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미래엔 대표

올해로 창립 66주년을 맞은 미래엔(옛 대한교과서)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4대째 가업승계 기업이다. 창업주 우석 김기오 선생의 뒤를 고(故) 김광수 명예회장이 이었고, 후계자였던 김필식 전 사장이 1987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다시 장남의 빈자리를 채워오던 김광수 회장은 2009년 손자에게 경영권을 승계했다. 4세 경영인 김영진 대표는 백년 기업을 향해 달리는 미래엔의 선장이다.
김영진 대표는… 1974년생. 미국 보스턴대 졸업, 와튼 KMA 최고경영자과정 수료.대신증권 경제연구소, 미래에셋증권 기업금융본부에서 근무한 뒤 2002년 미래엔 입사. 2008년 3월 전북도시가스 감사. 2009년 미래엔 대표이사(현). 2011년 미래엔 인천에너지 대표이사(현). 2013년 11월 서해도시가스 대표이사(현).
김영진 대표는… 1974년생. 미국 보스턴대 졸업, 와튼 KMA 최고경영자과정 수료.대신증권 경제연구소, 미래에셋증권 기업금융본부에서 근무한 뒤 2002년 미래엔 입사. 2008년 3월 전북도시가스 감사. 2009년 미래엔 대표이사(현). 2011년 미래엔 인천에너지 대표이사(현). 2013년 11월 서해도시가스 대표이사(현).
김영진 미래엔 대표를 만난 건 지난 2월 17일. 고 김광수 명예회장 타계 1주기를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서울 반포동에 위치한 미래엔 사옥 회장실에는 여전히 김 명예회장의 유품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난해 김 명예회장을 대리해 은관문화훈장을 받아들며 눈시울을 적셨던 김 대표는 1년 동안 제법 담금질이 된 듯 보였다.

“할아버님께서 안 계신 공간을 어떻게든 채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달려왔습니다. 사실상 실무는 5년 전부터 맡고 있었지만 정신적인 공백이 적지 않았어요. 힘들 때마다 선대 회장님이 남기신 겸손과 헌신, 정직의 가치관을 가슴에 새겼어요.”

대한교과서를 전신으로 하는 미래엔은 1948년 문을 연 이래 현재까지 초·중·고교 국정·검정·인정 교과서 등 합쳐서 총 9000여 종에 달하는 교과서와 참고서, 단행본을 발행해왔다.

해방 직후 한글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정부 요청에 따라 독립운동가였던 우석 김기오 선생이 설립했으며, 선생이 고문 후유증으로 타계하자 1961년 양아들인 김 명예회장이 사장직에 앉았다. 김 명예회장은 교과서 사업을 기반으로 출판, 인쇄 등 사업 영역을 확장해 매출 1조 원대 그룹으로 키워내 ‘교과서 대부’로 불렸다. 미래엔은 중간에 김 명예회장의 장남인 김필식 전 사장이 잠깐 맡았던 시기가 있었지만, 1987년 간암으로 세상을 등지면서 다시 김 명예회장 체제로 돌아간다.
[SUCCESSOR] “금시계 팔아 교과서 만들고자 했던 정신 이을 것”
김 대표는 미국 보스턴대에서 재무, 경영을 전공한 후 미래에셋증권에서 근무하다 2002년 미래엔에 입사했다. 경영 실무를 익힌 뒤 2009년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김 명예회장은 장손이었던 김 대표를 일찍이 후계자로 점찍고 그가 경영과 실무를 두루 깨칠 수 있도록 안팎으로 가르쳤다. 후계자 수업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할아버님께서는 함께할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셔서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무척 엄격하게 가르치셨다”고 회상했다.

“5선 의원인 할아버님께서 의정 활동을 하실 때도 항상 절 데리고 다니며 비서 이상의 역할을 하게 하셨는데, 그것은 당신이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잘 보고 배우라’는 의미였던 것 같아요. 미국 유학 시절 생활비를 보내주시면 저는 사용내역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해야 했습니다. 그만큼 단호하셨어요. 늘 불안한 눈길로 보시면서도 집안의 중요한 일은 항상 제게 맡겨주셨죠. 의지하지 않고 홀로 서는 법을 터득하게 하셨어요.”
살아생전 김광수 명예회장과 김영진 대표의 모습. 김 대표는 아직은 ‘김광수 명예회장 주니어’라는 타이틀이 더 편하다고 했다.
살아생전 김광수 명예회장과 김영진 대표의 모습. 김 대표는 아직은 ‘김광수 명예회장 주니어’라는 타이틀이 더 편하다고 했다.
장손에게 유난히 엄했던 할아버지… 턴어라운드 이후엔 “잘했다” 격려
김 대표가 취임한 2009년은 그 어느 때보다 회사가 어려운 시기였다. 2006년 중·고교 교과서가 검·인정 체제로 바뀌며 다양한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정부의 주장이 제기되면서 경쟁에 내몰렸다. 미래엔은 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교과서 독점 사업권으로 60%에 가깝던 시장점유율이 15%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김 대표는 ‘백년 기업’이라는 가치를 분명히 하고 모든 직원이 하나가 돼 목표를 향해 뛰어갈 수 있도록 분위기 쇄신을 주도했다. 60년이면 사람도 환갑의 나이다. 경영자도, 경영 방식도 너무 낡아 있었다. 평균 근속연수 25년이던 직원을 구조조정하고 김군호 전 아이리버 사장을 부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영입하는 등 간부 30~40%를 능력 있는 외부 인재로 수혈했다. 기존 올드 보이와 뉴 보이의 컬래보레이션(협업)으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또 교과서 비즈니스에 안주하지 않고 ‘북폴리오’, ‘와이즈베리’ 등 성인용 단행본 브랜드를 출범시키는 등 출판 콘텐츠를 다양화해 나갔다. 보다 혁신적인 이름으로 사명도 변경했다. ‘미래엔’은 ‘미래’와 ‘네버랜드(피터팬이 사는 가상의 나라)’의 합성어로 장차 대한민국 교육·출판계의 네버랜드가 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김 대표는 턴어라운드에 성공한다. 매출은 그가 취임한 후 매년 15%씩 성장해 2013년 1300억 원을 달성했다. 재작년 실시된 2013~2015학년도 중·고교 검·인정 교과서 발행자 선정 심사에 15과목을 출원해 모두 합격했다. 심사받은 100여 개 업체 중 15과목 이상을 출원해 합격한 회사는 미래엔 등 두 곳뿐이다. 그는 “4~5년 동안 지금의 흰머리가 다 났다”고 말하며 웃었다.

“바닥을 치던 회사가 신기하게 점점 살아났어요. 명예회장님께서 돌아가시기 몇 해 전이었는데 비로소 한마디 해주셨어요. ‘수고했다. 이건 네가 다 한 일이다’라고요. 날아갈 듯 행복했습니다.”


가업승계, 자본 논리로만 생각해선 안 돼… 후대에 DNA까지 계승해야
김 명예회장이 그에게 물려준 또 하나의 가치는 바로 사회공헌이다. 살아생전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돌려주는 것을 강조하고, 누구보다 ‘통 큰’ 기부를 해왔던 그였다. 자신의 호를 딴 목정장학회와 목정문화재단을 설립해 교대·사범대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말년에는 전북대 발전기금으로 20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미래엔은 지난해 연말 1억 원 상당을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에 기부했다. 김 대표는 “그룹 차원에서 선대 회장님들의 정신을 받들어 사회공헌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할아버님 미수(88세) 생신 때 손님들을 불러놓고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역정을 내시면서 그 돈을 모아놓으라 하셨지요. 2년 동안 모은 20억을 전북대에 기부하셨습니다. ‘출판업을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생각지 말거라. 한글 교과서를 만들어 우리 문화를 만들고자 했던 창업 정신을 잊지 말고 늘 검소하고 나누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미래엔이 2004년 세종시에 설립한 국내 유일의 교과서 박물관 역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조선시대 서당 및 100년 전 개화기부터 현재의 교과서, 외국 및 북한 교과서 등 10여 년간 수집한 18만여 점의 자료가 전시돼 우리나라 교육 문화 발전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옛날 교과서는 국내에서 누구도 보관하고 있지 않아 정부에서도 교과서 이야기만 나오면 교과서 박물관을 찾는다.

‘4세 경영인’ 김 대표가 생각하는 백년 기업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는 “가업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업 다각화를 통한 성장이 필수”라고 하면서도 “그 과정이 단지 수익을 위한 ‘캐피털 게임’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즉, 정해진 자리에 앉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 기업의 DNA까지 온전히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것이 바통을 쥔 자의 책무라는 뜻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한 일화를 끄집어냈다.

한국전쟁 당시 대한교과서는 부산으로 윤전기를 옮겨와 피난 중 유일하게 전시(戰時) 교과서를 만들었다. 당시 김기오 창업주는 교과서 만들 자금이 떨어지자 김광수 명예회장에게 자신의 금시계를 풀어주며 “이것을 팔아 종이를 사오라”고 했다. 학생들에게 교과서는 교육의 근간이 되므로 어떻게 해서라도 제 날짜에 교과서를 만들어 보급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김 명예회장은 아버지의 마지막 재산으로 보이는 그 시계를 팔지 않고 담보 대출을 받아 가까스로 종이를 마련했다. 김 명예회장은 지난해 숨을 거두기 전 그 금시계를 김 대표에게 건네주었다.

김 대표는 “자신의 세대에서 미래엔을 백년 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이 막중하지만 이 금시계에 담긴 정신을 후대에 전할 수 있도록 온 열정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승부수는 다양하다. 미래엔이 가지고 있는 양질의 콘텐츠를 디지털화해 시장을 리드한다는 계획이다. 교사용 스마트교과서를 개발했고, 스마트폰 및 태블릿 PC용 유아동 애플리케이션(앱)을 출시했다. 학습만화 ‘내일은 실험왕’ 서바이벌 만화 과학 상식 ‘살아남기’ 시리즈를 아이패드용 앱으로 만든 것은 일본 아마존의 아동학습만화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는 등 해외에서도 인기가 뜨겁다. 그 밖에 프린팅 생산 기지를 기반으로 소비자 플랫폼 비즈니스 역시 구축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2012년 디지털 비즈니스를 총괄할 사업부를 출범시키고, 디지털 프린팅 ‘딥씨’를 론칭해 포토북 시장에 진출했다. 실버세대를 겨냥한 출판물 역시 미래 먹을거리 중 하나다.

“아직은 ‘김광수 명예회장 주니어’라는 타이틀이 더 편해요. 사실 내 생애엔 그를 쫓아가기에도 버겁겠죠. 바람이 있다면 내가 우리 가업을 다음 세대로 이어줄 때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남겨주신 것에 조금 더 보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한국경제 DB