앗은 다른 데 있었다. 3세대 자녀들이 기업에 참여하면서 형제간의 분쟁은 부자간의 분쟁으로 확대됐다. 바로 알도의 아들 파울로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기업에서 항상 독립적이기를 원했고 자신이 큰 역할을 맡지 못한 것에 좌절감을 느껴 아버지, 삼촌과 계속 갈등을 빚었다. 그래서 그는 ‘구찌 플러스(GP)’라는 이름으로 구찌보다 더 저렴한 브랜드를 만들어 아버지와 경쟁하려고 했다. 이 일로 이사회에서는 주먹다짐이 오가는 난투극이 벌어지고, 파울로는 가족기업을 상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그런 와중에 1982년 루돌프가 사망하며 그의 지분 50%는 아들 마우리치오가 물려받았는데, 마우리치오는 삼촌 알도와 회사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대립하게 된다. 이렇게 삼촌과 조카가 적대적인 와중에 파울로는 아버지 알도에게 보복하기 위해 그의 사촌 마우리치오와 동맹관계를 맺고 1986년 미국에서 아버지의 탈세를 고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들의 동맹관계도 오래가지 않았다. 파울로는 또다시 마우리치오를 견제하기 위해 세금포탈 혐의로 세무당국에 고발했고 이로 인해 마우리치오는 수백만 달러의 벌금을 지불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1987년경 구치가의 미해결 소송은 18개에 이르렀다.

개인 재정에 엄청난 압박에 직면한 마우리치오는 가문의 다른 계보를 확실하게 축출하고 기업을 재설립하기 위한 발판으로 사촌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 매수를 위한 재정 파트너를 찾았다. 이때 알도는 자신의 아들인 파울로를 축출하는 조건으로 지분을 매도했고, 이로써 마우리치오는 파트너인 인베스트코의 지원으로 구치 후손들에게 흩어져 있던 50%의 지분 전체를 인수했다. 나머지 50% 지분과 경영권은 마우리치오가 계속 유지하도록 했지만, 결국 1993년 마우리치오는 재정적인 문제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자신이 보유한 모든 지분을 인베스트코에 매각하고 말았다. 이로써 구치가의 역사는 끝이 났다.

그런데 구치가의 이야기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마우리치오의 죽음이다. 마우리치오의 이혼한 전 부인은 암으로 의심되는 병을 앓고 있었는데 마우리치오의 적대 행위에 깊은 상처를 받은 데다 남편이 주식을 매각하는 바람에 자식들에게 남겨질 유산이 사라진 사실을 알고 화가 났다. 그녀는 제멋대로 생활하는 전 남편을 파멸시키고자 결심하고 그의 존재를 사라지게 할 청부업자를 찾았다. 그리고 1995년 3월 살인청부업자는 사무실로 가던 마우리치오를 총으로 살해했다. 그녀는 29년 형을 받고 감옥으로 보내지며, 구치가의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구치가의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가족기업 경영자는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 잊지 말아야
구치가는 결국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속담을 뛰어넘지 못했다. 연구에 따르면 가족 간의 분쟁으로 인해 승계에 실패하는 사례는 구치가 이외에도 너무나 많다. 가족기업의 슬픈 이야기 속에는 항상 가족기업을 가족 모두를 먹여 살리는 공동 재산이 아닌 개인의 사유물로 여기고 자신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는 가족 구성원이 등장한다. 그리고 가족 간의 불신, 대립, 경쟁으로 인한 분쟁과 갈등이 상존한다. 이러한 가족 간의 분쟁은 가족 문제로 국한되지 않고 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족 분쟁은 기업의 성장과 발전에 앞서 개인의 이익과 주도권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러한 갈등이 기업에 부정적인 역할을 미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가족기업의 세대 이전에 있어 가족 간의 신뢰와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면 가족기업이 대를 이어 한 가문 내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따라서 가족기업의 승계에 있어 가장 큰 도전은 기업의 일상적인 경영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족 간의 갈등과 분쟁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있다.

대를 이어 가족기업으로 존속하기 위해 경영자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는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관심, 가족 간의 상호 공감대 형성이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가족 간에 화합과 신뢰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가족들 간 신뢰를 쌓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첫째, 가족들이 함께 가족과 기업의 꿈과 비전,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다. 가족들이 기업경영에 있어 서로 다른 관점을 갖게 될 때 가족이 공유하는 비전과 핵심 가치를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면, 이는 가족 간의 신뢰를 높이고 갈등을 예방하는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가족 간 개방되고 정직한 커뮤니케이션은 상호 신뢰를 강화시킨다.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서로의 생각을 솔직하게 교환할 수 있다면 더 효과적이고 현명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상호 신뢰가 높아진다. 따라서 대를 이어 영속 기업의 꿈을 갖고 있는 경영자라면 승계 계획을 경영자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 대표
경영학 박사. 가족기업 컨설턴트.
‘100년 기업을 위한 승계 전략’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