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라는 짐 로저스 퀀텀펀드 회장이 미얀마, 앙골라와 함께 차기 투자 유망처로 북한을 지목했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그의 말에 ‘로저스의 궤변’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의 관심은 로저스가 행간에 숨긴 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MARKET INSIGHT]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가 북한과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
현재 중국 경제는 외연적 성장단계에서 내연적 성장단계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심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그동안 광공업 비중은 42.8%로 매우 높은 수준이며, 수출에서도 2009년 독일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1979년 개혁·개방 추진 이후 중국 경제가 연평균 9.8%씩 고도성장을 하는 동안 제조업은 11.3%씩 신장해 전체적인 성장을 주도했다.

이처럼 높은 비중을 차지하던 제조업 환경이 악화되는 것은 공업화, 도시화 진전으로 농촌의 잉여노동력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루이스 전환점(개발도상국에서 농촌 잉여노동력이 고갈되면 임금이 급등해 성장세가 둔화되는 현상)’에 도달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루이스 전환점에 도달한 중국 제조업
중국도 이런 후유증을 걷어 낼 목적으로 2004년 하반기부터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영해 왔다. 특히 2010년을 전후로 1단계에서는 물가, 2단계에서는 부동산 거품을 잡는 데 주력해 왔다. 하지만 단계별로 대내외 여건이 따르지 않아 실패했다. 1단계에서 의욕적으로 단행했던 금리 인상과 2단계에서 추진했던 통화 긴축이 증시와 부동산 호황으로 중국 내 여신을 잡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금리를 대폭 내리자 중국과의 금리차를 노린 핫머니가 대거 유입됐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거품은 더 심해졌다.
[MARKET INSIGHT]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가 북한과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
[MARKET INSIGHT]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가 북한과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
긴축적인 통화정책의 운용 기간이 길어지면서 중국 경기마저 경착륙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 봉착했다. 중국 경기가 경착륙에 빠진다면 나선형 악순환 국면에 ‘경기 침체’라는 한 고리가 더 추가된다. 이런 상황이 우려되면 중국 내 유입됐던 핫머니 자금이 급속히 이탈해 주가와 위안화 가치가 떨어진다.

최근 위안화 가치 급락을 계기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중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할 것인가를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진단지표를 통해 알아본다. 이 지표는 특정국의 위기 가능성을 단기 채무이행능력을 보는 통화방어능력, 중장기 위기방어능력에 해당하는 해외자금조달능력과 국내저축능력, 자본 유출 가능성을 보는 자본 유입의 건전도, 그리고 경제의 거품 여부를 알 수 있는 자산인플레이션 정도 등 다섯 가지 기준으로 판단한다.

현재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3조8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올해 말에는 4조500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단기적인 통화방어능력은 충분하다. 비록 경상수지 흑자는 줄고 있지만 외국인직접투자(FDI)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중장기적인 위기방어능력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최악의 경우 중국에서 위기가 발생한다면 어떤 형태가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특정국의 위기는 ‘외화유동성 위기 → 금융시스템 위기 → 실물경기 침체’의 수순을 거친다. 과거 경험을 보면 개도국은 외화유동성 위기단계부터, 선진국은 금융시스템 위기단계부터 시작되는 것이 관례다. 외화가 풍족한 중국은 다른 개도국과 달리 미국형 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의문점이 남는다. 미국 위기처럼 글로벌 금융위기로 악화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론적으로 특정국의 위기가 ‘확산형’으로 악화될 것인가 아니면 ‘축소형’으로 수렴될 것인가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레버리지 비율(증거금 대비 총투자금액)이 얼마나 높으냐와 투자분포도가 얼마나 넓으냐 하는 글로벌 정도다.

두 지표가 높을수록 위기 확산형으로 악화되고 디레버리지 대상국에서는 위기 발생국보다 더 큰 ‘나비효과’가 발생한다.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악화된 것은 위기 주범이었던 투자은행(IB)을 중심으로 한 미국 금융사들의 이 두 가지 지표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발 금융위기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2014년 양회 대회를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중국 정부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다각적인 대책을 발표했다. 부동산 거품 방지는 통화정책, 경기 부양은 재정정책, 핫머니 유입 방지는 영구적 불태환 정책(PSI) 등 정책 목표와 수단을 같이 가져가는 ‘틴버겐 정리(Tinbergen’s theorem)’가 눈에 띈다.

중국 경제가 어려워짐에 따라 가장 급한 국가는 북한이다. 이미 북한에 대한 외국인투자와 각종 국제사회 지원 등이 중단돼 경제 고립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남북한 간의 관계 진전이 있을 때마다 간헐적으로 형성됐던 북한 채권 거래도 실종됐고, 가격도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할 수준까지 떨어졌다,

북한 돈인 원화 가치도 폭락하고 있다. 공식적인 북한 원의 환율은 달러당 100원이다. 하지만 암시장에서는 9000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공식적으로 100원에 환전한 1달러를 암시장에 내다 팔 경우 9000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공식 시장 접근이 가능한 북한의 권력층들이 엄청난 환차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요즘 북한의 외환시장이다.

공식적인 환율과의 괴리를 더 벌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암시장에 유입되는 외화(미국 달러화)를 차단해야 한다. 이번 사태 이후 중국을 포함한 대외무역과 외국인 관광, 심지어는 개성공단을 차단하는 것에 대해 국제 금융시장에서 이런 측면에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조만간 북한 원화는 1만 원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북한이 외화 공급을 차단해 나갈 경우 체제 유지를 위한 외화 조달에는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여러 견해가 있으나 북한이 체제 유지를 위한 최소 외화가득액은 1년에 50억 달러는 돼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때문에 암시장에서 누릴 수 있는 환차익만을 겨냥해 외화 공급을 무기한 차단할 수는 없다.


체제 유지 위해 외화 조달에 매달린 북한
북한의 역사는 체제 유지를 위한 외화 조달의 험난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서방에 대해 ‘디폴트(default: 국가채무 불이행)’를 선언한 1970년대 중반 이전에는 자체 신용으로 채권을 발행해 외화를 조달했다. 그 후 거래되는 북한 채권은 1970년대 중반 이전에 발행했거나 상환 불능 처리된 북한 채무를 바탕으로 BNP파리바 등이 발행한 세컨더리 채권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1990년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까지 북한의 외화 조달은 구소련 등 동맹국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이른바 냉전시대에 구소련은 공산주의 체제 결속을 위해 북한에 외화를 지원할 필요가 있었다. 이 시기에 북한도 시베리아 지역 등에 벌목공을 파견하는 등 교류가 왕성하게 이뤄졌다.

냉전시대가 종식된 이후 북한의 외화 조달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궁여지책 속에 고안해 낸 것이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는 길이었다. 이들 기구에 가입할 경우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느냐와 상관없이 인류 공영 차원에서 지원되는 ‘저개발국의 성장 촉진을 위한 외화 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종 국제금융기구에 최대 의결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2000년대 들어서 북한의 외화 조달이 얼마나 어려워졌는가는 외화가득원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슈퍼 노트(100달러 위조지폐 발행), 마약 밀거래 등은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될 정도로 많아졌다. 심지어는 ‘베이징 컨센서스’의 일환으로 해외 자원 확보를 통해 세를 확장하려는 중국의 전략과 맞물려 북한이 부존자원을 매각해 외화를 조달했다.

결국 이런 사태에 따른 최대 피해자는 북한이고, 어느 순간에 남한을 포함해 서방에 유연한 자세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낙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 사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우리 경제에 대한 해외 시각에는 큰 변화가 없고, 이를 토대로 외국인들이 들어오는 것도 종전처럼 ‘하이에나형 환투기’로 볼 수 없다.

세계적인 상품 투자의 귀재인 짐 로저스 퀀텀펀드 회장이 미얀마, 앙골라와 함께 차기 투자 유망처로 북한을 지목했던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 일부에서는 ‘로저스의 궤변’이라 부르기까지 한다. 이 때문에 북한 투자에서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는가’보다 ‘그 숨은 의도가 무엇인가’에 투자자의 관심이 더 쏠리고 있다.
[MARKET INSIGHT]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가 북한과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
드문 일이긴 하지만 이전에도 북한 관련 자산이 투자 대상으로 관심을 끈 적이 있었다. 첫 시기는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북한은 심각한 식량 위기에 몰리면서 조만간 붕괴될 것이라는 소문이 확산됐다. 이 때문에 체제 붕괴에 대한 기대로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10센트를 밑도는 북한 채권 가격이 달러당(액면가) 60센트까지 치솟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당시에도 북한 채권 가격이 액면가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실제 거래도 많았었다. 이때는 남북관계가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면서 북한 채권과 같은 특수채를 거래하는 영국의 금융중개회사인 이그조틱스에 북한 채권을 사두려는 문의가 가장 많았었다.

로저스 회장이 차세대 유망처로 북한을 지목한 직후에는 상품 미개발국이기 때문에 유망하다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해석하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종전의 북한 채권이 관심을 끌었을 때를 감안한다면 김정은 체제가 외화를 비롯한 경제 사정이 어렵고, 조만간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개선이 있지 않을까 쪽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늘고 있다.

전통적인 게임 이론에서 ‘죄수의 딜레마’는 널리 알려져 있다. 다른 참가자들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관점에서 최대 이익이 되는 경우의 수를 선택하면 최악의 게임 결과를 낳는 것이 이 법칙의 골자다. ‘섀플리-로스의 공생적 게임’보다 ‘제로섬의 내시 게임’ 관점에서 그 어느 국가보다 국제 협상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아오는 북한도 이 점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북한은 외화 조달에 있어 궁지에 몰리면서 한국 등 주변국을 상대로 마치 시소게임을 벌이듯 외줄타기 전략을 추진해 왔다. 초기에는 성과가 있는 듯 했지만 갈수록 외국인투자와 각종 국제사회 지원 등이 중단돼 경제 고립화 현상이 심해졌다. 북한 채권 거래도 완전히 실종됐고 가격도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할 수준까지 다시 떨어졌다.

결국 김정은 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남한에 유연한 자세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에서 남한이 주도하고 있다. 로저스가 차기 투자 유망처로 북한을 지목한 것도 김정은 체제 붕괴 등의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