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풍의 현장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의 매력

단조롭되 질리지 않으며, 실용적이면서도 존재감을 분명히 드러낸다.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북유럽 가구와 생활소품 브랜드는 2014년에도 여전한 인기를 예감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이 간직한 ‘신의 한 수’는 뭘까.
프리츠한센
프리츠한센
서울에 거주하는 서예정 씨는 ‘이케아’에서 주문해 직접 만든 원목 식탁에 ‘로열코펜하겐’ 그릇을 놓고 밥을 먹는다. 식사 후에는 ‘에그 체어’에 앉아 ‘뱅앤올룹슨’ 오디오로 음악 감상을 한다. 외출할 땐 ‘H&M’을 입고 ‘마리메꼬’ 에코백을 어깨에 걸친다.


가상으로 꾸며본 서 씨의 일상은 북유럽 그 자체다.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가구나 인테리어, 패션 등 생활용품의 수요도 눈에 띄게 늘었다. 백화점 및 가구 전문점에서 북유럽 브랜드의 매출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SPECIAL REPORT] 이케아·에그 체어…실용과 문화를 사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관련 매출이 전년 대비 28.3% 뛰었다. 스웨덴 고급 매트리스 브랜드 ‘덕시아나’ 등 가구가 38.2%, 덴마크 명품 도자기 브랜드 ‘로열코펜하겐’, 덴마크 가정소품 브랜드 ‘그린게이트’ 등 리빙용품 매출이 26.3% 늘었다. 신세계백화점도 ‘바리에르’ 등 노르웨이 가구 브랜드가 지난해보다 2~3배 늘어난 매출을 기록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이탈리아 등 서유럽 가구 브랜드와 비교했을 때 북유럽 제품들이 나 홀로 승승장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핀 율을 비롯해 아르네 야콥센, 한스 베그너, 포울 키에르홀름, 마이야 루에카리처럼 세계적으로 저명한 북유럽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들은 수백만 원에서 최대 수천만 원을 호가하지만 이들 제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다.
[SPECIAL REPORT] 이케아·에그 체어…실용과 문화를 사다
덴마크 가구 브랜드 ‘프리츠한센’의 아르네 야콥센 ‘에그 체어’ 가격은 2000만 원대 중반. 곡선의 미학을 보여주는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이 제품은 상처 없는 소 두 마리 가죽을 그대로 써 가죽 이음새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노르웨이 명품 의자 브랜드 ‘바리에르’의 인체공학적 디자인 의자 역시 50만~700만 원대지만 자세교정 효과와 편안함 등 입소문을 타고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간다는 후문이다.
칼한센앤선
칼한센앤선
북유럽 빈티지 컬렉션과 편집숍도 인기다. 스칸디나비안 ‘모벨랩’은 실제 1950~1960년대 제작돼 북유럽 가정에서 세월의 손때가 묻은 가구를 선보인다. 성북동 쇼룸에는 한스 베그너가 1950년대에 만든 ‘베어 체어’ 등 가구 수집가들의 입맛을 당기는 아이템들로 그득하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문을 연 ‘스칸’은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을 총체적으로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수입 리빙 제품과 패션 액세서리 위주로 판매하던 중 합리적인 가격대의 빈티지 가구들도 판매할 수 없겠느냐는 손님들의 문의가 잇달아 가구 브랜드 ‘매스티지데코’의 레트로 시리즈를 소개했으며 지금은 ‘모벨랩’ 제품도 판매한다.
[SPECIAL REPORT] 이케아·에그 체어…실용과 문화를 사다
[SPECIAL REPORT] 이케아·에그 체어…실용과 문화를 사다
이처럼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이 여전히 높은 인기를 얻는 배경에는 국내 유통 시장에 부는 실용주의 바람이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북유럽은 겨울이 길고 추운 날씨의 영향으로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스칸디나비안들은 실용적이면서도 견고하고 간결한 디자인의 제품들로 실내를 안락하게 꾸민다. 우리나라 역시 쉼과 가정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등장하면서 편안하면서도 여유로운 북유럽 문화를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말 스웨덴 최대 가구 브랜드 ‘이케아’가 경기도 광명시에 1호점을 오픈하면 이 같은 북유럽 디자인 열풍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SPECIAL REPORT] 이케아·에그 체어…실용과 문화를 사다
박종덕 스칸 대표는 “북유럽 디자인의 특징 중 하나가 ‘믹스앤 매치(Mix & Match)’다. 내추럴한 우드와 과감한 비비드 컬러의 조화, 수백만 원 ‘스완 체어’와 1만 원대 이케아 의자의 어우러짐 등 개성 있는 컬러와 브랜드 컬래버레이션으로 인테리어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내가 생각하는 북유럽 디자인의 가치
돌멩이 색·짙은 흙빛…자연의 색을 입히다
[SPECIAL REPORT] 이케아·에그 체어…실용과 문화를 사다
나는 젊은 시절 스웨덴 기업에서 일하며 북유럽 디자인에 일찍이 관심을 가졌다. 당시 전 세계 트렌드의 중심은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였지만 직접 북유럽에 가서 보니 그곳에는 색다른 문화적 사조가 있었다. 스웨덴 전통 문구점 ‘북바인더스’에 이어 스웨디시 카페 ‘피카’와 스웨덴 잡화 브랜드 ‘해즈빈스’를 론칭하고 북유럽 리빙, 패션, 음식 문화를 한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인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하우스’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오픈한 것도 이러한 문화를 우리나라에 전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북유럽 디자인은 패브릭과 문구 등에 국한됐다. 단순히 예뻐서 사용한다는 이들이 있었지만 소비자가 스칸디나비안의 철학까지 속속들이 이해하지는 못했다.


수수하고 플랫하지만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
북유럽 디자인과 인테리어는 사람들의 속성과 성향을 모두 고려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철, 유리, 돌, 나무 등 물성을 가진 소재들을 의미 있게 사용하고 그것을 제품화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들어간다. ‘알바르 알토’의 의자, ‘피스카르스’의 전지가위, ‘이딸라’의 식기 등 북유럽의 유명 브랜드 제품들은 사용자 중심의 인체공학적으로 제작됐다. 미니멀한 테이블은 평소에는 벽에 밀어두었다가 슬라이드를 잡아 빼면 식탁으로 변신한다. 이런 식으로 내구성에 중점을 두고 사용자의 편의를 도모하는 기능성 제품들이 많다. 제품의 소재를 자연에서 가지고 오니 디자인적인 요소를 굳이 가미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훌륭한 인테리어가 된다. 군더더기를 최소화해 인위적으로 구현하는 미니멀리즘과는 차원이 다르다. 또 제품을 한 번 사용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리사이클링 되는 구조 역시 선진적이라 하겠다.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컬러를 빼놓을 수 없다. 북구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그들이 보고 느끼는 색감은 우리의 컬러 스펙트럼과 차원이 다르다. 생각해보라. 북반구는 태양이 떠있는 위치가 남반구와 다르니 태양이 반사하는 빛의 각도도 다를 터. 찬란한 오로라나 녹아가는 빙하, 깊어가는 구름 사이에서 번지는 빛, 눈 내린 대지를 반사하는 태양의 색 등은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이렇듯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은 다채로운 자연의 컬러를 제품에 다양하게 적용시킨다. 푸른색이 아닌 깊은 바다색, 회색이 아니라 돌멩이 색, 갈색이 아니라 짙은 흙빛 등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래서 채도가 낮아도 깊이감(depth)이 느껴진다. 그것이 스칸디나비안의 컬러 아이덴티티다.
[SPECIAL REPORT] 이케아·에그 체어…실용과 문화를 사다
혹자는 “북유럽 디자인 제품은 가져다 놓아도 티가 안 난다”고 말하기도 한다. 맞다.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은 포장하고 과시할 수 있는 문화가 아니다. 화려한 디테일은커녕 단조로울 정도로 수수하고 플랫하다. 그 대신 기본에 충실하고 실용적이다. 명품 덴마크 가구 디자이너 핀 율이 “내 작업의 가장 큰 특징은 디자인과 기능의 완벽한 조화를 이뤄내는 것”이라고 공언할 정도다. ‘스칸’에서 판매하는 문구들 역시 10년째 같은 디자인이지만, 마니아들은 이 베이식한 것들이 주는 심심한 매력에 열광한다. 장식용 오브제 대신 다용도 식탁이, 황금 화병보다는 실제로 꽃을 꽂아놓을 수 있는 작지만 예쁜 화병이, 무늬만 화려한 명품 의자 대신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소파가 잘 팔린다. 우리도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에 담긴 철학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사진 프리츠한센·칼한센앤선·마리메꼬·까사미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