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좌담 왜 북유럽에 열광하나

이케아부터 스칸디나비안 육아법까지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북유럽 열풍이 어느새 생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머나먼 ‘신비의 땅’이자 워너비(wanna be)의 대상이기도 한 북유럽. 한국 사회는 북유럽의 어떤 면에 열광하는 것일까.

최근 ‘북유럽 이야기’를 펴낸 리드앤리더의 김민주 대표와 26여 년간 스웨덴에서 ‘스칸디 대디’로 살아온 전

스웨덴 국립교육청 특수재정국장 황선준 박사가 마주 앉아 북유럽 열풍을 진단했다.
황선준 박사(왼쪽)와 김민주 대표.
황선준 박사(왼쪽)와 김민주 대표.
머니 북유럽 열풍이 거셉니다. 두 분은 어떻게 보세요.
김민주 과거 생소한 북유럽 국가들을 막연하게 동경했다면 최근에는 입고 먹고 생활하는 모든 영역에 북유럽 문화와 철학이 침투하고 있습니다. 붐이 패션이나 인테리어뿐 아니라 영화, 출판, 교육 전반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이 재밌더군요. 하지만 아직은 일부 소비자들의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봐요. 마니아층이 존재하기도 하고요.

황선준 북유럽이 처음 주목받은 건 2011년 영국 일간지 타임스가 ‘스칸디 대디(스칸디나비아식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아빠들)’를 조명하면서부터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육아에 깊이 관여하는 가정 중심적인 아버지상이 각광받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켰죠. 저는 스웨덴 교육계에 몸담고 있어 관심이 많았는데, 이 불씨가 북유럽 열풍으로 확산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그 해에 한국에 왔더니 이미 교육 쪽에선 북유럽이 이슈가 되고 있더군요.


머니 한국에 북유럽 열풍이 부는 배경은 무엇인가요.
김민주 2008년 이후 전 세계 경기 불황 속에서도 북유럽 국가들은 특별한 부침 없이 선전하고 있어요. 북유럽 국가들은 경쟁력, 창조 역량, 글로벌 혁신성, 국가 부채, 인적 자원 분야 지수가 전 세계 상위에 랭크돼 있습니다. 지금의 워너비 현상은 이러한 북유럽의 저력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불리한 지리적 환경을 딛고 일어나 독특한 정체성과 글로벌 전략으로 세상에 우뚝 선 그들의 위상과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죠.

황선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너무도 팍팍합니다. 북유럽 열풍은 그것에 대한 반향이라고 볼 수 있어요.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북유럽 사람들은 우리가 지니지 못한 많은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깨끗한 자연과 더불어 살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죠.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부모와 아이 모두 행복한 나름의 방법들을 터득해 실천합니다. 세금은 낸 만큼 혜택을 누려요. 임금이 낮아도 삶의 질은 한국보다 훨씬 높지요. 뼈 빠지게 일하며 돈을 벌고도 행복하지 못한 한국인들이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김민주 공감합니다. 성장 일변도를 달려온 우리 국민은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지요. 실용적이고 여유로운 삶에 가치를 두기 시작하면서 자연친화적인 가구와 패션 등 북유럽식 라이프스타일에 눈을 뜨는 거죠.


가족 중심·친 자연적 사회문화…돈 많이 못 벌어도 삶의 질 높아

머니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북유럽 국가들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황선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은 해가 빨리 져 어둡고 우울한 나라들이죠. 거의 모든 사람들은 오후 4~5시가 되면 퇴근하고 저녁 6시면 웬만한 가게들은 문을 닫아요. 룸살롱이나 나이트클럽과 같이 유흥을 즐길 만한 곳은 찾아보기 힘들죠. 가장들은 일찍 귀가해 부인과 가사와 육아를 함께 담당해요. 가족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니 자연스레 집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고요. 그러니 핸드메이드, 홈메이드 스타일의 건축, 디자인, 요리 등의 문화가 발달하게 된 겁니다.

김민주 북유럽 하면 복지를 빼놓을 수 없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 북유럽 국가들은 급격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노동력이 필요했어요.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절실했죠. 정부는 여성 인력을 끌어내기 위해 복지를 강화했어요. 아동 보조금, 육아휴직, 공공 유아학교 등 정책을 만들었고 일터나 가정에서 자연스레 남녀평등 문화가 정착됐죠.

황선준 스웨덴의 경우 국가의 모든 복지는 개인 중심이에요. 여성이 실직을 당하면 남편이 고소득자라 할지라도 실직 수당을 줘요. 부모자식, 부부 등 모든 관계에서 의존할 필요가 없는 거죠. 이러한 복지 형태가 미국이나 다른 유럽과의 차이점입니다.

김민주 또 하나는 공동체 문화예요. 최근 스웨덴 대사를 지냈던 지인이 ‘엔 분의 일(1/n) 문화’를 이야기하더군요. 과거 바이킹이 지배했던 북유럽은 수확을 직급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나누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바다를 개척하는 일은 때론 목숨을 담보로 할 만큼 위험하기 때문이죠. 죽은 사람의 가족은 육지에 남은 이들의 공동체가 돌봐줘요. 이런 평등 문화가 지금까지 잘 자리를 잡았다고 봅니다. 양극화 문제가 심각한 우리나라와는 좀 다른 정서죠.


머니 뛰어난 경쟁력을 지닌 북유럽 기업들은 세계적 관심을 받지요. ‘발렌베리가(家)’는 우리나라 삼성도 열심히 연구하던 명문가 중 하나고, 볼보, 노키아, 이케아 등도 국내에서 유명하고요.
김민주 발렌베리가는 전체 스웨덴 국내총생산(GDP)과 시가총액의 30~40%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기업입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막강한 경제적 영향력과 사회 기여로 인해 ‘스웨덴의 자존심’,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하죠. 문어발식 경영을 함에도 모범적인 기업 구조와 철저한 사회적 책임 활동으로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어요. 가족 주식을 개인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전문 신탁회사에 위탁해요. 가문 사람들 역시 계열 기업과 재단에 재직하면서 급여를 받습니다. 대중에게 자신들을 노출시키지 않고 돈을 과시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황선준 맞아요. 대승적 차원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요즘엔 우리나라 기업들도 선진국의 이런 모습을 따라하려는 움직임이 있죠. 가령, 발렌베리 총수는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지금의 자본주의는 엉망진창”이라며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발언을 서슴없이 합니다. 마인드가 깨어 있는 거죠. H&M, 이케아, 볼보 등 다른 북유럽 출신 기업들 역시 노사문제를 보는 시각이나 기업이 국가, 국민을 위해 해야 하는 책무에 깨어 있어요. 국내 재벌이나 대기업들이 자신의 주머니 채우기에 급급한 모습과는 대조적입니다.

김민주 과거 러시아가 스웨덴 정부를 향해 지나치게 기업 편을 든다고 질책한 적이 있어요. 정부도 몰랐던 것은 아니죠. 하지만 일단 시장의 파이를 늘리는 데 정부가 도움을 주고 나누는 데 역시 관여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어요.

황선준 물론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척하는 기업들도 있어요. 스웨덴 패션 기업 H&M은 한때 불법 고용을 일삼아 도마에 오르기도 했고요. 북유럽 기업을 무조건 미화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비리는 누군가에게 반드시 발각돼요. 국가 감시 기능이 후진적이라 저널리스트나 사회운동가들이 이런 기업의 문제를 굉장히 빨리 지적해서 끝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자율+존중’ 스칸디 교육 핵심,자본주의에 지친 현대인 북유럽 열광

[SPECIAL REPORT] “실용적이고 여유로운 삶에 대한 갈망”
머니 우리나라 부모들 사이에서 스칸디나비안 교육법은 선망의 대상입니다. 실제 ‘스칸디 대디’인 황 교수님께서 이 교육법의 핵심을 짚어주시죠.
황선준 경쟁적인 교육 환경에서 벗어나 자녀와 교감하고 아이의 자율성과 감성을 개발해주는 북유럽식 교육법이 스칸디나비안식입니다. 이를 지향하는 부모를 ‘스칸디 맘’, ‘스칸디 대디’라 합니다. 스웨덴 교육은 친구와 경쟁하지 않고 협력하면서 세계 최고의 학력을 성취하고, 낙오자 없이 공교육을 모두 책임지는 것으로 유명해요. 아이들을 존중하고, 아이들을 수평적으로 대하면서 직접 결정하고 책임지도록 합니다. 그러려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교감하고 지켜봐주는 것이 중요하죠.

김민주 세계적으로 스웨덴과 스위스에 특허 기업들이 유난히 많더군요. 이 벤처기업가들의 창조적이고 독특한 발상은 스칸디나비안 교육과도 연관이 깊다고 봅니다. 암기식이 아닌 비판적이고 창조적 수업을 통해 창의성이 길러지는 게 아닐까요.
[SPECIAL REPORT] “실용적이고 여유로운 삶에 대한 갈망”
황선준 맞아요. 아이들을 틀 안에 가두지 않고 스스로 틀을 만들게 하는 교육이라고 할까요. 이케아 역시 그러한 발상에 기반을 둔 비즈니스죠. 재료를 사와서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것이 상당히 불편하지만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자기식대로 가구를 만들다 보면 기가 막히게 재밌어요. 보람도 있고요.


머니 북유럽 열풍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십니까.
김민주 미국식 자본주의에 지친 사람들은 앞으로도 북유럽식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에 집중할 것이라고 봅니다. 아직은 덜 개척된 미지의 대륙이기도 해서 보다 새로운 트렌드를 찾으려는 니즈와도 잘 맞아떨어지죠. 다만 이 열풍은 문화와 생활에 머무를 것으로 보입니다. 체제나 정치는 또 다른 차원이죠.

황선준 북유럽 국가들은 오랜 역사에 걸쳐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들을 개선해왔지요. 그들도 양성 평등, 양극화, 복지, 교육, 환경 문제를 고민했고, 지금은 많은 부분 선진국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특히 스웨덴의 경우 완벽에 가까운 복지국가 모델을 만들었고, 학교 폭력이나 ‘왕따’를 교실에서 몰아냈으며 양성 평등을 이룩했죠. 지금은 환경이 화두인데, 한때 70%에 달했던 석유 의존도를 줄여 2030년에는 재생에너지로 움직이는 나라를 이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이 아닌,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법을 고민하는 나라죠. 우리 역시 이러한 사회를 염원하는 한 북유럽 열풍은 계속되지 않을까요.







북유럽 대표 브랜드

로열코펜하겐 덴마크 왕실에 식기를 납품하던 230년 역사의 도자기회사. 아름다운 디자인과 1400도가 넘는 고열에 구워 단단하고 뛰어난 품질로 고급 자기의 대명사로 불린다.

일렉트로룩스 1919년 세워진 스웨덴 최대의 가전업체. 1921년 실용적인 모델의 진공청소기를 개발해 전 세계 주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테트라팩 음료 패키지 역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 발명으로 불린다. 전 세계 물류혁명을 일으켰다.

앵그리버드 귀여운 새 캐릭터로 사랑받은 스마트폰 게임. 세 명의 핀란드 공대생들이 2003년 벤처기업으로 설립한 로비오 엔터테인먼트사의 작품으로 개발자 네 명이 6개월에 걸쳐 만들어내 화제를 모았다.

볼보 스웨덴 경제학자인 아사르 가브리엘슨과 엔지니어인 구스타브 라르손이 탄생시켰다. 스웨덴의 혹한의 날씨와 거친 도로 조건을 버틸 수 있도록 ‘사고 제로’를 비전으로 삼았다.

H&M 저렴하고 스타일리시한 패스트패션 브랜드. 제품 기획에서 제품화까지 걸리는 시간은 3주에서 길어야 6개월. 샤넬 등 명품 브랜드와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은 트레이드마크다.

이케아 세계 최대 가구업체이자 라이프스타일 기업. 최저가는 물론 소비자가 직접 조립하는 DIY(Do It Yourself) 디자인, 체험과 재미를 주는 매장 등의 전략으로 유명하다. 설립자 잉바르 캄프라드는 세계 10대 부자에 올랐다.

레고 1932년 덴마크에서 목수로 일하던 올레 커크 크리스찬센이 목각 인형의 형태로 처음 만들었다. 이후 브릭형 장난감을 콘셉트로 소재의 안전성을 높이고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을 적용해 전 세계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SPECIAL REPORT] “실용적이고 여유로운 삶에 대한 갈망”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장소 협찬 체리쉬(02-511-3774)│참고 도서 ‘북유럽 이야기’(미래의창)·‘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예담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