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지난달 영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명견대회 ‘크러프츠(Crufts) 2014’를 후원했다. 문구회사 모나미는 애견 종합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고, 동아원그룹은 진돗개 명견화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 기업의 이색 행보의 배경에는 바로 이건희, 송하경, 이희상 등 애견 마니아 ‘회장님’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억만장자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반려동물 사랑이 지극한 재벌들이 많다. 이들 슈퍼리치 애완족은 어느덧 2조 원 규모로 성장한 국내 반려동물 산업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명품 의식주를 포함해 반려동물 리조트와 도그 TV 등 각종 이색 서비스도 범람한다. 이른바 럭셔리 애완족 전성시대. 슈퍼리치들의 독특한 반려동물 사랑법을 엿본다.
[SPECIAL REPORT] 회장님들의 반려동물
3월 10일 오후 서울 삼성동에 있는 한 애견호텔 앞. 푸들 한 마리가 검은색 세단 조수석에서 내렸다. 운전기사의 호위(?)를 받으며 당당하게 호텔에 들어온 뒤 1시간여 목욕과 미용 등 모두 40만 원어치의 풀 케어를 받았다. 미리 주문해 놓은 12만 원짜리 벨기에 브랜드 원피스도 함께 구매했다. 애견호텔 직원은 “모 중견기업 회장님댁 사모님의 둘도 없는 애견”이라며 “일주일에 서너 번 기사와 함께 와서 관리를 받고 돌아간다”고 귀띔했다.


슈퍼리치 애완족, 그들은 누구인가
럭셔리 애완족 가운데는 재벌가 회장님들이나 최고경영자(CEO)들이 유난히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영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명견대회인 ‘크러프츠 2014’를 후원했는데, 그 배경에는 이 회장의 각별한 견공 사랑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 회장은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집에서 페키니즈를 기른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일본 유학 시절 진돗개를 키우며 매력을 느낀 그는 1960년대 말 직접 진도에 내려가 진돗개를 대거 사들이는가 하면 직접 진돗개애호협회까지 만들었다. 한때 한남동 자택에서 진돗개를 포함해 200여 마리를 길렀으나 이웃의 항의가 빈번해 에버랜드로 보낸 적도 있다. 이 회장의 반려견 사랑을 잘 알고 있다는 반려견 사업체 관계자는 “이 회장은 지금도 포메라니안, 요크셔테리어, 치와와 등 소형견 서너 마리를 집에서 기르는데 손수 목욕을 시킬 정도로 귀여워한다”고 전했다.

이희상 동아원그룹 회장 역시 진돗개 마니아다. 현재 경기도 광주 농장에서 진돗개 4마리를 키우며 혈통 보존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에는 진돗개 명견화 사업단과 진돗개 전용 사료 공급에 관한 업무 협약식을 갖고 토종견 진돗개를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현재 동아원그룹의 계열사인 대산물산은 세계적인 사료 브랜드 ANF 제품을 국내에 유통하고 있다. 진돗개 외에도 KBS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에서 ‘상근이’로 유명했던 그레이트 피레니즈 등이 이 회장의 사랑을 받는 반려견이다.
[SPECIAL REPORT] 회장님들의 반려동물
우리나라 재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진돗개는 흔히 중국 갑부들의 상징인 티베트산 사자개 짱오와 비견된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짱오와 가격 면에서 상대가 안 되지만, 오피니언 리더들의 관심을 받으며 저변 확대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진돗개는 혈통과 특성에 따라 가격 편차가 큰 편이다. 강아지 가격은 50만~150만 원대이며, 성견의 경우 4000만~5000만 원, 우수한 품종의 경우 1억 원 선에서 거래되기도 한다. 진돗개 커뮤니티 ‘진돗개와 사람들’ 운영자인 지영봉 씨는 “영리하며 충직하고 순한 특성이 있는 진돗개는 고독한 CEO들이 의지하기에 가장 적합한 반려동물”이라며 “백색 진돗개는 깔끔한 스타일의 사람들이 좋아하며, 황색 진돗개는 사업가들이, 흑색은 정치가나 강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들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송하경 모나미 대표도 애견가로 유명하다. 송 대표는 호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처럼 로트와일러, 도베르만, 셰퍼드, 복서 등 대형 견을 선호한다. 그중에서도 독일종 경비견을 가장 아낀다고 한다. 송 대표는 평소에 취미삼아 개 훈련을 시키는데, 주말만 되면 한국 최고의 경비견을 길러 내는 훈련사와 함께 개를 번식시키고 새로운 종자를 개발해 내는 브리더로 변신한다. 1년에 한 번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셰퍼드 훈련 경기대회에 기르던 셰퍼드를 데리고 참가하기도 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푸들계의 대부’라는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푸들 사랑이 지극하다. 이마트가 4년 전 서울 자양점과 문정동 가든파이브점 등 전국 15개 이마트에 문을 연 애견·애묘 가게 ‘몰리스 펫샵’은 아예 자신의 애완견 스탠더드푸들의 이름인 몰리를 따서 지었다. 순백색 털빛을 자랑하는 몰리는 이마트 PB(Private Brand)제품인 ‘엠엠독스 체중조절·노령견용 2.5kg’의 봉지 모델로도 데뷔해 화제를 모았다. 지금은 중단했지만 한때 그의 트위터에는 정 부회장이 이마트 사료 제품을 자신의 애완견에게 먹인 뒤 품질을 점검하는 멘션으로 가득했다.

경영인들이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건희 회장은 1997년 ‘개를 기르는 마음’이라는 에세이에서 “개를 기르다 보면,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며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줄 아는 마음을 여기서 배운다”고 말하기도 했다. 송하경 대표도 “개는 생활에 활력을 줄 뿐 아니라 안정감을 준다”며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강직한 모습을 보며 경영인으로서도 많이 깨닫게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 미국의 동물학자 토머스 칸타자로가 500대 기업인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개가 인간의 심리 안정과 건강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밖에 우리 사회가 핵가족화, 노령화되면서 반려동물을 사들이는 자산가들도 늘었다.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흐름에 따라 개나 고양이를 입양하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자녀를 분가시킨 뒤 적적해서 반려동물을 들이는 중장년층도 많다. 개성을 중요시하는 젊은 층 사이에서는 반려동물이 ‘있어 보이는 하나의 아이템’으로도 통한다. 강남의 한 애견숍 관계자는 “6~7년 전만 해도 압구정이나 청담동 일대에서는 수입차 옆자리에 대형견을 싣고 거리를 활보하는 애완족들의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며 “동물을 가족으로 인지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부의 상징’으로 보는 시선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부자들은 어떤 동물 키우나
반려견 시장에서 선호되는 견종은 몰티즈와 푸들, 시추, 요크셔테리어가 부동의 1, 2, 3, 4위다. 하지만 VIP 시장으로 넘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남들과 같은 것을 거부하고 차별화를 원하는 재력가들은 희귀종을 많이 키운다.

프랑스 견 비숑 프리제는 단연 1등. 최근 TV 드라마에도 등장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견종으로, 곱슬거리는 털을 가진 인형 같은 외모가 매력적이다. 기본 분양가가 100만 원 이상으로, 종에 따라 500만~600만 원을 호가한다. 여우를 닮은 소형 견 포메라니안이나 프렌치 불도그,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골든레트리버, 웰시 코기 등의 품종도 인기가 많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프랑스 견 코통 드 툴레아는 최근 청담동 일대에서 ‘핫’한 견종으로 없어서 분양을 못할 정도다. 하지만 반려견의 가격을 한 마디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같은 종이라도 생김새나 털 길이, 색깔 등에 따라 많게는 수백만 원씩 가격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또 흔하지 않은 종의 경우 소비자들 사이에 분양 경쟁이 이뤄지다 보니 프리미엄이 붙어 값이 두 배 이상 비싸지기도 한다. 100만 원대 포메라니안도 도그쇼 수상 이력이 있는 우수 견종은 2000만 원을 주고도 못 사는 경우가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 이태원에 있는 애견숍 ‘한남동 강아지’의 이지선 대표는 “부유층에서 특별하게 선호하는 종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들은 같은 종이라도 털 길이, 색깔, 외모 등을 깐깐하게 따져 구매하는 편이라 우수한 품종을 고가에 분양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동물의 종류와 크기는 순전히 취향의 차이지만, 사업가나 활동적인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대형 견도 많이 키운다. 저택이나 공장을 지키게 한다든지 혈통 비즈니스를 위한 ‘도그테크’용으로 기르기도 한다.

스타들은 개성 넘치는 품종을 선호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스타’의 대명사 가수 이효리는 닥스훈트와 몰티즈, 푸들 등을 키웠거나 키우고 있다. 배우 엄태웅도 과거 한 방송에서 진돗개 등 열 마리 이상의 개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그룹 빅뱅의 멤버 태양과 지드래곤은 각각 보스턴테리어 종 ‘보스’와 익살스러운 외모의 샤페이 종 ‘가호’를 키우고 있다.
반려동물을 위한 VIP 서비스는 진화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도그 TV, 애견미용숍, 애견유치원 픽업 서비스, 첨단 시설이 갖춰진 동물병원.
반려동물을 위한 VIP 서비스는 진화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도그 TV, 애견미용숍, 애견유치원 픽업 서비스, 첨단 시설이 갖춰진 동물병원.
VIP 반려동물을 위한 초호화 서비스
농협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시장은 2013년 2조 원대로 성장했으며, 2020년 6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반려동물 열풍 뒤에는 시장의 ‘큰손’ 역할을 하며 산업을 주도하는 슈퍼리치들이 있다. ‘주인님’의 아낌없는 투자로 반려동물들은 사람 못잖은 호화를 누린다. 개 유행을 선도하는 지역은 아무래도 부유층이 많이 거주하는 서울 강남과 한남동 일대. 갤러리아 백화점 압구정 명품관 웨스트 1층 펫 부티크 매장은 애완족이라면 꼭 방문해 봐야 할 순례지로 불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영국산 극세사 쿠션이나 100% 원목으로 만든 강아지용 밥그릇 등 일반 애견 숍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럭셔리한 애견용품을 선보인다. 기존 제품에 비해 4배 정도 비싼 가격이지만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애완견들을 위한 TV도 등장했다. 개들이 보는 TV, 이름하여 도그 TV가 미국, 이스라엘에 이어 전 세계 세째로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도그 TV는 낮 시간 홀로 지내는 개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흥미와 학습을 유도하는 내용으로 개들이 몰입해 볼 수 있는 시각과 청각에 최적화돼 있다. CJ헬로비전이 지난 2월 도입한 이 서비스는 한 달 만에 유료 가입자가 1200명에 달하는 등 국내 애완족들 사이에서 조용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청담동에 위치한 반려동물 복합 문화 공간 이리온은 병원, 미용, 호텔, 유치원 등 반려동물 관련 프리미엄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한다.

매일 오전 10시 등교해 오후 4시 하교하는 애견유치원은 전문 교육 시설과 온돌바닥, 음향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담당선생님이 배변 학습, 사회 적응 훈련 등을 진행하고 하교 시 직접 작성한 알림장도 준다. 의료 시설도 최고 수준이다. 자기공명영상(MRI)과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가 갖춰져 있고, 반려동물 줄기세포 시술도 이뤄진다. 암에 걸린 동물들을 위해 항암 치료나 호스피스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리온의 문재봉 원장은 “동물 줄기세포 시술은 수백만 원이 들지만 보호자들은 질병 치료에 절대로 돈을 아끼지 않는다”며 “오히려 그들의 요구 수준을 국내 수의술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장례 서비스도 성황을 이룬다. 수의를 장만하고 염습을 거쳐 화장, 납골당 안치까지 장례 절차를 대행해 준다. 애완동물 사체의 크기에 따라 최소 20만~30만 원에서 300만 원까지 비용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사회가 삭막해질수록 반려동물 산업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동물은 가족이나 친구 이상으로 사람의 외로움을 달래 주는 데 적합한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슈퍼리치들의 경우 아무리 부와 명예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오는 공허함을 채우기 어렵다. 이럴 때 반려동물들은 존재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의 VIP 자산관리사는 “요즘 50, 60대 고객을 만나 보면 반려동물을 가족 이상으로 끔찍이 생각하는 분들이 과거에 비해 무척 많다”며 “해외 토픽에서 나오는 것처럼 실제로 자신의 애견에게 재산 일부를 물려줄지 고민하는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산업이 6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2020년에는 상속자가 된 슈퍼리치의 반려동물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 | 사진 김기남 기자·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