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파스(Tapps)는 흔히 스페인 식탁의 꽃으로 불린다. 주 요리를 먹기 전 입맛을 돋우기 위해 먹는 애피타이저 혹은 늦은 저녁 간단히 상그리아 한 잔과 즐기는 간식인 이 음식에는 스페니시의 뜨거운 정열과 다채로운 식문화가 녹아 있다. 타파스 문화는 서울에서도 체험할 수 있다. 이태원 스페니시 레스토랑 ‘봉고(vongo)’에서다.
[GOURMET REPORT] 타파스 바 ‘봉고’ Hola! 팔색조 스페인
전 세계의 이색 먹을거리로 그득한 이태원.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과 한강진역 사이 꼼데거리에 자리한 봉고는 천편일률적인 이탈리안이나 프렌치 레스토랑과는 외형부터 다르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바르셀로나 뒷골목에나 볼 법한 조금은 낡고 캐주얼한 분위기랄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식당 한편에 놓인 하몽(스페인 전통 발효 햄)들이 스페인 음식점임을 알려준다. 외벽 곳곳을 장식한 바르셀로나 흑백 사진들과 빈티지한 테이블, 각종 오브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2011년 청담동에서 이탈리안 타파스 요리를 선보이던 ‘봉고’는 얼마 전 이태원에 다시 문을 열면서 스페인식 타파스 전문 바(bar)를 표방하고 있다. 타파스는 스페인 식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요리다. 일조량이 많아 곡물과 채소가 풍성하고 지중해와 근접해 해산물이 많이 나며 각종 향신료를 즐겨 사용하는 스페인은 다채로운 음식의 향연이 펼쳐지는 나라다.
이베리코 하몽
이베리코 하몽
식사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그들은 점심시간이 1시부터 3시까지로 길고, 저녁식사 역시 늦게 하다 보니 그 전에 먹을 만한 ‘한 접시 요리’를 고안해낸 것이다. 타파스의 종류는 셀 수 없다. 대개는 안초비나 캐비아 등 지중해 연안에서 나는 해산물이나 태양을 듬뿍 받고 자란 채소, 올리브오일이 주를 이루지만,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안초비
안초비
방송인 손미나는 스페인을 여행하고 돌아온 뒤 자신의 여행 에세이에 “타파스를 다 맛보지 못한 것은 여전히 아쉬운 일”이라고 회고했다. 단순 애피타이저라 칭하기에 그 접시 속에 담긴 문화와 정신이 너무도 풍성하기 때문이다.


‘푸짐’하지 않아도 골라먹는 재미…칼로스·코치닐요 등 이색 요리도 선보여
‘봉고’ 김선태 매니저가 몇 가지 종류의 타파스를 내왔다. 처음엔 솔직히 ‘애걔~!’ 했다. 작은 접시에 담겨 나온 적은 양의 타파스는 푸짐한 한국 음식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볼품없이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둘 씩 접시가 모이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해산물과 육류, 채소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각양각색의 타파스는 그야말로 골라먹는 재미가 있었다. 과하지 않게 맥주나 샴페인, 과일주 상그리아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코치닐요
코치닐요
‘백고동 마늘 오븐 냄비요리’는 오일 베이스로 마늘과 올리브, 감자, 파프리카, 안초비 등을 오븐에 조리해서 만들어낸다. 함께 나온 바게트에 올려 먹으면 백고동의 쫄깃한 식감과 바게트의 바삭함이 일품이다.

스페인에서는 팔지 않는 음식점이 없을 정도로 대중적이라는 ‘몬타디토’가 나왔다. 바게트 빵 위에 여러 가지 신선한 재료들을 겹겹이 얹어서 먹는 한 입 크기의 타파스다. 우리나라에서는 연회에서 핑거푸드로 쉽게 접하는 음식이다. 이곳에서는 연어와 새우 감바스, 하몽 몬타디토가 잘나간다. 생크림과 새우, 청어알 등이 올라간 새우 몬타디토를 입에 넣으니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입에 착 감겼다. 지중해식 해산물과 아보카도, 안초비를 섞어 만든 스페인식 샐러드도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감바스
감바스
봉고는 타파스 외에도 다양한 스페인 음식을 선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노란 밥’으로 통하는 스페인식 볶음밥 파에야를 비롯해 애저통구이인 코치닐요, 소 내장 냄비요리인 칼로스 등이 특색 있다. 칼로스는 소 내장으로 만든 스튜로 한국 음식 전골과 비슷한 느낌이다. 생각보다 느끼하지 않고 매콤해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한다. 새끼돼지 요리인 코치닐요 역시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스페셜 메뉴 중 하나다. 전남 진안에서 공수해 온 애저를 통구이해 전지와 후지, 등심으로 해체한 뒤 손님에게 제공한다. 송년회, 신년회 등 각종 특별한 모임 음식으로 제격이다. 재료를 미리 구해둘 수 없어 2일 정도 전에 미리 주문해야 제 날짜에 맛볼 수 있다. 남해산 멸치를 그대로 초절임한 홈메이드 안초비는 외국인과 일부 마니아층이 즐기는 메뉴다.

시즌별 제철 식재료로 만든 한국식 타파스와 각종 이색 메뉴를 맛보는 것은 ‘봉고’를 가장 현명하게 즐기는 방법이다. 금, 토요일은 새벽 2시까지 문을 열기 때문에 1차 혹은 2차를 끝낸 후 가볍게 한 잔 더 생각날 때 들러도 좋다. 와인 1병을 주문하면 이베리코, 세라뇨 등 스페인에서도 최상급으로 꼽히는 하몽 10g이 안주로 나온다. 좀 더 날씨가 풀리면 반드시 테라스에 앉아볼 것. 유럽풍 테라스에서 맛보는 타파스 한 접시는 서울에서도 바르셀로나를 만끽하게 해줄지 모른다.



Info. 봉고
[GOURMET REPORT] 타파스 바 ‘봉고’ Hola! 팔색조 스페인
위치 서울 용산구 한남동 683-134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자정(금요일과 토요일은 새벽 2시까지 연장 영업), 브레이크타임 오후 3~5시(주말 제외)
가격대 타파스 8000~1만6000원, 코치닐요 35만 원
문의 02-797-7159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