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세네트 암스트롱 교수의 ‘논쟁의 기술’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종교와 도덕, 믿음에 관한 논쟁으로 화제를 일으켰던 주인공, 바로 월터 세네트 암스트롱 듀크대 교수가 지난 1월부터 코세라(www.coursera.org)를 통해 ‘다시 생각하기: 어떻게 사고하고 논쟁하는가’ 강의를 시작했다. 이번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 귀납논증과 연역논증의 차이를 설명했다.
[COURSERA CLASS] 명탐정 셜록 홈즈의 화법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유명한 명대사다. 그런데 만약 이 시적인 대사를 논리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얼마나 타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어제도 태양은 떴고, 그 전날에도 태양은 떴다. 물론 내일도 태양이 뜰 확률은 매우 높다. 그러나 ‘만에 하나’ 내일은 태양이 뜨지 않을 확률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바로 여기에서 ‘연역적 논증’과 ‘귀납적 논증’의 결정적 차이가 드러난다. 연역적 논증은 전제가 모두 사실일 때 결론이 거짓일 수 없는 타당성을 따진다면, 귀납적 논증은 전제가 모두 사실이더라도 결론이 거짓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누군가를 설득하는 데는 연역적 논증보다 귀납적 논증이 더욱 빈번하게 사용된다. 범죄가 일어났을 때 범인을 추리하거나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곤 하는 비유, 여론조사에서 통계를 통해 일반화하는 것 등이 모두 귀납적 논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귀납적 논증의 경우 ‘타당성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근거가 강한지 약한지’가 중요하다. 논쟁의 맥락이나 상황에 따라 논증의 강도와 이를 확인하기 위한 기준의 척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전문 용어로 귀납논증은 논파가능(defeasible)이라 부르고, 연역논증은 논파불가능(indefeasible)이라 한다. 다음의 예를 보자. “만약 조가 10학년이라면 조는 학생이다.→조는 학생이 아니다. 그러므로 조는 10학년이 아니다.” 이 논증에 다른 어떠한 전제를 더하더라도 조가 10학년이 아니라는 결론은 타당함이 틀림없는 연역적 논증이다. 그렇다면 귀납적 논증은 어떨까. 법정에서 한 증인이 진술을 하고 있다. “제가 직접 보았는데 저 남자가 범인입니다.” 그러자 변호사가 심문을 한다. “저기 앉아 있는 피고가 범죄를 저지른 것이 틀림없나요. 아니면 범인이 저기 들어오는 피고의 쌍둥이 형제일 수도 있지 않나요. 당신은 저 두 사람의 차이를 확신할 수 있습니까?” 증인은 긁적이며 모르겠다고 답한다. 이처럼 처음에는 매우 강력한 증거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새로운 사실(전제)이 드러나며 더 이상 결론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귀납논증이 파기(defeasible)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대선 여론조사가 빗나가는 이유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귀납적 추론의 방법이 바로 통계 조사를 통해 일반화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초콜릿칩 쿠키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초콜릿칩의 개수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하자. 지름 7.6cm의 쿠키에 10~12개 정도의 초콜릿칩이 적당하다는 것이 경험을 통해 내린 당신의 결론이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직접 무작위로 선정된 A·B·C·D·E 베이커리에 들러 각 10개의 쿠키를 사서 통계를 낸다. A베이커리에서는 10개 중 8개의 쿠키에 10~12개 정도의 초콜릿칩이 있었으니 이곳의 쿠키는 80% 정도가 당신의 기준에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언뜻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 추론에는 문제점이 있다. 바로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나는 저 다섯 곳의 베이커리 중 한 곳에도 직접 들르지 않았고 쿠키를 사지 않았지만 당신에게 거짓 결과를 알려줄 수 있다. 연역적 논증에서 전제가 거짓이면 참된 결론을 얻지 못하는 것처럼, 귀납적 논증에서 통계의 샘플이나 조사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면 그 결론 또한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설령 쿠키를 사서 직접 조사를 했다 하더라도, 통계 조사의 샘플이 일정 규모에 미치지 못한다면 성급한 일반화(hasty generalization)의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여론조사다. 1936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가 알프 랜던(Alf Landon)과 대통령 후보로 맞붙었다. 당시 미국의 인기 잡지였던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대대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해 대선 결과를 예측했다. 56대44로 랜던의 승리를 점친 것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승패는 반대였다. 루스벨트가 62대38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전화를 이용한 여론조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전화가 없는 가난한 사람이나 지방 사람들의 의견은 조사에 포함시키지 못한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을 비롯한 다양한 정책으로 특히 지방에 있는 시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얻었기 때문에 이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통계 조사가 심각한 오류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귀납추론의 오류
또 다른 귀납적 추론 방식으로 ‘추론을 통한 최선의 설명(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탐정소설의 추리 기법이다. 자, 여기 세 명의 용의자가 있다. 범죄 현장인 방으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를 갖고 있다는 것이 이들을 용의자로 지목한 결정적 이유다. 그리고 그중 한 여성은 신발이 작은 데 비해 범행 현장에 찍힌 발자국의 크기는 매우 크다. 여기서 이 여인은 범행 현장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른 한 명은 범행 시각에 알리바이가 확인됐기 때문에 용의선상에서 제외된다. 그렇다면 결론은 남아 있는 한 사람이 바로 이 사건의 범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셜록 홈즈를 포함한 모든 탐정소설은 귀납적 추론에 기초를 둔다. 그리고 과학자들 또한 관찰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최선의 설명을 찾아냄으로써 과학 이론을 정립해 간다고 할 수 있다.

비유를 통한 주장 또한 귀납적 추론 방식의 하나다. 우리는 비유를 시적 표현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만큼 유용한 논쟁의 기술도 없다. 다음 공공정책의 예를 들어 보자. 텍사스 휴스턴에 교통 시스템을 새로 구축한 이후 꽤 높은 만족도를 얻고 있다. 이후 피닉스 애리조나의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새로운 교통 시스템의 도입을 앞두고 열띤 토론을 진행 중이다. 이들 중 한 명이 말한다. “인구 규모나 여름철 더운 날씨 등을 고려했을 때 피닉스는 휴스턴과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다. 만약 휴스턴에서 이 교통 시스템이 성과를 거두었다면 아마 피닉스에서도 성공적으로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방식은 전례를 통해 미래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정에 유연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마지막으로 인과추론(causal reasoning) 또한 귀납적 추론 방식의 대표적인 방식이다. 갑자기 컴퓨터가 꺼졌다거나 매일 마시던 커피 맛이 변했다. 또 법정에서 피고가 살인을 저지른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럴 때 인과관계의 판단이 필요하다. 인과관계 사이에는 두 가지 일반적 원칙이 있는데 하나는 충분조건(sufficient condition)이고 다른 하나는 필요조건(necessary condition)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면, 모든 고래는 포유동물이기 때문에 한 동물이 고래인 것은 포유동물이기 위한 충분조건이다. 그리고 동시에 포유동물은 한 동물이 고래이기 위한 필요조건이 되겠다. 포유동물이 아니라면 그 동물이 고래일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고래는 향유고래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만약 그 동물이 고래가 아니라면 그것이 향유고래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기호로 표현하자면 향유고래→고래→포유동물, 이렇게 표시할 수 있다. 향유고래는 고래이기 위한 충분조건이고, 고래는 포유동물이기 위한 충분조건이다.

그런데 인과관계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는 것을 확실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먼저 우연한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하는 것이다. 시간상 앞에 일어났기 때문에 이를 원인으로 규정짓는 경우다(Post hoc ergo propter hoc: after this, therefore because of this). 이는 특히 신문기사를 통해 매우 자주 접하는 실수이기도 하다. 둘째로 원인을 결과로 착각하는 실수도 자주 일어난다. 예를 들면 골프를 치러 필드에 종종 나가곤 하는데, 칠 때마다 등에 통증이 있어 그 통증으로 인해 볼을 잘 치지 못했다. 그래서 등의 통증이 좋지 못한 스윙으로 연결된 거라고 계속 생각해 왔는데, 사실 좋지 못한 스윙이 등의 통증을 유발한 것이었다. 이렇듯 인과관계에 관련해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당신의 일상생활에서 무엇이 어떤 것의 원인이고 결과인지 집중해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번역 박근수 guen.park@gmail.com│정리 이정흔 기자 ver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