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영 듀오백코리아 대표

“의자는 무엇인가 성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베이스캠프다.

그러므로 단순히 ‘앉는 것’이 아닌 ‘앉아서 무엇을 하느냐’로 의자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가구 업계의 2세 경영자 정관영 듀오백코리아 대표의 철학은 분명했다. 이는 부친인 정해창 회장의 창업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정 대표는 제조업체가 백년 기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가치 세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관영 대표는… 1972년생. 1998년 호주 그리피스대 국제경영학과 졸업. 1999년 듀오백코리아 차장. 2003~2004년 듀오백코리아 부사장. 2004년~ 듀오백코리아 대표이사 사장(현)
정관영 대표는… 1972년생. 1998년 호주 그리피스대 국제경영학과 졸업. 1999년 듀오백코리아 차장. 2003~2004년 듀오백코리아 부사장. 2004년~ 듀오백코리아 대표이사 사장(현)
“학생들은 좋은 대학 가려고, 직장인은 성공하려고, 경영자들은 더 많은 성과를 내려고 의자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의자의 중요성은 망각하죠. 의자는 단순히 앉는 곳, 그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변화를 우리가 주도할 겁니다.”

의자 하나에 이토록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부자(父子)가 또 있을까. 듀오백코리아는 사람들이 앉아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의자를 최대한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정해창 회장이 설립하고 정관영 대표가 키워 온 기업이다. 등받이가 두 개로 갈라져 척추와 허리에 무리를 덜 주는 듀오백 의자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집이나 직장에서 한 번쯤은 앉아 봤을 법한 제품이다.

3월 11일 서울 구로동 듀오백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정 대표의 차림은 신선했다. 베이지 컬러 재킷에 데님, 운동화를 매치하고 세련된 안경으로 포인트를 준 패션에서 자유분방함이 묻어났다. 2004년 정 회장과 공동 대표를 맡았으니, 올해로 듀오백코리아의 대표라는 직함을 단 지 10년. 1999년 대학 졸업 후 이곳에 입사한 지도 어느덧 15년을 향해 달리고 있다. “햇수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변혁에 대한 그의 고민이 외형적으로 어느 정도 표출된 게 아닐까 싶었다.


유년 시절, 공장은 학교이자 놀이터…
“의자는 나의 삶”

듀오백코리아는 처음부터 의자 하나만 보고 시작한 기업이다. 1970년 의자 사업에 뛰어든 이후 평생 외길을 걸어 온 정 회장이 그 중심에 있다. 그는 일본 학생들이 구부러지는 합판 소재 책걸상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딱딱한 나무 책걸상을 쓰는 한국의 열악한 학습 환경을 떠올렸고 곧바로 의자용 합판 생산에 나섰다. 몇 차례 실패를 거쳐 1987년 듀오백코리아의 전신인 해정산업을 설립하고 성형 합판으로 의자 생산을 재개했다. 그리고 1994년 운명처럼 듀오백을 만난다. 듀오백은 독일 함부르크 의과대학에서 두 개의 등받이를 이용해 척추 등 요통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재활치료에 사용할 목적으로 개발된 기술로, 독일의 의자 제조업체 그랄이 이를 의자에 적용해 판매하고 있었다. 한 가구전시회에서 등받이 2개짜리 의자에 매료된 정 회장은 그랄을 설득한 끝에 1995년 한국 내 듀오백 기술 적용권 및 판매권을 획득했다.

이런 부친 밑에서 자란 정 대표는 자연스레 의자와 가까워졌다. 으레 제조업체들이 그러하듯 집 가까이에 공장이 있었고, 그는 공장을 놀이터 삼아 유년기를 보냈다. 정 대표는 “공장 바닥은 내가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아니라 내가 있어야 할 곳이었다”며 “지금도 현장 근로자 분들과 한 공간에서 함께 숨 쉴 때 고향에 온 듯 편안하고 포근하다”고 말했다.

“제조업은 특성상 현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보고 느끼면서 자라 실무에 뛰어들었을 때도 현장을 이해하는 폭이 넓었죠. (아버지께서) 자연스럽게 깨닫도록 해 주신 것 같아요. 그 시간들이 지금 가장 크고 든든한 자산입니다.”

집안에서 누구도 가업을 이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만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바통 터치가 이뤄졌다.

정 대표는 호주 그리피스대에서 국제경영학을 전공한 뒤 1999년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들어왔다. 입사 후 생산, 납품, 영업 등 유통의 최전방에서 두루 경험을 쌓았으며 관리 부문을 사실상 총괄하면서 회사를 체계화시켰다. 코스닥 상장, 듀오백 특허권 취득 등 굵직한 성과도 이뤄 냈다. 입사 당시 40억 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2005년 423억 원으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2004년부터 정해창 회장과 공동 대표를 맡아 오던 그는 2012년 단독 대표에 올랐다.


초기부터 동고동락한 1.5세 경영인, ‘이타자리 정신’ 물려줄 것
자신을 1.5세 경영인으로 소개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외형이 잘 갖춰진 기업에 ‘후계자’로 들어온 게 아니라 성장 초기 단계에 입사해 회사와 함께 성장했다는 뜻이다.

“보통 2세 경영이 어려운 건 아버지가 잘 만들어 놓은 공간에 뒤늦게 들어와 기존의 오래된 멤버들과 잘 융화하지 못하는 이유가 크죠. 듀오백코리아에는 저보다 오래 일한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 면에서 저는 보다 수월했죠.”

흔히 가구가 부침이 심한 산업군인 만큼 고비도 여러 번 넘었다. 과거와 달리 가구가 소모품이라는 인식이 강해졌고, 학생 수가 줄면서 시장은 더욱 축소됐다.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올 연말 세계 최대 가구업체 이케아까지 가세해 국내 가구 시장에서의 위기감은 더욱 커졌다. 몇 년간 성장이 정체되면서 매출 400억 원 문턱은 갈수록 높아졌다. 듀오백의 2013년 매출액은 373억 원으로 전년 360억 대비 13억 증가했다. 그는 “사실 한 번도 쉬웠던 적은 없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지난 10년 동안 회사가 내적, 외적으로 성장해 왔지만 앞으로는 무한경쟁 체제 속에서 변화를 많이 겪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장의 변화에 어쩔 수 없이 순응했다면 앞으로는 업종의 정의를 바꾸어 우리가 시장을 만들어 가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듀오백코리아는 얼마 전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지난 3월 21일 주주총회를 열어 사명을 디비케이(DBK)로 변경하고, 매출 증대 방안으로 사업 다각화를 택했다. 인체공학 의자로 시장을 선도해 온 만큼 척추 건강 등 관련 분야의 보조 기기를 선보여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무엇보다 의자에서의 시간을 보다 의미 있게 쓸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사명이라 생각하고 힘을 쏟을 예정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우리는 무엇이든 갈망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앉아서 하는 모든 행동을 서포트하는 주체로 의자의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합니다. 화학 스펀지 대신 천연 라텍스를 의자에 적용한 ‘듀오텍스’나 아동용, 여성용 의자를 별도로 만드는 것도 그 일환이죠. 소재를 고급화하면 가격은 분명 올라가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어요. 시장의 반응도 좋고요.”

듀오백코리아를 이끄는 정신은 ‘이타자리(利他自利)’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가치는 후대로도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SUCCESSOR] 의자는 성취 위한 베이스캠프…‘돈’ 아닌 ‘가치’를 세습하다
정 대표는 “기업의 연속성은 지켜져야 한다”면서도 “그게 반드시 나의 자녀에게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슬하에 4남을 두고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분이 가업승계를 해 회사를 경영하는데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영자가 행복해야 그 기업이 발전하는 것인데 말이죠. 저는 이 일이 제 삶의 전부라 생각하고 살아 왔지만 아이들은 다르게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혹 사업을 천직이라 생각하는 아들이 있으면 모를까, 개인적으론 아이들이 사업보다 다른 것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얼마나 힘든지 너무 잘 아니까요. 그것과 별개로 듀오백코리아를 전략적으로 잘 키워 나갈 겁니다.”

정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우리 사회가 2세 경영인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유럽이나 일본의 백년 기업들은 존경받는 데 반해 우리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가업승계가 너무 부의 세습에만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죠. 사실은 가치를 물려주는 부분이 훨씬 큰 경우가 많은데 말이죠. 이는 매스컴의 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청년 창업을 육성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이 있는데, 우리도 백년 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가업승계나 세습 문화를 보다 균형 있는 시각으로 조명해야 합니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