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쓰리세븐’ 방어전략

어마어마한 재산과 기업의 경영권 승계를 물려받게 될 ‘상속 후계자’라면 흔히들 ‘대박’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TV 드라마나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의 ‘후계자’들은 사정이 조금 다를 수도 있다. 부모가 평생을 키워 온 기업의 지분을 상속받았지만 어마어마한 규모의 상속세로 인해 오히려 ‘쪽박’을 맞는 경우가 종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 쓰리세븐이 상속 문제로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잃었으며, 2014년 농우바이오 또한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상속의 기술] 상속세 폭탄 어떻게 피할까
1975년 설립 이래 30여 년간 손톱깎이 하나로 세계 시장을 제패한 쓰리세븐. 탄탄한 중견기업이었던 이곳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2008년 창업주인 김형규 회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부터였다. 기업의 후계자는 김 회장이 갖고 있었던 경영권 지분을 상속으로 이어받아 최대 주주가 됐지만, 하루아침에 150억 원의 상속세를 마련해야만 했다. 결국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지분 매각에 나섰고, 회사의 경영권마저 잃게 됐다.

반면 정반대의 사례도 있다. 올해로 109년째 간장과 된장을 만드는 몽고식품. 2대 김만식 회장은 일찌감치 장남인 김현승 대표를 후계자로 선정하고 회사 지분 이전 계획을 세웠다. 한번에 지분을 증여받을 경우 상속세 부담을 고려해 치밀하고 단계적인 전략에 따라 지분 이전을 거쳤고, 1999년 3대인 김승현 대표는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2013년 중기중앙회에서 발간한 ‘가업승계 우수 성공사례집’에 수록된 내용이다.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오랫동안 시장에서 인정받아 온 쓰리세븐과 몽고식품. 그러나 이 두 기업의 이토록 다른 ‘결과’는 준비된 가업승계 전략이 왜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쓰리세븐 상속세 감당 못해 매각
기업의 가업승계는 비단 오너 일가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탄탄한 중소기업 하나가 흔들리게 되면 직원들의 삶까지 같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기술 노하우를 유지하고 기업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최근에는 정부에서 역시 상속세 공제 폭을 넓히는 등 상속세 완화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2의 쓰리세븐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대표적인 사례가 농우바이오다. 국내 종자 업체 1위인 농우바이오는 지난해 8월 최대 주주였던 고희선 전 새누리당 의원이 별세하며 31세의 젊은 후계자인 아들 고준희 팀장에게 회사 지분이 넘어갔다. 고인이 보유한 농우바이오 지분 45.4%의 시장 가치는 1500억 원가량. 그런데 이 지분을 물려받으면서 고 팀장이 내야 할 상속세가 1000억 원을 넘어선다. 고 회장의 유족들은 결국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농우바이오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다.

문용철 KB국민은행 중소기업영업부 팀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가업승계는 법제상으로 주식을 상속받는 것”이라며 “따라서 원만한 가업승계를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상속세 폭탄’을 피하는 것이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가업의 승계 방법에는 사전 승계와 사후 승계 두 가지가 있다. 이 중 사전 승계의 대상은 법인의 주식이어야 하므로 개인사업자는 이에 해당하지 않고 법인사업자만 가능하다. 그러나 사후 승계의 경우는 법인뿐 아니라 개인기업도 해당된다.

승계할 때의 상속세는 주식의 가치를 얼마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상증세법상 재산 평가는 상속·증여 당시의 시가를 원칙으로 한다. 만약 비상장 법인이라면 셈법이 조금 복잡하다. 회사의 수익 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순손익 가치와 증여 시점을 기준으로 회사를 청산할 때 받을 수 있는 순자산 가치를 6대4로 가중 평균해 주당 가치를 구한다. 따라서 경기 변동에 따라 회사의 수익 규모가 줄어든 시기 등을 고려해 지분을 증여한다면 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상속세 공제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행법에 따르면 가업 상속의 경우 상속 재산가액의 70%까지 공제된다. 절세 효과만 놓고 보자면 증여보다는 상속이 유리한 측면이 있는 셈이다. 다만 이 경우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는 것이 문제다. 대통령령으로 정한 중소기업으로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속해서 사업을 경영해야 하는데, 피상속인은 사업 영위 기간 중 60% 이상 또는 상속 개시일로부터 소급해 10년 중 8년 이상 대표이사로 재직해야 한다. 상속인은 상속 시점을 기준으로 18세 이상이고 2년 전부터 직접 가업에 종사해야 한다. 또 상속인 1명이 해당 가업의 전부를 상속받아 상속세 신고기한까지 임원으로 취임하고 신고기한 후 2년 내에 대표이사로 취임해야 한다.


가업승계 포기 컨설팅 성행
문제는 이처럼 까다로운 공제 요건이 오히려 가업승계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권형민 세무법인비전 성동지점 대표 세무사는 “실제로 가업의 업종이 사양산업일 경우 상속세 공제를 위해서는 10년 동안 손해를 보면서 계속 사업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있다”며 “이 경우에는 상속인의 선택권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설명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A씨의 아버지는 지방에서 작은 중견기업을 운영 중이지만 A씨가 가업을 물려받을 생각은 없다. 이미 아버지의 기업은 사양산업 취급을 받으며 날이 갈수록 주가 역시 곤두박질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가업승계나 상속세에 대한 준비가 미처 되지 못 했던 탓에 어마어마한 상속세 부담을 떠안게 됐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가업승계 상속세 공제를 받아야 한다. 이 경우 A씨는 꼼짝없이 앞으로 10년간 회사의 실질적인 운영을 맡아야만 한다. 10년 안에 업종을 바꿔서도 안 되고 폐업을 해서도 안 된다. 만약 이 같은 요건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공제받은 금액은 100% 추징하도록 돼 있다. 그러니 이 같은 경우에는 가업승계를 준비하기보다는 피상속인의 사망 전에 기업 철수를 준비해 두는 것이 훨씬 유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로펌이나 회계법인 등에서 이른바 ‘가업승계 포기 컨설팅’이 성행 중이다. 후계자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대신 외부에 매각 또는 청산하거나 세금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재산 분할 방안을 컨설팅해 주는 것이다. 김현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자산관리팀 등에서 가업승계를 포기한 중소·중견기업 자문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들 중에서도 상속세 문제로 법무법인을 찾았다가 오히려 구체적인 설명을 들은 후 가업승계 포기를 결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상당수의 CEO가 결국 가업 포기를 결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의외로 ‘자녀들 간의 우애’다. 법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상속인이 법정상속분 중 일정 비율의 재산을 확보할 수 있는 지위를 뜻하는 유류분과 관련이 깊다. 피상속인의 사망 뒤 상속 금액이 남아 있는 자녀들에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유류분 등을 둘러싸고 경영권 지분 싸움이 일어날 경우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형제간에 경영권 다툼을 벌이다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에게 기업의 경영권을 빼앗긴 사례가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1996년 창업주인 윤익성 회장의 별세 이후 오랫동안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에 시달렸던 레이크사이드컨트리클럽(CC)이 대표적이다. 치열한 지분 다툼 끝에 결국 장남이 자신의 지분을 다른 이에게 매각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는데, 문제는 이 지분이 사모펀드의 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우리투자증권의 제2호 사모펀드인 마르스2호는 장남에 이어 다른 형제들의 지분 매각에도 차례로 나섰다. 결국 윤 회장 일가는 레이크사이드CC의 경영권을 완전히 잃고 가업승계에도 실패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만 해도 레이크사이드CC는 탁월한 입지 조건으로 상종가를 치던 기업이었는데 형제간의 다툼으로 한순간에 다 잃었다”며 “가업승계에 있어서도 유류분을 꼭 계산에 넣어 전략을 짜고, 특히 형제간의 우애가 얼마나 돈독한지 또한 중요하게 살펴봐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정흔 기자 ver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