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청소기·애완동물의 힐링 효과

4가구당 1가구꼴로 1인 가족이 넘치는 세상이다. 홀로 사는 것이 몸 건강은 물론 마음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많지만, 문제는 마음을 나눌 따뜻한 대상이 있느냐다. 애완동물이 반려동물로 ‘승격’된 것도 애완동물이 주는 위로 기능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를 괴롭히는 대부분의 스트레스도, 우리를 위로해 줄 솔루션도 타인과의 관계에 있는 법. 따뜻한 관계 맺기가 건강을 위한 최고의 보약이다.
[HEALING MESSAGE] 싱글족 전성시대, 외로움에 대처하는 방법
한 아내 분의 사연이다. “남편이 기러기 생활 중일 때 외로울 것 같아 애완견을 사 주자 처음에는 왜 쓸데없는 데 돈 쓰냐고 하더니, 지금은 기러기 생활을 청산했는데도 저보다 애완견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심지어는 로봇 청소기와도 대화를 나눠요.”

로봇 청소기나 인형 등 비인격체를 인격화해 대화를 나누는 것은 혼자 외로이 사는 싱글족에게서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2012년 통계를 보면 싱글족, 즉 혼자 사는 1인 가족이 전체 가구의 25%로 4가구당 1가구꼴이니 혼자 사는 분들의 외로움이 세상에 가득하다.

홀로 사는 것은 마음 건강과 몸 건강에 모두 좋지 않은 것으로 연구돼 있다. 그렇다면 혼자 살면 다 병들고 일찍 죽는단 말이냐 발끈하는 싱글족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건 ‘싱글족이냐 아니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뜻한 마음을 나눌 대상이 충분히 있느냐다. 혼자 살더라도 위로해 줄 타인과의 따뜻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갈등으로 소원한 가족관계 안에 있는 것보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사람의 뇌는 힐링을 위한 대상이 필요하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사람에겐 정을 나눌 대상이 필요한 법. 그런데 애완동물이 때론 사람보다 더 외로운 마음에 따뜻함을 주기도 한다. 반려동물은 애완동물의 격을 높여 소중하게 부르는 말이다. 애완동물을 반려동물로 승격시킨 한 해외 동물심리학회의 선언문을 보면 ‘인간이 인간의 순수함을 잘 전달하지 못해 그것을 대신 전달하는 애완동물을 반려동물로 승격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지 못해 그 기능을 애완동물이 대신한다는 이야기인데, 애완동물이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경쟁에 지쳐 서로를 멀리하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고독이 느껴져 슬프다.

프랑스 작가 로맹가리의 ‘그로칼랭’이라는 소설에는 2m20cm의 비단뱀이 파리에 사는 37세의 고독한 독신남의 애완동물로 나온다. 그 남자는 회사에 좋아하는 여인과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기 원하는 환상 속에 살지만 실제 그를 위로하는 것은 그로칼랭이라는 이름의 비단뱀뿐이다. 그로칼랭의 뜻이 ‘열렬한 포옹’인데, 주인공은 그 비단뱀이 자기를 감고서 꼭 포옹해 줄 때 밀려오는 행복감을 느낀다. 비단뱀의 포옹이라,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털을 어루만질 때 물끄러미 자신을 쳐다보는 애완견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배우자보다 내 삶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해 주는 것 같다고 말하는 분들을 진료실에서 종종 만나게 된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공감받을 때 지친 마음의 에너지가 충전된다. 공감은 인간처럼 고위 인지 기능이 감성 기능과 결합해야 일어날 수 있는 상호작용이다. 대부분 애완견이 주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은 주인공의 인생을 진짜로 공감하는 행위라기보다는 배가 고프니 밥 달라는 식의 본능의 호소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애완견의 힐링 효과는 분명하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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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연민(憐憫) 시스템이라 불리는 항스트레스 시스템의 활성화에 있다. 애완견의 따뜻한 털과 나를 쳐다보는 포근한 눈빛이 내 뇌 안의 연민과 공감의 감성 기억을 자극하고 마치 내가 엄마 뱃속에서 포근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것이 나를 이완시키고 몸과 마음을 회복시킨다. 사람은 혼자서 힐링할 수 없다.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 대상이 주는 포근한 자극이 나의 감성 기억을 자극할 때 ‘힘든 인생이지만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 힘내’ 하며 연민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한 애완동물 관련 연구를 보면 심장질환을 가진 사람이 애완견을 키우면 심장 발작이 줄고 더 오래 산다는 결과도 있다. 애완견이 마음을 위로하고 과도한 스트레스 반응도 줄어들게 해 심장마저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사람의 힐링이 어려운 이유는 혼자서 힐링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커다란 거울을 사서 집에다 두고 ‘너는 멋진 사람이야’라고 하루에 수백 번씩 한 달을 외쳐도 지친 마음에 감성 에너지가 잘 충전되지 않는다. 사람의 뇌는 힐링을 위해 대상이 필요하도록 디자인돼 있다. 상대방 모습에 비추어진 내 모습이 근사할 때 내 마음에 따뜻한 감성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대부분의 스트레스도 타인과의 관계지만, 우리를 위로해 줄 솔루션도 타인과의 관계다.

최근 10년간 영성과 건강 간 연관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의학 영역에서 연구를 할 때 영성은 초월적인 존재와의 커넥션, 즉 신과의 강한 관계, 만남으로 정의된다. 과거엔 영성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의료계에 존재했는데,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건강한 영성은 마음을 건강케 한다고 말하고 있다. 건강한 영성은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능력, 행복감, 긍정성을 향상시키고, 우울증이 걸리더라도 우울증 증상을 가볍게, 치료 경과를 짧게 하는 것으로 연구돼 있다.

초월적인 존재와의 관계, 영성이 어떤 심리적 요인을 강화시켜 사람의 마음을 건강케 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마음 관리 전략을 세우는 의미가 있겠는데, 우선 나를 아끼는 절대자의 존재를 믿기에 삶에 대한 긍정성을 강화시키고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능력을 강화시켜 준다.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는 타인에 대한 사랑, 연민, 그리고 이타적 행동을 강조한다. 그리고 함께 만나 공감하는 것을 강하게 권유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함께 하는,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과의 촉촉한 만남은 서로의 마음을 상당히 위로하고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사회적 방어막 역할을 한다. 결국 의학적 측면에서 보면 건강한 영성은 강력한 관계라 볼 수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고 관계를 망가지게 하는 영성은 건강한 영성이 아닌 셈이다.

애완견과 영성 연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타인과 따뜻함이 오고 가는 관계를 맺을 때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도록 설계돼 있다. 또한 따뜻한 관계 맺기는 건강한 마음을 넘어 건강한 육체를 가져오는 것으로 연구돼 있다. 따뜻한 관계가 건강의 최고 보약이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