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영화 ‘영웅’은 춘추전국시대에 중국 대륙 전체를 통일해 첫 황제가 되려는 진나라의 야심 찬 왕 영정과 그를 암살하려는 자객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화를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예술적 감각으로 흥미진진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천하의 호걸들이 진나라 왕의 암살을 계획해 도전하나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오직 무명이라는 검객만이 진나라 왕을 암살할 수 있는 십 보 안의 거리에 근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진나라 왕과 대화를 나누면서 왕의 인물됨이 천하를 통일하는 대업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해 암살할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했는데도 불구하고 “톈샤(天下)!”를 외치며 죽음을 선택한다. 자신을 암살할 수 있었음에도 천하통일의 대업을 인지하고 온몸에 화살을 맞아 죽은 자객 무명을 진나라 왕은 “영웅”이라고 호칭한다. 즉,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는 메시지를 옛 중국 천하통일의 역사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오래전에 읽었던 ‘대망’이라는 소설이 있다. 일본판 ‘삼국지’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의 인물들이 난세를 평정하고 일본 전체를 통일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루고 있다. 첫 권을 손에 잡은 후 정신없이 읽게 되는 이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소설이 끝나고 마지막 부분에 기술된 작가의 저술 동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으로 인해 자신감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일본인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역사상의 영웅적 인물들을 선정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도 있지만 나라별로 그 나라의 국민이나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거나 존경받는 근현대 시대의 인물들을 떠올려 보면 나폴레옹은 프랑스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프랑스는 역사상 최고액을 투자해 나폴레옹에 관한 TV 시리즈를 제작해 ‘나포마니아’를 낳았다. 프랑스인에게 나폴레옹은 최고의 국가 영웅으로 남아 있다. 중국 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덩샤오핑의 탄생 100주년 때는 TV, 책, 기사 등으로 그를 새롭게 조명하느라 중국이 떠들썩해서 추모를 넘어 영웅으로 모시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추앙받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경우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인물로서 그에 관한 특집 다큐멘터리와 관련 저서는 셀 수 없이 많고 최근에는 또다시 영화화됐다. 최근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그의 장례식에 전 세계의 리더들이 참여해 정상 외교의 장이 됐다. 그는 아프리카를 넘어 전 세계인으로부터 존경받는 위대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국가적 자존심을 높이고,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인물들의 삶은 지속적으로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대중에게 회자되면서 후세의 인재들이 성장할 때 롤 모델로 자리 잡게 되고, 국민 화합의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있다. 하지만 근현대사에서 한국에는 존경할 만한 인물이 많지 않다고 자조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국인들은 리더의 장점과 위대한 성과를 논하기보다 작은 결점과 허물을 찾으며 인물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들 한다. 공자의 역사서 ‘춘추’를 보면 역사상 위대했던 인물에 대해 단어 하나로 포폄을 한다. 그와 같이 역사적 인물들의 공과는 기록이 되고 그에 대한 평가가 후대에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므로 공정한 평가는 중요한 역사적 과제다.

한국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인물들을 많이 발굴해 ‘과’보다는 ‘공’을 높이 세워 우리들의 자긍심을 고양시키고, 후손들이 존경할 수 있는 조상을 받들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 내는 것도 현존하는 우리의 책무가 아닐까. 존경받는 인물들의 스토리가 영화로, 소설로, 다큐로 후세에 많이, 그리고 오래오래 전해지길 기대해 본다.


이강호 한국그런포스펌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