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을 열광케 하는 그들만의 콘텐츠_첫 번째

‘화성남과 금성녀’만큼이나 남녀가 선호하는 콘텐츠는 극명하게 갈린다. 이 시대 남성들은 어떤 이야기에 열광하고 있을까.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남자들의 세계마저 보여 주는, 요즘 남자들이 꽂힌 콘텐츠를 연재한다.
[MEN`S CONTENTS] 욕망이 만든 블랙홀,‘하우스 오브 카드’
한국 TV 드라마는 시청률로 성패가 판가름 나는 것에 반해 미국 드라마(일명 미드)의 인기는 검색창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제목의 첫 글자만 쳐 봐도 단박에 검색 빈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우스 오브 카드’는? 당연히 ‘하’자로 시작하는 수많은 검색어 중 단연 으뜸의 위치에 있다. 그런데 신기하다. 범인을 쫓는 수사물도, 현란한 볼거리가 있는 SF물도 아닌 정치판 이야기를 다룬 정치 스릴러가 왜 이렇게 인기일까? 나는 그 이유를 등장인물 저마다 서슴없이 드러내는 욕망에서 엿볼 수 있었다.

먼저 주인공 프랭크(케빈 스페이시 분). 다수당의 원내 부총무로 대통령 선거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당선인으로부터 국무장관 자리를 약속받지만 드라마 시작과 동시에 보기 좋게 미역국을 먹는다. 킹메이커를 자처하며 부통령까지도 내심 하찮게 여기던 그가 좌절과 모멸감을 이기지 못해 복수의 칼을 꺼내 듦으로써 스릴러의 재미가 막이 오르는데 이미 명배우 반열에 올라선 케빈 스페이시는 22년 경력의 정치인이 22명을 죽인 연쇄살인마보다 섬뜩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주인공 프랭크를 철저히 소시오패스로 그린다. 이미 영화 ‘세븐’을 통해 섬뜩한 살인마의 전형을 보여 주었던 이들 콤비는 ‘하우스 오브 카드’를 통해 더욱 진화된 광기를 선보이는데 그의 사악함은 시즌 1의 첫 회 그것도 첫 장면에서부터 극명하게 드러난다. 차에 치인 애완견이 도로에 누워 숨을 헐떡이자 주저하지 않고 개의 숨통을 끊어 버리는 프랭크. 그때, 그가 읊조리는 대사는 명복을 비는 기도가 아닌 ‘고통은 인간을 강인하게 만든다’는 자기 신념이었다. 어린 아이와 강아지는 어떠한 경우에도 희생시키지 않는 할리우드의 불문율에 비추어 보면 프랭크는 살아 있는 악마나 다름이 없다.


‘손자병법’보다 나은 처세술의 바이블?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모두 ‘프랭크’스럽다는 점이다. 으레 악(惡)이 있으면 선(善)이 있기 마련이지만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는 ‘천사표’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프랭크의 아내 클레어(로빈 라이트 분) 역시 속물적인 근성을 우아한 가식으로 위장한 채 남편 못지않은 야망을 드러내고, 출세를 위해 프랭크와 잠자리도 마다 않는 여기자 조이(케이트 마라 분)도 저널리스트로서의 명예마저 속옷과 함께 벗어던진다. 이 드라마는 한마디로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욕망 대 욕망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모양새가 무척이나 세련됐고 남다르다. 프랭크는 흉기로써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대신 권력으로써 상대의 정치적 생명을 잔인하게 끊어 버리고, 아내 클레어는 외도 상대에게조차 내주지 않던 입술을 오직 사교파티의 와인잔 앞에서만 허락한다. 탐닉하는 원초적 모습과 절제하는 이성적 모습이 공존하는 것이 뭐랄까, 막장의 재미를 기품 있게 표현했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치졸하게 욕망을 숨기지 않아서 이 드라마는 멋지다. 가면 속에 본심을 숨긴 채 느닷없이 등에 칼을 꽂는 반전의 재미보다 ‘세 치 혀’로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고는 “내게 이런 힘이 있으니 따를 텐가 말 텐가” 대놓고 묻는 식이다. 철저히 갑과 을의 논리로 상대를 서슬 퍼런 선택의 칼날 위에 세움으로써 인간의 비열함을 그려 나간다. 프랭크뿐만 아니라 아내 클레어, 여기자 조이, 심지어 프랭크의 꼭두각시인 초선의원 피터까지 서로를 회유하고 이용하며 칼자루를 쥐기 위한 머리싸움을 펼친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가끔 자문하게 된다. ‘나 역시 저들처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미친 듯이 싸우고 모든 것을 걸어 본 적이 있는가?’ 하고 말이다. 무릇 남자라면 욕망에 대한 야수성을 잃지 않아야 함에도 자기변명과 귀차니즘으로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지인 중 누구는 이 드라마를 통해 성공의 이유를 깨달았다고도 하고 누구는 처세술의 바이블인 ‘손자병법’보다도 낫다고 하더라. 그래, 어쩌면 ‘하얀 거탑’ 이후 오랜만에 맛보는 남자 드라마일 수도 있겠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이 드라마가 그려 내는 욕망의 소용돌이가 가히 블랙홀 수준인 탓에 그 흡입력이 장난이 아니란 사실. 기존의 TV 시리즈처럼 매주 순차적으로 방영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전회를 한꺼번에 시청할 수 있으니 밤샘을 동반한 정주행의 고통은 필히 따른다는 걸 명심하시길.


김상명 시나리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