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이어 ‘환율 쇼크’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4월 이후 원화 절상은 주변국의 정책 요인이 강하고, 그 어느 때보다 환차익을 겨냥한 핫머니 성격이 짙은 점이 종전과 다른 점이다. 또 미국 달러화뿐만 아니라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등 주변 3대 경제 강국의 통화에 대해 모두 절상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MARKET INSIGHT] 미·중·일 통화 약세 정책 환율전쟁으로 비화되나
이번 원화 강세의 주범으로 꼽히는 외국 자금 유입이 국내 증시의 저평가 요인으로 꼽히는 시각이 많으나, 글로벌 자금 전환기에 나타나는 특수한 요인이 더 많이 작용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정책을 변경하는 전환기에 국제 간 자금 흐름에서 먼저 고려하는 기준은 확실한 방향이 잡힐 때까지 자금을 넣어 둘 수 있는 ‘피난처(shelter)’ 기능이다.

한국은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중간 단계인 준(準)선진국 대우를 받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글로벌 자금의 피난처로 가장 적합한 나라다. 즉, Fed가 출구전략을 앞당길 만큼 미국 등 선진국 경기가 좋아질 경우 투자 자금이 이들 국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나, Fed가 금융 완화 기조를 재확인할 경우 신흥국으로 자금이 재환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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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우려되는 것은 최근 국내 증시에 집중적으로 들어오는 외국 자금이 기존 원화표시 채권에 투자했던 외국 금융사들의 차익 실현을 겨냥한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연초부터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외국 금융사들이 금리 인하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것도 원화표시 채권 투자의 수익 실현 차원의 요구로 알려져 왔다.


원·달러 환율 현 수준 유지 가능성 커
금융위기 이후 국제간 자금 흐름에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특징 중 하나가 ‘순응성(procyclicality)’이 심해져 쏠림현상이 정형화되고 있는 사실이다. 순응성이란 환율이 하락할 때에는 더 하락(overshooting)하고, 상승할 때 더 상승(undershooting)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때문에 환율 등 가격 변수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단기적으로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에게 환차익을 더 크게 할 소지를 제공한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집권 2기에 들어서도 달러 약세 정책을 계속 고수하고 있다. 하반기 이후 완만한 경기 회복과 올 들어 테이퍼링(tapering·양적완화 축소)을 추진했음에도 달러평가지수는 ‘80’ 밑으로 떨어지고 있다. 남아 있는 고용 창출 등을 위해 유로화와 신흥국 통화에 대해서는 달러 약세를, 엔화에 대해서는 달러 강세를 용인하는 ‘이원적 전략(two track strategy)’으로 수출업체들에 가격 경쟁력을 보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달러 약세 정책이 지속되느냐는 Fed의 통화정책이 지금의 완화 기조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느냐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의 목표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있는 만큼 밀턴 통화론자와 시카고학파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전반적으로 물가가 안정된 시대에는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만을 고집하기보다 성장과 고용 등과 같은 다른 목표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재닛 옐런 Fed 의장의 입장이다. 혼란을 줬던 3월 회의가 끝난 후 옐런은 앞으로 Fed는 ‘물가 안정 목표제(inflation targeting)’뿐만 아니라 ‘성장 목표제(growth targeting)’와 ‘고용 목표제(employment targeting)’를 함께 설정해 운영한다는 방침을 재차 강조했다.

옐런은 고용을 최우선적으로 창출해 소득과 소비가 함께 늘어나면 성장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고 경기 우호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앞으로 Fed의 금융 완화 기조가 지속될 경우 달러평가지수는 현 수준인 ‘80’ 내외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아베 정부도 발권력을 동원해 엔저를 골자로 한 아베노믹스를 추진한 지 어느덧 1년 3개월이 넘어섰다. 당초 기대했던 경기 부양과 디플레이션 탈출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2차 아베노믹스’를 추진할 뜻을 거듭 밝히고 있다. 시기적으로 3월 말 회계연도 결산이 끝나자 일본에 유입됐던 외국인 자금과 와타나베 부인이 주도하는 엔캐리 자금이 떠나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 예측 기관들은 추진 초부터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아베노믹스가 성공할 가능성보다 또다시 디플레이션에 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 상황에서 아베노믹스가 지향하고 있는 2015년 초반까지 소비자물가상승률 목표 2% 달성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2%의 물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인플레 갭’과 이에 따른 ‘기대 인플레이션’인데 이것들의 대폭적인 상승을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위험 수준에 도달한 국가채무를 줄이기 위해 올해 4월 1일부터 소비세 인상을 추진했다. 하지만 1997년 4월 소비세를 3%에서 5%로 인상한 당시에도 성장률을 큰 폭으로 하락시키면서 ‘잃어버린 10년’에 빠진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번에도 성장률이 소비세 인상 전후로 1997년 소비세 인상 당시와 비슷한 패턴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아베노믹스와 소비세 인상에 따른 경기 둔화 효과를 보완하기 위해 조만간 일본은행(BOJ)이 추가적인 양적완화를 추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금까지 추진한 아베노믹스의 효과가 불투명한 점을 감안해 현행 금융 완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2% 물가 목표를 현실에 맞게 낮추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방안은 아베노믹스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디플레이션 탈피’라는 명분을 훼손시키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 때문에 2%의 물가 달성을 목표로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는 BOJ는 향후 인플레 기대 경로에서 소비자물가가 이탈할 경우 추가 양적완화와 엔저 기조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갈수록 심화되는 미·중·일 환율 갈등
1978년 개혁과 개방을 표방한 이래 높은 성장세를 구가해 온 중국 경제는 작년 이후 경기 둔화 조짐이 뚜렷하다. 작년 이후 분기별 성장률도 전형적인 ‘스네이크형 미니 더블 딥(작년 1분기 7.7%→2분기 7.4%→3분기 7.8%→4분기 7.7%→올 1분기 7.3%) 현상’이 발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대 성장 동력인 수출마저 올 2월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 때문에 그동안 간헐적으로 거론돼 왔던 ‘경착륙’과 ‘중진국 함정’에 동시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재현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그림자금융과 지방 정부 부채액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올해 3월 들어서는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중국에서 발생할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MARKET INSIGHT] 미·중·일 통화 약세 정책 환율전쟁으로 비화되나
올 2월 이후 수출 급감에 크게 당혹한 중국 시진핑 정부는 외환 자유화 계획을 일부 앞당겨 추진해 절상 추세가 지속되던 위안화 가치를 절하로 유도하고 있다. 당초 6월에 계획된 하루 환율 변동 폭 확대(±1%→±2%)를 3월 17일로 앞당겨 추진했다. 그동안 추진해 왔던 금리 인상을 더 이상 추진하기 어려운 여건에서는 핫머니 유입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위안화가 절하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과 일본, 중국 간의 환율을 놓고 미묘한 갈등 관계가 심해지고 있는 점이다. 집권 2기에 ‘아시아 중시 정책(pivot to Asia)’을 추진하는 오바마 정부가 군사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베 정부에 집단적 자위권을 주는 대신 엔저를 묵시적으로 용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진핑 정부는 불가피하게 예상되는 통상 마찰 등의 부담에도 위안화 절하로 맞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흥국 통화가 경제대국의 정책 요인으로 불리해질 때에는 정책적으로 맞대응하는 것이 부작용이 적으나 우리는 이 점에서는 자충수에 걸려 있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담에서 국제수지 불균형 해소 차원에서 소득 대비 4%를 상회하는 경상 흑자국은 인위적인 평가절하 등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합의했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나라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6%에 달해 4월 말에 발표될 미국 재무부의 환율 보고서와 곧이어 열린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원화 절상을 막기 위한 시장 개입은 통상 마찰 등은 고사하더라도 국제사회에서 명분이 약하다. 더욱이 환율 방어를 위해 그동안 외평기금 과다 조달에 따른 부담으로 외환시장 개입 비용이 크게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에서 ‘좀 더 지켜보자’ 식의 소극적인 자세보다는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미국 등 중심 3국이 자국의 통화 약세를 유도하는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시장 개입에 따른 마찰 부담도 적다. 글로벌 이익이 자국 이익과 충돌할 때에는 자국의 이익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대외 경제정책 방향이기 때문이다.

원화 절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금리 인하가 가장 확실한 방안이지만 대내외 여건상 여의치 못하면 차선책으로 ‘태환 개입(unsterilized intervention)’이 좋은 대안이다. 최근처럼 물가가 안정돼 있고 국내 자산 시장과 체감 경기가 안 좋은 여건에서는 달러 개입을 통해 풀린 유동성이 부작용보다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토빈세 부과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풀린 자금 유입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영구적 불태환 개입(PSI·permanent sterilized intervention)’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외자 유출입에 따른 환율 급등락을 방지해 경제주체들의 착시와 교란을 방지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은 환율구조모형 등을 통해 추정된 원·달러 환율의 적정 수준이 1060원 내외로 나오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외화 운용을 할 필요가 있다. 교역국 통화가치와의 교환 비율인 환율은 적정 수준에서 상하로 50원대 범위에서 움직이는 것은 정상적인 흐름이기 때문이다. 그 범위 대에서 이탈된 것은 ‘위험 지대(오버 혹은 언더 슈팅)’로 곧 돌아오고 환율 예측도 적정 수준 밑으로 떨어지면 올라가고 높으면 떨어진다고 보면 무난하다.

경제성장률, 경상수지 흑자 규모 등과 같은 우리 펀더멘털이 개선되면 그만 적정 수준을 낮춰서 보면 된다. 특히 올 5월 이후에는 환율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환위험 관리를 잘하는 것이 외화 운용의 관건이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