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의 ‘건축 기행 그리고 인생’

훈데르트바서 하우스(Hundertwasser House)
2010년 최고경영자(CEO) 여행 동호회 ‘발칸클럽’에서 체코와 오스트리아로 예술 여행을 다녀왔다. 베토벤과 브람스, 훈데르트바서 세 거장이 남긴 문화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여정이었다. 동유럽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감상하고 공연도 즐겼지만 내 마음을 흔드는 것은 아무래도 오스트리아 자연주의 건축가 훈데르트바서를 만나는 일이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의 개념도.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의 개념도.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는 20세기 말까지 가장 잘 알려진 근대 오스트리아 작가다. 수많은 건축물을 남겼지만 건축가이기 이전에 화가로도 명성을 떨쳤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뒤덮은 훈데르트바서의 건축물들은 실로 경이로웠다. 거장 가우디가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디자인했다면 훈데르트바서는 빈에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전 생애에 걸쳐 수많은 걸작을 남겼는데 그중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단연 으뜸이다.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적 성향과 자연주의 철학이 오롯이 반영된 그 매력적인 건축물을 올려보면서 나는 서서히 젖어들었다.

훈데르트바서는 1928년 빈에서 태어나 2000년 71세가 되던 해 퀸엘리자베스 2세호 선상에서 사망했다. 어릴 적부터 예술적 소질을 보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빈의 파인아트 아카데미(Academy of Fine Arts)에서 3개월을 보낸다. 1949년(20세)부터 그는 자신의 작품에 프리드리히 스토바서(Friedrich Stowasser)라는 본명 대신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이라는 뜻의 훈데르트바서라는 이름을 서명하기 시작했다. 1952년 3월 빈의 전시회에서 처음 화가로 성공을 맛보게 된 그는 1950년대 초 건축과 실용디자인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 유기적인 형상 추구
훈데르트바서의 독특하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적 성향과 자연주의적 철학은 그의 회화, 건축, 디자인 등 모든 분야에서 잘 나타난다. 그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밝은 색, 유기적인 형상, 인간과 자연의 조화, 직선의 거부 등의 특징을 지닌다. 오스트리아 화가인 구스타브 클림트의 영향을 받아 과감한 색채의 회화를 선보이며 처음 주목을 받게 됐지만, 후에는 비정형적인 형태와 자연에서 따온 요소들을 지닌 건축물로 더 명성을 떨쳤다.

훈데르트바서는 인간의 불행은 오스트리아 건축가 아돌프 루스의 전통에 근거한 합리적이고 메마르며 단순 반복적인 건축에서 비롯됐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형태의 건축을 보이콧했으며, 그 대신 건축의 자유로움과 독자적인 구조의 창조 권리를 요구했다. 나선형에 매료된 그는 직선을 ‘악마의 도구’로 불렀다고 한다. 1972년 ‘당신의 창문권-당신의 나무 의무(your window right-your tree duty)’ 선언문에서는 도시환경에서 나무를 심는 것은 의무사항이며, 만약 자연과 더불어 살려는 자는 자연의 손님임을 인식하고 그에 합당하게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시영아파트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시영아파트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우리도 조금 천천히, 그리고 쉬어갈 때
빈의 제3구역에 세워진 시영아파트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그의 영혼이 살아 숨 쉬는 최고의 건축물이다. 구 중심가의 도시 블록에 넓게 자리 잡은 이 건물은 대지면적 1543㎡에 벽돌 구조로 돼 있다. 총 주택 수는 52호이고 상점은 5호이며, 각 주택의 규모는 30~150㎡다. 어린이놀이터 두 곳과 윈터가든, 카페 등 공공시설이 있다.

벽을 작은 단위로 잘라 서로 다른 색과 질감으로 처리했고 지붕 정원을 만들어 그 안에 250종의 나무를 심었다. 훈데르트바서는 ‘획일적이지 않은 불규칙함’, ‘창문의 다양함’, 그리고 ‘아름다운 장애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기준으로 전체 구조를 만들었다.

나는 이 건축물 앞에서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화려하고 형이상학적인 디자인은 마치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실제 디즈니사에서도 이 건물의 디자인을 애니메이션에 차용했다하니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듯싶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색다른 입면으로 주변 건물과 뚜렷하게 차별화된다. 퀼트 작품같이 빨강, 파랑, 노랑, 하양, 그리고 회색의 요소들이 하나의 화려한 집합체를 이루고 있다. 밖으로 내민 창, 발코니, 건물 안에서 밖으로 길게 나온 나무, 타일, 유리조각,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의 창들은 건물 입면에 독특함을 불어넣는다. 각 세대들은 서로 다른 색으로 칠해져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는데 이를 통해 건축가는 거주자들이 ‘집 안의 집’을 밖에서도 구별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는 또 ‘대지에 들어설 어떤 추한 것을 막기 위해’ 이 집의 디자인 비용조차 받지 않았다. 전통 건축의 메마른 격자 시스템과 기계로 생산된 상품들에 의한 인간의 노예화를 저주한 것이다. 이 건물의 개념도를 보고는 더욱 탄식을 금치 못했다. 땅과 나무와 사람이 잔뜩 그려진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의 개념도는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역시 건축의 하나이며 같이 가야 한다’는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의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복도는 마치 시골길을 걷는 느낌일 것이다. 조각 타일로 모자이크처럼 꾸민 벽은 투박해 보일 것이다. 그가 디자인한 로그너 바트 블루마우 호텔을 찾았을 때, 동선이 굉장히 길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여느 호텔과 달리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서 방으로 갔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라면 욕부터 내뱉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어떻게 보면 건축가라는 특권을 이용해 입주민 혹은 투숙객에게 불편을 강요한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를 잘못된 강요라고 생각지 않는다. 입주민들은 자연에 순응해 살아가고 있다. 분명 불편한 점이 있을 테지만 건축가의 정신과 설립 취지에 충분히 공감하기 때문이다(그리고 이토록 매력적인 디자인의 건물에 산다는 것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나는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를 둘러본 뒤 우리나라의 건축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역시 도시 경쟁력을 이야기한다. 한때 서울시의 슬로건이 ‘디자인 서울’이었을 만큼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높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을 물으면 막상 내놓을 게 없다. 건축을 하나의 예술로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지 못한 때문은 아닐까. 건축물조차 싸고 정형화된 것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여기에 한몫했다고 본다.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대한민국이 아니던가. 우리도 조금 천천히, 그리고 쉬어갈 때가 아닌가 싶다. 건축은 그 시대의 거울이다. 건축물 역시 도시와 디자인에 대한 사고, 그리고 친환경과 친자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사각형의 반듯한 아파트에만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를 소개하고 싶은 것도 이런 이유다.


정리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김종훈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