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무한추적팀은 어떤 곳?

국세청이 2012년 숨긴재산무한추적팀을 신설한 뒤 자산가들의 상속 또는 증여받은 재산에 대한 추적, 탈세 혐의 포착 등의 업무를 강화하고 있다. 인원이 대폭 보강된 데다 은닉재산추적프로그램, 차명계좌관리시스템, 금융정보분석원(FIU)의 혐의거래보고, 고액현금거래보고 등의 자료도 활용하고 있어 더욱 정교하게 상습 체납자, 고액자산가 등을 압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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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세청은 소문난 땅 부자인 K씨가 사망하고 재산이 처와 자녀 등에게 상속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K씨는 한국인이었지만 처와 자녀는 모두 외국인인 데다 재산을 상속받고 상속세를 신고도 하지 않은 채 해외에 거주 중이어서 국세청은 상속 사실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녀들 간 소송이 전개되면서 뜻밖의 사실 관계를 포착하게 된 것이다. 국세청은 소송 자료를 통해 명의 신탁된 재산을 확인하고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소송 관계를 활용해 K씨의 또 다른 친척 중 법률 대리인을 찾아 외국에 사는 처 등 가족의 소재지를 파악했다. 즉시 해외 출장을 간 국세청 징세과 직원은 이들이 상속받은 재산을 매각한 금액으로 해외 부동산 등을 매입한 사실을 확인하고 133억 원어치의 재산을 압류했다.

그동안 은닉된 재산을 찾는 업무는 국세청 본청 징세과뿐 아니라 각 지방청과 세무서의 징세과 등이 모두 하고 있었지만, 2012년 2월 숨긴재산무한추적팀이 신설된 이후에는 이 팀이 업무를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 숨긴재산무한추적팀을 만든 인물이 공교롭게도 김덕중 국세청장이다. 김 청장은 2011년 6월 말 징세법무국장에 임명되자마자 은닉 재산을 추적하기 위한 전담팀을 만드는 것을 구상했다.

당시 국세청은 전국 각지의 지방청에서 17개 반 192명으로 숨긴재산무한추적팀을 결성했다. 서울지방국세청, 중부지방국세청, 부산지방국세청 등 지방 1급 지청에서는 별도 태스크포스(TF)팀으로 운영하되 기타 지방청에서는 징세과 내에 인력을 보강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들어 지하경제 양성화 및 세원 발굴이 이슈가 되면서 숨긴재산무한추적팀은 300명으로 인원이 크게 늘었다.

국세청의 숨긴 재산 추적 시스템 중 가장 대표적인 게 은닉재산추적프로그램과 차명계좌관리시스템이다. 은닉재산추적프로그램이란 체납자나 탈세가 의심되는 사람들의 가족, 직원 등의 소득 변동, 소비지출, 부동산 권리관계 자료 등을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해 놓은 것이다. 데이터의 비교 분석을 통해 체납자의 재산 은닉 혐의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분석하는 프로그램이다.

차명계좌관리프로그램은 한 번 차명계좌를 만든 것으로 국세청의 정보망에 포착된 이들의 신상 정보와 계좌 정보를 관리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차명계좌 증여 추정’ 규정은 국세청이 차명계좌를 찾아내 DB화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차명계좌 샅샅이 뒤진다
서울 도곡동에 사는 20억 원대 자산가 이 모(60) 씨는 최근 강남세무서에서 연락을 받았다. 2년 전 두 아들 명의의 예금통장에 5000만 원씩 넣어 놓은 게 화근이었다. 세무서 재산세과 담당자는 “대학생들이 이렇게 큰돈을 벌었을 가능성이 없는 만큼 증여로 추정된다”며 “차명계좌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증여세를 납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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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상속·증여세법 제45조가 개정되면서 지난해부터 ‘차명계좌 증여 추정’ 시기와 방식이 변경됐다. 기존 세법은 증여 발생 시점을 ‘차명 자산 명의자가 자금을 인출해 사용한 경우’로 한정했지만, 개정 세법은 ‘차명 자산을 보유하는 시점’에 증여가 발생한 것으로 간주한다. 2012년까지는 배우자나 자녀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도 이 자금을 인출하지 않는 한 증여로 추정하지 않았지만 지난해부터는 차명계좌에 돈을 넣는 순간 증여로 본다는 얘기다.

증여세를 납부하지 않으려면 이 계좌가 본인의 차명계좌임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앞서 예를 든 이 씨의 경우 세무서를 찾아가 증여 의도가 없었다고 설명한 뒤 거래 은행에서 자녀 명의의 통장을 만들 때 썼던 서류 등을 받아 제출했다.

문제는 차명계좌로 한 번 기록이 남으면 평생 국세청의 ‘차명재산관리시스템’에 등록돼 추적을 받는다는 점이다. 국세청은 차명계좌가 소득 탈루의 온상이라고 판단, 2009년 말부터 세무조사를 통해 이 시스템을 만들었다. 2011년 6월까지 이 시스템에 등록된 차명 재산은 4조7344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 정도는 빙산의 일각이다. 개인을 상대로 한 국세청의 세무조사 비율이 0.1%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해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40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낮아지면서 국세청이 부자들의 재산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길이 더 넓어졌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는 종전 5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국세청이 이들의 차명계좌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경우 증여세 추징이 크게 늘어날 수도 있다.


FIU 정보 공유로 날개 달아
재벌가 3세인 L씨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모기업의 자회사 두 군데에서 대표이사를 맡고 회사를 직접 경영하고 있다. 지난 2월 초 서울지방국세청의 세무조사 통보를 받았을 때만 해도 그는 서울청의 목적이 회사 세무조사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로 들이닥친 조사국 세무 공무원들의 손에는 생각지도 못한 자료가 있었다. L씨가 그동안 상속과 관련된 자금을 분산해 이동한 내역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나름대로 신중을 기하기 위해 현금으로 나눠 전했던 내역까지 모두 국세청이 파악하고 있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지난해 11월까지는 국세청은 2000만 원 이상 고액 현금 거래와 관련된 정보나 탈세가 의심되는 거래 정보를 FIU가 미리 걸러서 주는 경우에만 국한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법 개정으로 지난해 11월 14일부터 국세청이 세무조사, 체납 정리 등을 목적으로 자료를 요청하면 받을 수 있게 됐다. 국세청은 세무조사나 체납 추징을 위해 일하는 곳이니 언제든 원하는 자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세청은 이미 지난해 말 이후 최근까지 FIU로부터 90만 건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고액 현금 거래 정보를 받아서 자체 분석하고 있다. FIU 관련법이 개정되기 전에 국세청이 받아 보던 정보는 매년 2만~5만 건에 불과했다. 단 몇 개월 만에 1년간 받았던 정보보다 최소 20배에 가까운 엄청난 현금 거래 정보를 확보하게 됐다는 것이다. 국세청 고위 관계자는 “재산을 숨기더라도 결국 최종적으로는 이를 현금화해야 하는데 그러면 이에 대한 흔적이 남게 된다”며 “FIU로부터 직접 요청해 정보를 받을 수 있게 되면서 훨씬 광범위한 조사가 가능해졌다”고 강조했다.


임원기 한국경제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