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 대표

자수성가한 창업자들 중에는 자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후계자의 성장을 방해하고 관계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성공적인 가업승계를 바란다면 후계자와의 관계부터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FAMILY BUSINESS CONSULTING] 후계자와의 관계를 점검하라
최근 만난 한 중견기업의 후계자 강 전무는 아버지이자 창업자인 강 회장의 호출이 있을 때면 ‘또 뭐가 잘못됐나’라고 긴장부터 한다. 항상 철저하고 강인한 성격의 강 회장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 전무는 30대 후반으로 10년 가까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칭찬을 받은 기억은 거의 없다. 반면, 어쩌다 일이 잘못되면 불호령이 떨어져서 난감했던 적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도 떨어지고 마음 한구석엔 강 회장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쌓이고 있다. 더구나 최근 유학을 마치고 현지에서 몇 년간 경력을 쌓고 회사에 합류한 동생과 비교되는 것 같아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강 회장은 아무나 능력 되는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고 공공연히 얘기를 하니 말은 안 해도 그의 불안감과 초초함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렇다면 강 회장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사실 그는 두 아들을 모두 못마땅해한다. 자신은 빈손으로 시작해 국내외를 넘나들며 회사를 이만큼 일구었는데, 자녀들은 어릴 때 열심히 공부시켜 일류 대학에 보내고, 졸업 후엔 미국 명문대 경영학 석사(MBA)까지 보냈는데도 기업가정신도 약하고 리더십도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 회사를 넘겨주는 게 불안하다.

놀랍게도 많은 창업자들이 강 회장과 비슷한 얘기를 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후계자를 젊은 시절의 자신과 비교해 평가하다 보니 매사가 못마땅하고 눈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계자가 리더로서 성장하는 데 자양분이 되는 신뢰나 인정, 격려와 같은 긍정적인 메시지보다는 비난과 불신 등 부정적인 메시지를 더 부각시킨다. 그리고 그 원인이 모두 후계자에게만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이와 반대일 수도 있다. 후계자 육성의 책임이 있는 장본인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후계자가 역량 있는 리더로서 성장하는 것은 고사하고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을 잃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는 결국 후계자의 성장을 방해하고 그럴수록 부자 간의 관계는 점점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놓인 후계자들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상상해보라.


부친과 문제로 정신적 문제 겪는 후계자 약 70%
가족기업의 세대교체에 있어 아버지와 아들, 즉 창업자와 후계자와의 관계는 가업승계의 성공을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하다. 연구에 따르면 두 사람의 관계는 후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창업자의 경영 철학, 핵심 가치, 그리고 수십 년간 쌓아온 암묵지(暗默知)를 이전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핵심 요인이다. 따라서 성공적인 승계를 위해서는 창업자와 후계자 간의 좋은 관계는 필수적이다. 만일 관계가 좋지 않다면 당연히 성공 확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부친과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후계자들은 의외로 많다. 그럼에도 창업자가 모든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 중견기업의 후계자는 자신이 아는 후계자들 중 약 70% 정도는 부친과의 갈등으로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 심각한 경우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대부분 서로 유사한 경우가 많다. 창업자의 강한 성격에 억눌려 자신감을 잃은 경우도 있고, 부친이 평생 일구어 놓은 사업을 자신이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방향이 서로 달라 잦은 의견 충돌을 겪기도 한다.

과연 이러한 문제들이 후계자의 책임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물론 처음부터 뛰어난 역량을 가진 후계자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모든 후계자들에게 창업자와 같은 기질과 역량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후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역량 있는 리더로 훈련시켜야 하는 책임은 창업자의 몫이다. 연구에 따르면 성공적인 후계자들은 부모와 관계가 좋다. 게다가 세대 간의 원만한 관계는 기업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상호 지원과 협조, 정보의 원활한 공유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계자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면 다음 사항을 유념해야 한다.


좋은 관계를 위한 세 가지 실천 덕목
첫째, 경영 철학과 핵심 가치를 공유하라. 사람들이 상호 신뢰를 높이는 방법 중 하나는 꿈과 비전,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다. 승계를 준비하는 기업의 대부분은 기업의 역사가 20~30년이 넘는다. 이들의 성공 요인은 창업자의 확고한 경영 철학과 핵심 가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가족기업에서는 잘 정립된 창업자의 경영 철학과 핵심 가치를 후계자에게 이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기반으로 후계자가 함께 미래의 비전을 수립하고 이를 공유하는 경우 상호 협력을 높이게 된다. 이는 승계 과정을 수월하게 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성장과 장기 발전에도 필수 요인이다. 성공적인 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가족과 기업의 꿈과 비전을 공유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국 가족기업이 장수할 수 있는 초석이 되는 것이다.

둘째, 정직하고 개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라. 승계에 있어 창업자와 후계자 간의 가장 흔한 문제 중 하나는 대화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좋은 관계는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개방적이고 정직한 커뮤니케이션이 전제돼야 한다. 즉, 어떤 주제에 관해서도 서로 정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이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높이고 결속을 강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또한 갈등이 생겼을 때도 서로의 입장이나 생각을 솔직히 털어 놓을 수 있기 때문에 갈등 해결 능력을 높인다. 창업자는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점검해보라. 후계자와 함께 정직하고 개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편인가, 아니면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명령하는 편인가?

셋째, 후계자 육성 계획과 타임테이블을 만들어라. 승계 과정에서 창업자와 후계자 간 갈등이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는 공식적인 승계 계획과 로드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계자의 리더십과 역량을 체계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초기부터 구체적이고 공식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후계자의 성장에 따라 적절한 책임과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그러면 후계자가 리더로서 필요한 자질을 더 많이 계발할 수 있다. 만일 계획 없이 승계가 진행된다면 후계자에게 다양한 경험과 도전의 기회가 줄어들 수 밖에 없고 리더로서 성장하는 것 또한 지연될 수 있다. 특히 임원들이 계획에 참여하는 경우 그들은 자신들이 존중받는다고 생각해 후계자 개발 과정에 적극 협조하게 될 것이다.

가족기업 전문가인 랜스버그 박사는 “승계는 단순히 횃불을 넘기면 되는 일이 아니고,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했다. 노스웨스턴대 가족연구소의 존 원드 박사 또한 “승계는 10~20년에 걸쳐 진행되는 장기간의 프로세스”라고 했다.

승계는 현 경영자가 일생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리더십을 후계자에게 이전하는 복잡하고 긴 과정이다. 결국 그 과정을 통해 후계자의 리더십과 역량을 개발해야 하는 책임은 창업자에게 있다. 그러므로 후계자가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비난하고 불신하기보다는 그들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 격려하며 책임 있는 리더로 성장하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야 한다. 결국 성공적인 승계를 위해서는 창업자와 후계자가 ‘우리는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인식을 나누고 기업의 성공이 서로에게 달려 있다는 긍정적인 팀워크를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서로가 기업 성공을 위한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인식하고, 서로 협조 관계를 만드는 데 힘을 써야 한다.
[FAMILY BUSINESS CONSULTING] 후계자와의 관계를 점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