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재벌가의 상속 다툼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삼성가의 상속 다툼은 2년여의 지루한 공방 끝에 얼마 전 결론을 맺었다. 최근에는 원로배우 고(故) 황정순 씨의 80여억 원 부동산 상속 재산을 두고 법정 상속인들끼리 치열한 진흙탕 싸움을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건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전쟁의 시작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가족 간에도 거침없이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결국 남보다 못한 원수가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살아생전 치밀하고 전략적인 상속 플랜이 필요한 이유다.
[상속의 기술] 가족 분쟁 사전에 예방하려면…황정순·삼성가 상속 분쟁서 배운다
“지금까지 나를 희생해 너희들을 뒷바라지한 걸로도 충분하니 내 재산을 한 푼도 상속할 수 없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며 안타까움을 사고 있는 원로배우 고 황정순 씨의 상속 분쟁. 이 사건의 불씨는 바로 이 한 마디였다. 자신의 노후를 제대로 보살펴 주지 못한 자녀들에 대한 섭섭함을 유언장을 빌어 드러낸 셈이다. 황 씨의 법정 상속인은 모두 세 명으로 의붓손자와 조카손녀, 그리고 조카손녀 동생이다. 이 중 황 씨가 유언을 통해 섭섭함을 토로한 이는 전남편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의붓아들 측이다. “용돈 한 번 준 적도 없고 고작 1년에 두세 번 식사 대접한 게 전부이고 나를 돌보지 않았다”는 것이 조카손녀 측에서 공개한 황 씨의 친필 유언 내용이다. 그러나 이 씨는 “황 씨가 치매를 앓고 있었기 때문에 유언장을 신뢰할 수 없다”며 강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상속·증여 ‘밀당의 기술’ 필요
황 씨의 상속 분쟁에서 드러나듯 ‘자녀들이 부모의 노후 생활을 얼마나 잘 보살피느냐’는 상속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한지예 신한PWM 분당중앙센터 지점장 겸 프라이빗뱅커(PB)는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자산가들의 경우 상속 금액이 많을수록 세금 문제로 인해 사전증여를 고려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라며 “하지만 이 경우에도 자녀들에게 재산을 사전증여하고 난 이후 평안한 노후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 때문에 갈등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중견기업 회장 A(83)씨와 그의 아내 B(79)씨의 사례도 이와 비슷한 경우다. 미처 상속 플랜을 준비하지 못한 채 사망한 A씨의 상속 금액은 상속세법에 따라 A씨의 아내인 B씨와 자녀들에게 각각 돌아갔다. 그런데 A씨로부터 상속받은 자산이 B씨의 죽음 이후 다시 자녀들에게 상속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 됐다. 이에 B씨는 “결국 자녀들에게 돌아갈 몫”이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상속포기각서를 썼다. 그 대신 장남이 자신의 노후를 부양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조건부로 걸었다. 그러나 이후 장남은 어머니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고, B씨는 현재 장남을 상대로 ‘노후 부양의 책임을 다해달라’며 부양료 소송을 걸어놓은 상태다.

자녀들에게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과 평안한 노후 생활을 보장받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적당한 ‘밀당’이 필요한 이유다. 이 밀당의 관건은 다름 아닌 상속세 폭탄이다. 현행법으로 상속세와 증여세의 세율은 동일하다. 현재 상속세법에 따르면 상속세율 및 증여세율은 상속 금액에 따라 달리 부과된다. 그중 상속 금액이 3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는 ‘10억4000만 원+30억 원 초과 금액×50%’다. 상속 금액의 절반가량을 상속세로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법 규정으로 인해 상속보다 증여가 세율을 줄이는 데 유리하다.

먼저 피상속인이 상속인에게 사전증여를 한 이후 10년이 지난 뒤 사망했다면 사전증여한 재산은 상속 재산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상속세의 과세표준 기준을 낮추는 데 유리할 수 있다. 이 경우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이 증여세는 증여받는 가액을 기준으로 세율을 적용하는 데 반해 상속세는 피상속인이 남긴 상속 재산 전체를 기준으로 계산한다는 것이다. 상속세나 증여세는 누진세이기 때문에 재산가액이 클수록 세금은 커진다. 예를 들어 40억 원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재산 전체를 상속한다면 50%의 상속세를 내야 하지만 이를 네 명의 자녀에게 증여한다면 30%의 증여세만 부담하면 되는 것이다.
[상속의 기술] 가족 분쟁 사전에 예방하려면…황정순·삼성가 상속 분쟁서 배운다
만약 피상속인이 사전증여를 한 후 10년 내 사망했다면 증여 재산은 상속 재산에 포함해 세금을 책정하게 된다. 이후 사전증여에 대해 납부한 증여세를 차감해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경우 증여가액은 상속 시점이 아니라 증여 시점을 기준으로 매겨지게 된다. 쉽게 얘기해 A씨의 사망 당시 10억 원에 달하는 부동산의 가치가 증여 시점에는 5억 원이었다면, 상속세 역시 5억 원으로 계산되는 것이다. 상속·증여 전문 법무법인 한중의 고승우 변호사는 “증여 시점의 재산 가치를 신중하게 검토해 본 뒤 앞으로도 계속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면 사전증여가 유리하지만 재산 가치가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면 유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유언장의 효력, 형식에 달렸다
황 씨의 상속 분쟁에서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유언의 효력’이다. 실제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만 살펴보더라도 황 씨가 유언장을 작성할 당시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할 여지가 충분하다. 의붓아들이나 조카손녀의 질문에 따라 상당히 여러 차례 입장을 번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황 씨가 실제 치매를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될 경우 유언장의 효력은 사라지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경우 민법 제1012조에서 ‘유언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사유 재산에 대한 처분의 자유를 존중하고 유언자의 의사를 실현하기 위한 행위로서 유언자가 유언을 한 이후에는 사망 전까지 언제든지 그 내용을 변경하거나 철회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때 유언을 남기는 데 흔히들 사용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황 씨처럼 자필로 작성하거나, 최근에는 스마트폰 등을 통해 녹음으로 남길 수도 있다. 상속액의 규모가 상당한 자산가들의 경우 변호사 등을 통해 보다 확실하게 유언의 효력을 증명할 수 있는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 외에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도 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유언을 남기든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유언의 형식’에 맞지 않으면 그 효력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상속 전문가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에피소드 하나. 오래전 남편의 사망 이후 상당한 부동산 자산을 상속받은 C씨는 슬하에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C씨는 정작 자신의 재산을 아들과 딸에게 공평하게 상속하려는 마음이 크지만, 문제는 사업을 하는 아들이다. C씨의 재산 모두를 자신에게 상속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의 요구에 마지못해 유언장을 작성하게 된 C씨는 꾀를 하나 낸다. 유서의 내용과 연월일, 주소, 성명, 날인 등이 하나라도 빠지면 유언장이 무효가 된다는 변호사의 설명에 일부러 ‘날짜’를 빠뜨린 채 유언서를 작성한 것이다. 결국 C씨의 재산은 아들과 딸에게 골고루 돌아갔음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법무법인 세종의 김현진 변호사는 “자필증서와 녹음에 의한 유언 등은 변호사와 같은 전문가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혼자서 작성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하지만 하나라도 형식에 어긋나면 안 되기 때문에 이를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씨의 유서 또한 마찬가지다. 형식에 맞춰 자필로 작성한 것이 확인된다면 치매를 앓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피상속인의 의사를 존중해 상속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치매환자라고 하더라도 치매를 앓는 내내 판단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유언서를 작성하는 그 순간 자신의 의사를 자필로 정확히 반영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유언의 경우 의사 능력을 굉장히 폭넓게 인정해 주고 있는 편이다. 단, 자필 유언서를 작성할 당시 황 씨가 도저히 의사 표시를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이 황 씨의 필적을 흉내 내 작성한 것이라면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다만 황 씨의 유언서가 자필인 것으로 인정이 된다 하더라도, 의붓아들이 유언의 내용처럼 상속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상속 유류분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유류분은 증여나 유증을 받지 못한 상속인에게도 공평한 상속 분배를 위해 법정상속분 중 일정 비율을 취득할 수 있도록 법률로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김 변호사는 “유언장을 작성한다 하더라도 유류분을 고려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부동산, 주식 등의 비중이 높아 재산 분할이 쉽지 않을 경우나 가업승계를 통해 특정 상속인에게 자산을 승계시키고자 할 경우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 차명 자산과 해외 자산
재벌가의 재산 싸움, 형제간의 불화, 그리고 차명 자산. 이쯤 되면 흥행 드라마의 코드는 모두 갖춘 셈이다. 황 씨의 상속 분쟁만큼이나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게 삼성가(家) 상속 소송 사건이다. 장장 2년여 만에 이맹희 회장이 “가족관계를 깨고 싶지 않아 상고를 포기하는” 것으로 ‘반전 없는’ 결론을 맺으며 마무리 지었지만 소송이 진행되는 내내 이와 관련한 이슈는 끊이지 않았다. 분쟁에 휩싸인 상속금의 규모가 워낙 어마어마하기도 했지만 다름 아닌 차명 자산의 상속과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다. 사건의 발단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제3자의 명의로 신탁한 재산 7000여억 원. 삼성생명 주식 924만 주와 삼성전자 주식 20주 등을 포함한 금액이다. 이맹희 회장 측은 “아버지 생전에 명의신탁한 재산을 이 회장이 다른 상속인에게 알리지 않고 단독으로 처리했다”며 상속회복청구권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건희 회장 측은 “상속은 적법하게 이뤄졌으며 상속이 이뤄진 지 10년이 넘었다”고 맞섰다.

여기서 핵심 쟁점은 ‘상속회복청구권의 시효’. 이맹희 회장 측은 2011년 6월 차명 재산의 존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8년 삼성특검 수사 발표로 차명 주식의 존재를 알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상속회복청구권에 따르면 상속권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상속권의 침해 사실을 안 지 3년이 지나거나 상속권의 침해 행위가 있는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된다. 이를 근거로 볼 때 이맹희 회장이 차명 자산에 대한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가뿐 아니라 상당수 기업의 CEO들이 상속·증여를 앞두고 명의신탁된 자산으로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허다하다. 권형민 세무법인비전 성동지점 대표 세무사는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의 경우 주주들은 가족의 명의로 하는 것이 추후 주주총회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유리하다”며 “하지만 종종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명의를 신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대부분 과점주주로서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한 사람이 해당 법인의 지분 50%를 초과하는 경우 과점주주가 된다. 그런데 이 경우 회사의 자금 사정 악화로 조세 체납을 하게 된다면 과점주주 역시 법인과 연대해 이를 납부할 의무를 지닌다. 또 배당을 받을 경우 소득세를 회피할 목적도 크다.
[상속의 기술] 가족 분쟁 사전에 예방하려면…황정순·삼성가 상속 분쟁서 배운다
이에 대해 고승우 변호사는 “세법적으로는 증여로 간주해 증여세를 물리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명의신탁을 통해 재산을 상속하는 것은 세금을 피하려다 재산 전체를 잃게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현행 상증세법에 따르면 명의를 빌려준 명의수탁자에게 증여세를 과세하게 된다. 그리고 이 증여세는 자산의 실질 소유자인 명의신탁자와 연대에 납부하도록 돼 있다. 다만 과점주주의 제2차 납세의무, 배당소득의 누진세 회피와 같은 조세회피 목적이 없다면 과세되지 않는다.

문제는 D씨와 같은 경우다. D씨는 처음 법인 설립 당시 제3자에게 주식의 일부를 명의신탁했고, 수년이 흐른 뒤 기업의 주식 가치가 4배가량 상승했다. D씨의 사망 후 아들이 기업의 경영권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명의수탁자로부터 주식을 환원받아야 한다. 이처럼 명의신탁을 통한 차명 자산을 양성화하는 데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명의수탁자로부터 ‘증여’를 받는 방법은 상당한 증여세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녹록지 않다. 해당 주식을 ‘매매’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주식 가치가 많이 상승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역시 쉽지 않다. 자산의 실질 소유주가 상당한 금액의 양도가액을 마련해야 할 뿐 아니라 명의수탁자 역시 양도소득세를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방법이 명의신탁 해지다. 이 경우 명의신탁 해지 시점이 언제인지와 관련한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그 해지의 의사 표시는 확정일자가 있는 증서, 즉 내용증명을 통해 명의수탁자에게 발송하거나 명의신탁 해지에 관한 합의서를 작성하면서 그 합의서에 확정일자를 받아두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차명 자산만큼이나 자산가들이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해 많이 쓰는 방법이 해외 자산이다. 실제로 최근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자녀로 하여금 해외시민권을 취득하게 한 뒤 국내 재산을 해당 국가로 이전시켜 해외 재산을 증여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전문가들은 “명의신탁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방법”이라고 충고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거주자’의 개념이다. 증여세를 면제받을 수 있는 경우는 상속인이 ‘국내 거주자’가 아닌 ‘해외 거주자’일 경우에 한한다. 상속인이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취득한 상태에서 국내에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이 없고, 그 직업 및 자산 상태에 비추어 다시 입국해 주로 국내에 거주하리라고 인정되지 아니하는 때에 비로소 ‘해외 거주자’로 인정받아 과세 의무를 피할 수 있다. 혹은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없더라도 직업상 1년 이상 지속적으로 국외에 거주할 것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도 ‘해외 거주자’로 인정된다.

권형민 세무사는 “실제로 해외 국가의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취득했다 하더라도 해외 거주자로 인정되기는 까다로운 편이다”라며 “특히 상증세법상 상속인이 해외 거주자라 하더라도 피상속인이 국내 거주자인 경우 증여받은 국내외 모든 재산에 대해 증여세를 납부할 의무를 지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증여세를 회피하기란 쉽지 않다”고 못 박았다.


이정흔 기자 ver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