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 건장한 체구의 중년 신사가 부인과 함께 진료실을 찾았다. 신사는 가슴이 답답해 숨이 차고, 불안하고 우울해 잠도 잘 못 자고, 두통과 소화장애 등 많은 증상으로 너무 힘들다며 고통을 토로했다.
[HEALTH] 체질별 화병 다스리기
진맥 결과는 예상대로 화병이었다. 은퇴에 대한 압박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힘이 들었지만 혼자 끙끙대며 버텨 낸 결과였다. 중년의 신사처럼 화병은 환자 본인의 문제도 있지만 가족이나 조직에도 원인이 있다.

화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의사와 환자, 환자 가족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한방적으로는 화를 식혀 줄 청심안신(淸心安神) 약과 침 치료를 시작했고, 환자와 가족에게도 과제를 주었다. 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화병을 다스리는 대응법은 체질별로 차이가 있다.


우울증·공황장애의 원인이 되는 화병
체격이 건장하고, 복부가 발달해 소화력이 좋고 인내심이 많은 우직한 곰 스타일의 태음인은 본인의 이야기를 담아만 두지 말고 꺼내야 한다. 태음인은 몸이나 마음에 너무 많은 것을 담고 견디다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병원을 찾는다. 골방에 혼자 앉아 고민하는 대신 가벼운 복장으로 밖으로 나와 걸어야 한다. 땀을 흠뻑 흘릴 정도로 조금은 과격한 운동도 필요하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에게 털어놓아야 한다. 가족들은 억지로 이야기하라고 다그치지 말고,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나와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충고하려 하지 말고 환자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 주고 공감해 주며 펑펑 울게 해 주어야 한다. 가슴 중앙의 전중이라는 혈을 자극하거나 녹차, 메밀차를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상체가 건장하고 얼굴이 붉으며, 성격이 급하고 직설적이며 감정의 기복이 심한 소양인은 스스로 화병이라고 진단 내리는 사람은 많지만, 성격상 잘 참고 있지만은 않아 실제로 심각한 화병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여건상 어쩔 수 없이 참고 있어, 머리가 깨질 듯 많이 아프거나 얼굴이 붉어지고 눈이 충혈되며, 귀에서 소리가 나고 가슴이 몹시 두근거리며, 근육 경련까지 생길 정도라면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 혈압 체크도 하고 머리 꼭대기까지 가득 차 있는 화를 식혀야 한다. 답답해서 스트레스 푼다고 술을 마시면 더 악화될 뿐이다. 열 식힌다고 태음인처럼 땀을 흘리는 과격한 운동을 하는 대신 조용히 심호흡을 하며 명상을 하거나 탁 트인 곳에 가서 소리라도 질러야 한다. 소양인의 가족은 그들로 인해 상처를 받은 경우가 많지만, 그가 때때로 폭발할 때 맞서서 싸우지 말고 스스로 발산해 화가 잦아들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소양인의 배우자는 그 화 때문에 참다가 본인이 화병이 걸리는 수가 많으니 지혜롭게 잘 지내야 한다. 커피 대신 잘 말린 국화차나 결명자차를 권한다.

가녀린 체구에 하체가 발달한 소음인은 소화가 잘 안 되고 손발이 찬 경우가 많다. 여린 체격처럼 마음도 여려 작은 스트레스에도 힘들어 한다. 그러면 바로 소화가 안 되고 생리가 불순해진다. 소음인의 배우자는 상대가 위축되지 않도록 평소에 배려해 주어야 한다. 가벼운 산책도 큰 도움이 되며, 따뜻한 생강차나 대추차로 속을 따뜻하게 데워 주면 화를 이겨내는 데 힘이 된다.

화병은 화를 내서 생긴 병이 아니라, 화를 다스리지 못해서 생긴 병이다. 화를 다스리지 못해 생긴 화병이 지나쳐 우울증도 오고 공황장애도 오고 심각한 정신질환도 온다. 화를 다스리면 되는 병을 내과로, 외과로, 이비인후과로, 피부과로 급기야는 신경정신과로 다니다가 증상 하나하나에 약을 먹기 시작해서 한 주먹씩 약을 털어 넣어도 호전되지 않고 더욱 만신창이가 된다. 화병을 고칠 때는 나뭇가지나 잎이 아닌 뿌리를 다스려야 한다. 나이가 들어 몸이 노쇠하면 화에 전신이 공격을 받아 더 많은 증상에 시달리게 되므로, 각자의 체질을 알고 그에 맞춰 슬기롭게 화를 다스리면 화목한 가정, 건강한 노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박소연 연세한의원 원장·대한여한의사협회 총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