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의 ‘건축 기행 그리고 인생’(3)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 Berlin)
‘유대인에게 저지른 범죄 행위를 잊지 말자.’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유대인 박물관은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치고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독일인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참회의 공간이다. 폴란드 태생 유대인이자 낙천주의 건축가로 알려진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영혼을 불어넣은 설계로도 유명하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2011년 초 아내와 동행한 독일 여행에서 마주한 가장 가슴 뜨거웠던 건축물이었다.
기억의 공간 바닥에 있는 메나셰 카디시만의 작품 ‘낙엽’.
기억의 공간 바닥에 있는 메나셰 카디시만의 작품 ‘낙엽’.
독일이 동과 서로 나뉘어졌던 시절 베를린 장벽이 위치했던 근처에 지그재그 형태의 파격적인 박물관이 지어졌다.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스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즉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슬픔을 치유하는 의미로 지은 건물이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과거 프로이센의 법원으로 사용되던 바로크 양식의 박물관 건물을 확장한 것으로 4세기부터 현재까지 베를린 내 유대인들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베를린시 정부는 나치스에 의해 1938년 폐쇄된 유대인 박물관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문을 열게 되면서 건물을 새로 지을 것을 논의했다. 1989년 베를린시 정부는 디자인 공모전을 통해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디자인을 채택했고, 이후 12년이라는 오랜 건축 과정을 거쳐 2001년 9월 11일 새 유대인 박물관을 정식으로 개관했다.

이 역사적인 개관의 이면에는 시련도 적지 않았다. 정치적인 이유와 건축가가 독일인이 아니라 폴란드계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리베스킨트는 엄청난 장애물과 마주해야 했다. 훼방꾼들이 이 프로젝트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쏟아내면서 베를린시 상원은 새 박물관 건설을 취소하는 의결을 해버렸다. 이때 그의 부인이 용감하게 이들과 맞섰다. 실의에 빠진 남편을 대신해 전 세계 유대인 출신 유력인사들에게 편지를 보내 이번 일의 부당함에 대해 알렸다. 그리고 유대인 박물관이 반드시 지어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유력 언론을 통해 역설했다. 결국 1991년, 3개월 만에 베를린 의회는 상원 의결을 뒤집고 새 박물관 건설을 다시 의결했다.

1999년 우여곡절 끝에 유대인 박물관이 유물도 없이 1차 개관을 하던 날,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기념 행사장을 찾았다. 이 자리에는 과거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될 뻔했던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부친도 와 있었다. 공교롭게도 슈뢰더 총리의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으로 참전했다. 슈뢰더 총리는 90세였던 다니엘의 부친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와 사과의 뜻을 전했다. 유대인 희생자를 기리고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 과오를 반성하는 동시에 통일 독일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 이후 2001년 정식 개장 때 많은 독일 언론들은 박물관 개장을 대서특필하면서 ‘그날 저녁, 베를린이 성숙해졌다’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리베스킨트는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으로 일약 세계적인 건축가로 떠올랐으며, 2003년에는 9·11테러로 붕괴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재건축 국제현상공모에 당선돼 마스터 아키텍트로 활약했다.

그의 닉네임은 낙천주의 건축가다. 비극에서 긍정의 요소를 발견해 건축물로 재생산해 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폴란드 공산정권 아래서 차별 대우를 견뎌야 했고, 홀로코스트에 인권을 유린당하는 부모를 보며 자란 그가 유년기 악몽을 건축이라는 예술로 승화시켜 세계인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있는 것이다. ‘건물은 콘크리트와 철, 유리로 지어지나 실제로는 사람들의 가슴과 영혼으로 지어진다’는 건축가의 신념에 코끝이 시큰해지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닐 터다.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의 역사가 숨 쉬는 공간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그 외관부터가 범상치 않다. 공중에서 바라보는 박물관은 예리한 각이 지그재그 라인으로 아홉 번 구부러진다. 이는 유대인의 상징인 ‘다윗의 별(magen David)’을 형상화한 것이다. 아연도금의 금속성 외벽 패널 파사드는 비정형의 찢어진 듯한 긴 창문이 여기저기 보이는데 이는 마치 유대인의 학살을 상징하듯 칼로 난도질 한 것처럼 보인다.

특이하게도 이 건물은 정문이 없다. 유대인 박물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바로크 양식의 화사한 옛 박물관 건물로 들어간 뒤 지하에 나 있는 통로를 지나야 한다. 건축가는 “출입구를 지하에 숨겼다”고 말하는데, 이는 두 개의 건물로 대변되는 두 가지 역사를 연결하는 고리가 비록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결코 풀 수 없는 매듭으로 묶여 있으며, 베를린의 기저에 영원토록 의미한다는 것을 뜻한다. 지하층의 복도는 3개의 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20세기 독일로부터 추방된 유대인들에 이민의 경로를 상징하는 `망명의 정원`으로 연결된다. 정원에는 같은 높이에 동일한 간격의 49개 콘크리트 기둥이 서 있고 기둥 위에는 올리브 나무가 자라고 있다. 사람들은 기둥들 사이와 주변을 걸을 때마다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평탄치 않아 혼란을 느낀다. 이 기둥들은 유대인 화장터의 묘비석을 연상시키는데, 박물관의 금속 외벽과 절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주축 외 또 한 축은 유대인 희생의 상징인 홀로코스트 타워로 연결된다. 홀로코스트 타워는 높은 콘크리트 벽체로 사방이 막혀 있으며 유일하게 꼭대기의 작은 틈으로 빛이 관통된다.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빛은 너무 가냘퍼서 방문자 자신의 발도 안 보일 정도다.

박물관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기억의 공간`이다. `기억의 공간` 바닥에는 이스라엘의 현대미술가인 메나셰 카디시만(Menashe Kadishman)의 낙엽(Fallen Leaves)이란 작품이 있다.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1만여 개의 얼굴 형상들이 불규칙하게 깔려 있다. 작품 위를 자유롭게 걸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희생된 영혼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발걸음 떼기가 쉽지 않다.
[A STORY OF ARCHITECTURE] 잘못된 과거를 참회해야 하는 이유
건축가는 이처럼 다양한 공간을 통해 전 세계 많은 방문객들이 전시품에 관계없이 건물만으로도 유대인의 역사적 비극을 직접 체험토록 하고 있다. 과거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숨기거나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미래로 한 걸음 발을 내딛는 독일의 모습을 보면서 한·일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침략적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여전히 극우주의적인 사관을 가진 또 다른 전범국가 일본은 동남아시아 전체 공존공영의 길을 헤치고 있지 않는가. 이처럼 옹졸한 시각을 가진 지도층이 국가의 흥망성쇠를 잘 꾸려 나갈지는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아픈 상처를 하나씩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이 무엇이든, 잘못된 과거라면 너무 늦지 않게 화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령 바뀔 수 없는 역사라 할지라도 반성과 사과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미래 지향적인 삶이기도 하다. 일본이 과거의 침략적 역사를 사과하며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박물관을 건립하는 또 하나의 ‘참회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정리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김종훈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