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헌법에 ‘남녀가 결혼하면 10년마다 이혼해야 하며, 이혼 후 1년 이내에는 (기존 부부를 포함해) 재혼할 수 없다’는 조항을 넣으면 어떨까? 여자와 남자 중 누가 더 좋아할까? 아마 처음 10년은 서로 사랑하니까 이런 강제 조항에 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50이 넘어 60을 바라보면, 남편의 아내에 대한 배려가 커질 것이다. 남자가 아내 없이 살 수 없는 나이가 되면 아내의 소중함을 새삼스럽게 느낄 것이다. 50이 넘은 아내는 자식만 있으면 되고 남편의 불필요성을 깨달아 10년 주기가 올 때를 기다릴지도 모르겠다.

형법에 ‘만 20세가 넘은 자녀에게 학비와 주거비 이외의 용돈을 주는 부부에게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는 조항은 어떨까? 잘 살든 못 살든 성인 자녀에게 용돈 지급죄를 만들면 부모가 자식에게 돈을 주고 싶어도 못 준다. 신나는 일이 아닌가? 우리는 아이들을 너무 오랫동안 보호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살다 보면 이런 상상을 할 때도 있다.

남자 중학생 7명을 모아서 신상품 아이디어를 찾는 좌담회를 가졌다. 상품 이야기 전에 그들의 욕구를 이해하고자 “아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야?” 하고 물었다. 한 학생이 주저주저하면서 “아빠와 이야기 좀 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한다. 다른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와 이야기하면 어때?”라고 되물었더니 “엄마는 말이 안 통해요. 무조건 야단부터 쳐요. 명령만 해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럼 엄마가 싫어?” “아니요, 엄마는 엄마잖아요! 싫지는 않아요.” “그럼 아빠는?” “아빠는 싫어요. 저에게 관심이 없어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버지와의 진지한 대화였다. 아빠가 나를 한 인격체로 대하고, 나의 문제와 미래에 대해 아빠와 가슴 속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아빠와 이렇게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엄마는 나를 낳았으니까 그냥 엄마다. 엄마는 엄마로서 충분하고 아빠는 나를 인격체로 대해야 좋은 아버지란다.

부부는 사랑해서 결혼한다. 그런가? 정말 나는 나의 배우자를 사랑해서 결혼했는가? 결혼 후 5년 정도 지나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아마도 50% 이상이 “글쎄”라고 자답할 것 같다. 영국의 사회사상가인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남자는 섹스를 원하고, 여자는 사랑을 원한다고? 천만에 말씀이다. 섹스는 둘 다 원하는 것이고, 사랑은 남자가 더 원한다”고 단정했다. 남자로서 살다 보면 기든스의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아마 ‘내가 상대방이 원하는 사람이 되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마음과 행동’인 것 같다. 남편이 아내로부터 월급날마다 “여보,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소중하게 쓸게요”라고 말하는 아내를 원한다면, 아내가 그런 생각과 말을 하는 사람이 되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내가 부자는 아니더라도 열심히 일하는 남자를 원한다면, 남편은 적은 봉급이지만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자기 업무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내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일부일처제가 보편적 가족제도가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살다 보니 다른 부부제도보다 일부일처제가 그래도 가장 문제가 적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 제도가 보편화됐으리라. 일부일처제는 자식과 경제를 공유하는 특이한 인간관계다. 어떤 남남의 관계도 이러하지 않다.

어린 자식이라도 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며 진지한 대화를 하는 아버지가 있는 가정, 남편이 원하는 여자가 되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아내가 있는 가정, 아내가 원하는 남자가 되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남편이 있는 가정. 이런 가정이 행복한 가정인 것 같다.


노익상 한국리서치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